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또노미아 - 다중의 자율을 향한 네그리의 항해 아우또노미아총서 1
조정환 지음 / 갈무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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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을 ‘지금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아우또노미아라는 유령이”’라고 시작한다면 지나칠까? 결코 지나치지 않을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한국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혼종적인 사상이 출현하여 ‘아우또노미아’라는 이름으로 논쟁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새로운 사상을 낳고 또 사람들의 활동, 운동, 그 생기 가득한 힘들과 결합되어 등장하고 있다.

다만, 그것을 유령이라고 칭하는 것은, 그것이 아직 우리에게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조정환의 말마따나 ‘안또니오 네그리’라고 하는 칠순이 넘은 정열적인 사상가는 어떤 이에게는 아나키스트로, 어떤 이에게는 맑스주의자로, 또 어떤 이에게는 테러리스트로 이해되고 있다. 그 어느 표현도 안또니오 네그리의 진면목을 드러내 주지 못한다. 그는 지금 ‘천 개의 얼굴’로 비쳐진다. '어떤' 거울들에 말이다.

‘유령’이라 함은 그 실체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안또니오 네그리는 제대로 이해되지도 못했다. 아우또노미아 라는 혼종적이고 복수적인 사상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럴 때에 필요한 것은 일종의 ‘선언’일까? 이 책의 제목을 단순히 ‘아우또노미아’라고 한 것은 어떤 면에서 하나의 ‘선언’처럼 들린다. 1848년에 출간된 어떤 ‘선언’ Manifesto 의 출간이 하나의 ‘사건’이었다면 이 책의 출간 역시 하나의 ‘사건’이다.

올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이화여대에서 '맑스 코뮤날레'가 열렸을 때, 누구도 한국의 구좌파 교수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음에도 공공연하게 아나키즘을 공격하고, 들뢰즈를 비판하고,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을 비판했다. 마치 안또니오 네그리가 한국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 모두가 ‘유령’에 대한 제각기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10여 년이 넘게 아우또노미아, 그리고 안또니오 네그리의 사상에 대해 연구해온 저자 조정환이 내놓은 이 책은 둘러말하지 않고 그 자체로서 전면적으로 다룬다. 거울을 치우고 그를 그로서 다룬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이 책은 네그리에 대한 연구서이기도 하면서, 아우또노미아 사상, 그리고 운동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입문서이기도 하다. 책에 따르면 세계에서 처음으로 ‘아우또노미아’를 다룬 책이라고 한다.

‘다중의 자율을 향한 네그리의 항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아우또노미아’ Autonomia 는 저자가 머리말에서 말하고 있듯이 이탈리아어로 ‘자율’이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에서 태동한 아우또노미아 운동에 대해 그 내용에 대해 가치론, 계급구성론, 사회편성론, 제국론, 국가론, 코뮤니즘론, 조직론 등의 측면에서 다룬다.

최근 들뢰즈, 가따리의 책이 한국에 많이 소개가 되면서 스피노자, 네그리, 하트 역시 함께 읽혀졌다. 그것은 스피노자-맑스-들뢰즈-가따리의 계열 속에서 '네그리'를 이해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한다면 '네그리'의 특이성보다는 다른 사상가들과의 연속성만이 강조될 위험이 있다. 사실, 한국에서 네그리는 아직 제대로 '소개', '이해'조차 되지 못했고, 따라서 '오해'의 소지는 매우 컸다. 이러한 때에 조정환의 새 책은 네그리의 사상을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하고 있어 반갑다.

이 책의 출간은 한국에서 하나의 사건이다. 앞으로 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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