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로버트 먼치 글, 안토니 루이스 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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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말에 어색하다. 특히 한국의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랑 표현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이것은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형성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청소년기에는 기존 질서를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고 또래집단에 강하게 의존하는 성향을 보이게 된다. 이건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봐도 어느정도 정설인 것 같다.

이런 청소년기 자녀들의 태도에 대한 대응이 동서양이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서양의 부모들은 이런 청소년의 이상한 태도를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예전과 다름 없는 태도를 견지한다. 격없는 농담을 건낸다거나, 자녀의 방문을 벌컥 열고는 당황하는 자식을 보며 깔깔대거나, 좋은 책을 선물하기도 하고, 자녀의 친구를 자식처럼 대하거나, 심지어 다 큰 녀석의 뺨에 뽀뽀 세례를 퍼붓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부모들은 어떠한가?

우리네 부모님들은 무관심을 덕으로 삼는 듯하다. 청소년기의 자녀가 부모에 무관심해지면, 부모도 자녀에게서 뚝 떨어진다. 그것이 자녀를 위하는 길인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면서 한국의 부모, 자식 간은 점차 서먹해진다. 감히 사랑해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다. 뽀뽀? 상상도 하지 말아라. 가끔 대학생 녀석이 만취가 돼, 날리는 뽀뽀 정도가 있을지언정 맨정신에 뽀뽀는 기대도 말아라.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한국 사람에게 사랑해라는 한 마디는 공산당 총부리 앞에서 외치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보다 더 하기 힘들다. 아침부터 부시시한 눈으로 주섬주섬 일어나 출근하는 남편의 요기를 차리는 아내의 정성 앞에도 그 말은 나오지 않는다.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생일날, 미역국 먹으러 오라는 어머님의 전화 소리에도 눈물은 흘릴지언정 사랑해라는 말은 전달되지 않는다. 심지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볼살이 통통하고 애교 많은 아기들에게도, 말을 알아 먹을 나이 정도가 되면 그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칭찬과 사랑을 먹고 자라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들의 하나뿐인 아버지로서 사랑을 듬뿍 전할 방법이 없을까. 여기 정면돌파는 아니지만 귀중한 편법이 하나를 소개한다. 우선 좀 일찍 퇴근해 잠들기 전 아이들과 함께 첨벙첨벙 거품 목욕을 한다. 그리고 함께 아이 침대로 가서 이 책을 집어든다. 그리고 아빠 작곡의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를 책을 읽으며 반복해 불러 준다. 졸린 아이는 이것이 책의 내용인지, 아빠가 나를 위해 부르는 노래인지 비몽사몽 간에 헤깔린다. 그리곤 아빠가 나에게 하는 사랑 노래로 착각하고는 잠에 빠져든다.

처음엔 지어서 불러야 하는 노래 구절이 자꾸 반복되어 어색하기도 하지만(처음엔 앞서 부른 것과 나중에 부르는 노래가 다르기도 하다), 어느샌가 이 노래가 익숙해지고 있다면 작전은 성공이다. 이 책의 반복 구절인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라는 노래는 심각하게 자주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고 뒤로 갈수록 점점 의미를 갖게 되는 걸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부모가 책을 읽어주어야 하는 나이인 3살에서 6살 아이에게 가장 적당하며, 반복구절이 있다고 해서 글을 읽을 줄 아는 아이가 혼자 읽는 글읽기 연습용 책은 아닌 듯 싶다.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아빠들이여, 오늘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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