바틀비 - 주해를 통한 영어학습 프로그램 1
허먼 멜빌 지음, 정남영 옮김 / 갈무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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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틀비』는 어떤 책인가?


「바틀비」(“Bartleby”)는 장편소설 『모비 딕』(Moby Dick)의 작가로 유명한 허만 멜빌(Herman Melville)의 1853년작 단편으로서 일반 독자들에게는 『모비 딕』만큼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다수 비평가들이 미국 문학의 걸작으로 뽑는 작품이다.
오히려 『모비 딕』(1851), 『피에르』(Pierre, 1852), 『사기꾼』(Confidence Man, 1857) 같은 대작들이 사변적이고 난삽한 면이 있는 데 반해 이 작품은 정교한 언어구사, 절묘한 아이러니, 풍부한 상징과 알레고리적 요소 등을 근거로 멜빌의 예술적 기량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이 작품은 각종 다양한 해석들과 문학이론들의 각축장이기도 하다. 다양한 해석들 중 주요한 것들을 몇 개만 단순화하여 소개해 보면 아래와 같다.
□ 이 작품은 실존주의적 부조리극이다.

□ 이 작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예술가의 운명을 그린 것이다. (바틀비는 멜빌 자신이다.)

□ 이 작품은 예수의 수난이나 동양적 수도승의 고행록이다. (바틀비는 예수다.)

□ 이 작품은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형성되고 있던 합리화된 자본주의 경제에서 심화되고 있던 노동의 소외를 그린 것이다.

□ 이 작품은 당대의 계급투쟁(사회적 계급들 사이의 충돌)을 직접 그리지는 않지만 당대의 사건들과 인물들을 넌지시 언급하고 계급관계와 소유권에 대한 당시의 담론에 참여하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그린다.

□ 이 작품은 불확정적 의미와 ‘열린 결말’로 보아서 모더니즘적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적 특성을 가진 작품이다. (이 작품이 나온 19세기 중반은 리얼리즘의 시기로서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에 와서나 등장한다.)

□ 바틀비의 비타협적인 거부는 시민불복종운동의 주창자인 초절주의자 쏘로우(Henry David Thoreau)의 ‘수동적 저항’(passive resistance)의 극화이다.

□ 바틀비는 삶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모비 딕』의 미친 선장 에이헙(Ahab)과 유사하다.

등등

독자들이 이런 비평적 견해들의 난립의 와중에서 어지러워할 필요는 없다. 작품을 자신이 직접 성실하고도 자세하게 읽는다면 자기 나름의 느낌이 생길 것이고, 그것을 점차적으로 발전시켜 자신의 견해를 다진다면 이것을 바탕으로 오히려 여타의 비평적 견해들을 나름대로 평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전문적인 비평가들의 비평들 중에는 의외로 ‘허튼 소리들’이 많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이 작품에는 (아니, 모든 걸작들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비평적 견해들이 아직 온전하게 포괄하지 못하는 요소, 따라서 그 해석이 누구에게도 열려있는 요소가 있다. 바로 모든 활동을 거부하고 죽음을 택한 바틀비라는 인간의 존재 자체이다. 어떤 비평가는 바틀비를 삶을 부정하는 인물로 본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군더더기가 제거되고 순수하게 삶의 잠재력만이 남은 존재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렇게 갈라지는 견해들 사이에서 우리는 또 다른 해석의 공간, 모든 성실한 독자가 참가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림을 본다.

이 공간에의 참여는 오로지 독자들 자신이 직접 성실하게 읽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곰곰이 생각할 때 가능한 일이다. 특히 번역을 통하지 않고 직접 영어로 이 작품을 ‘경험’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이 작품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훌륭한 조건을 획득하는 것이 될 것이다.

모든 진정한 학습은 삶의 풍부하고 다양함과 접촉하고 교류하여 차후 새로운 삶을 여는 데 함께할 능력을 마련하는 기회를 갖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실용적 학습일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학습에 바쳐지는 아주 작은 기여이다.

 

-- [보도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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