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
신경숙 외 지음 / 명필름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버스 정류장에 관한 22명의 문화에 관심있는 분들의 다양한 추억담을 담은 책이다. 영화감독,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음악인, 영화배우, 기자, 만화가.. 직업만 봐도 창의력과 독특성을 필요로하는 곳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버스 정류장에 관한 이야기들 역시 왠지 모르게 색다르게 펼쳐질거란 생각을 하고 봤다. 책을 낸 곳 역시 그런 독특함을 얻어내기 위해 22명의 필진을 선정하진 않았나 생각이 든다.

버스 정류장에 새긴 추억들이 뭔가 다를거란 생각을 하고 봤지만 막상 읽어보면 대개 젊은날의 가슴아픈 사랑이야기와 일상에서 접하는 보통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어 약간 속았다는 느낌도 들긴했지만 역시 필진도 보통사람들이어서 경험하는 부분도 일반 사람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음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때문에 뭔가 크게 색다름을 원하는 독자라면 약간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인상깊었던 부분은 영화주간지 필름 2.0의 이지훈기자가 쓴 '정류장, 들어서는 순간 비밀의 문이 열린다.' 부분이었다. 이지훈기자는 정류장에 들어선 순간 새로운 곳으로 이동할 준비를 갖춘 공간이동의 장소이자 경계의 최전선이라고 한다. 버스 정류장에 있음으로 인해 공간이동의 경험을 느낄 수 있다는 부분은 인상깊다.

버스정류장이라는 책을 읽었으니 이쯤에서 내 개인적인 버스정류장에 관한 추억담하나 옮겨놔야 예의일듯 싶다. 한 때 모모모버스를 무지하게 기다린 적이 있다. 다른 버스를 타도 되었지만 모모모버스는 집에서 가깝고 도착지에 바로 목적지가 있어 쉽사리 모모모버스의 유혹을 져버리지 못한적이 있다. 문제는 이 버스가 도대체 오질 않는다는 것이다. 30분에 한대, 40분에 한대.. 과연 서울의 교통을 책임지고 있는 버스인지 의구심이 들다가 급기야 화가 나기까지 했다.

또 한가지 문제는 늦게 온 버스기사의 난폭한 운전솜씨에 정말 기가 찼다. 이 버스를 기다리는 초반엔 버스의 정체를 잘 몰랐기에 마냥 기다렸는데 차차 오지 않는 이유를 알아봐야 겠다고 생각하고 인터넷을 뒤졌다. 버스가 안오는 이유에는 여러가지 복합된 이유들이 얽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버스회사가 적자였다. 지하철이 생김으로 인해 버스가 설자리가 줄어들었다. 때문에 버스배차를 길게 잡게 되고 그러다보니 승객들은 안오는 버스를 더더욱 멀리하고 다시 적자는 늘어가고 또다시 회사는 직원들의 복지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고 그러다보면 난폭운전으로 버스기사들은 시위를 하고 결국 돌고 도는 악순환으로 회사, 시민, 기사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도 않았고 그저 그렇게 버스는 지금도 계속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보이며 이역 저역을 배회하고 있다. 해결책이라면 약간의 노선을 변경해 지하철과 마주치지 않게 운행을 하고 학생이 많이 밀집된 학교주변을 거쳐 운행하면서 점차적으로 적자를 면하는 수밖에 없을 듯 하다. 아니면 지하철이 곳곳에 뚫린 마당에 그 버스는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이게 내가 버스정류장에서 한없이 안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고민해봤던 추억담이다.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버스를 기다리면서 서울시내버스들의 당면한 문제들을 여실히 알 수 있어 소득이 있는 기다림이었다. 비록 적자에 시달리며 난폭한 운전으로 서울시내를 배회하고 있는 버스들이긴 하지만 지하철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긴장감과 생동감, 그리고 버스정류장이라는 기다리는 곳이 있기에 버스와 버스정류장은 더 특별하지 않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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