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은 왜 그녀를 또는 그를 사랑하는가? 이쁘니까? 잘 생겼으니까? 착하니까? 나랑 잘 맞으니까? 첫눈에 반했으니까? 이 책의 저자는 소설 아닌 소설로 그 해답을 찾는다.

이 책의 시작은 여느 로맨스 소설처럼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 후에 남자의 중얼거림이 시작된다. 어떻게 끌리게 되었는지, 무엇으로 인해 사랑이 깊어가는지, 어떻게 잠자리까지 도달하고, 왜 싸우고, 왜 다시 화해하게 되며, 종국에 헤어짐의 고통에 도달하게 되는지… 남자는 저자의 방대한 지식을 빌어 각 사랑의 단계를 분석하고 판단한다.

분석하고 해명하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심리학책처럼 딱딱하지 않다. 욕망에 불타는 10대의 일기처럼 유치하지도 않다. 다소 현학적인 태도가 걸리긴 하지만, 기분을 상하게 하진 않는다. 마치 나의 지난 사랑의 일기를 보듯 친근하다. 나아가 사랑에 대한 아주 사소한 것도 놓치는 법이 없다. 짧게 짧게 끊어지는 단락은 책넘김을 쉽게 한다. 마치 촉촉한 뻥튀기를 먹는 느낌이랄까. 형식면에서나 내용면에서나 새롭고 독특한 시도이고, 나에게 있어 그의 그런 시도는 성공한 것 같다.

저자가 어린 나이에 쓴 글치고, 나름의 깊은 철학적 고찰이 엿보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그래서 유치하지 않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야 하는 이유가 '너무 사랑해서다.' 또는 '그것이 하늘이 정한 우리의 운명이다.'는 식으로 접근했다면 삼류소설에도 끼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엔 플라톤, 칸트, 니체 등 고등학교 윤리책에서나 접했을 이름들이 잔뜩 등장한다. 저자는 그들의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의 결과들을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다소 유치한 주제에 딱 맞게 맞추었다. 불쏘시게를 가져다 골프를 치려면 폼이 안나지만, 골프채를 가져다 볼쏘시게로 쓰면 폼 나듯이 말이다.

이 책의 여러 가지 장점들 중에서도 맘에 드는 것은 번역이다. 이 책의 번역자는 로알드 달의 '맛'이나 '눈 먼 자들의 도시' 등 번역의 티가 안나는 맛갈스런 번역으로 유명하다. 나쁜 번역은 상상과 사고를 방해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것이 없이 깔끔하다.

과연 남자는 사랑과 이별의 이유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 그 답은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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