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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모독자 - 시대가 거부한 지성사의 지명수배자 13
유대칠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8년 2월
평점 :
서양의 정신의 근본은 기독교에 있다고 한다. 기독교. 그리스도교라고 하는 서양의 종교가 된 이 최고의 가르침(종교의 한자 뜻)은 처음부터 박제되고 길들여진 정신은 아니었다. 원래는 대 제국 이라는 애굽에서 경험한 정치적 해방을 그 정신의 뿌리로하는 자유의 정신이었다. 그리스도교는 노예로, 종으로, 천하디 천한 천민으로 살다가 탈출하고 해방을 경험한 작고 작은 민족의 살아있는 해방정신을 폭발적으로 되살리는 사건들과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요 이야기였다. 그리스도인이란 정치적 해방 정신이 예수에게서 부활했다고 믿는 사람들이요, 자신들도 예수처엄 살겠다고 모인 모임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들과 이야기는 문서화 되었고 전해지면서 제국의 종교가 되었고, 이 박제된 제국의 종교는 기독교 왕국을 꿈꾸게 되었다. 찬란한 제국의 종교! 로마의 평화! 팍스 로마나!
이 아름다운 구호의 이면에는 칼과 폭력을 앞장세우는 제국의 군인들, 십자군들의 광기가 있었다. 중세라는 이름이 풍기는 느낌처럼 어둡고 사람들을 사로잡는 어두운 정신이, 아니 그리스도의 탈을 쓴 악마가 이제는 세상을 다스리게 되었다. 그러나 마녀사냥은 살아있는 사람만을 그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 썪어가는 정신을 비판하거나 의심하는 자는 그 누구든지 마녀사냥과 화형의 대상이 되었다.
아, 광기와 맹신의 시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어두움에도, 어둠이 더욱 짙어갈수록 그리고 흑암이 깊어갈수록 여명은 밝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둠을 밝히는 빛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았다. 그 빛은 반드시 삶 전체를 바치는 사람들의 희생으로 탄생했다.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불사르고, 모든 정신을 끝까지 태워 바치는 미친 사람들! 이들은 모두가 신성한 모독자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시나이 산에서 불타는 떨기를 보며 자유와 해방을 꿈꾸던 모세, 제국의 떡고물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이제 자유와 해방을 향해 떠나라는 신의 음성을 들었던 미친 지도자의 후예들이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 자신이 보여준 정신은 무엇인가? 말씀이 버려질 껍데기와 같은 육체가 되셨고, 마태의 증언에 따르면 가장 보장것 없고 천한 말구유에 오셨다. 그리고 그는 정치범으로 제국에의해 십자가에서 순명했다. 가장 천한 탄생과 비참한 죽음이 그리스도 사건의 핵심이다.
결국, 제국의 종교가 되고만 기독교는 원래부터 황제의 종교가 아니었다! 제국의 종교는 더더욱 아니었다! 권력의 종교가 아니았다! 그리스도인들은 제국에의해 죽임당한 예수. 예루살렘의 종교자들이 고발한 예수. 민중들의 혐오와 광기로 십자가에 떠밀린 예수를 믿고 따르고자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죄악으로 가득찬 세상과 권력으로부터 신이 예수을 다시 일으켰다고 믿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하 무덤에서 그렇게 믿고 살며 순명했고, 죽음으로 제국에 저항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 자신 또한 그 예수의 정신을 따르고 계승할 때에만, 그 가르침을 따라 살 때에만 진리가 다시 살아난다고 믿었다. 그 진리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아갈 때에민 나타난다고 믿었다. 자신들이 빛이되어야 어둠은 물러난다고 생가했다. 그렇게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태어났다.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성스러움이란! 낮아질 때에만, 비울 때에만, 그리고 희생할 때에만 어둠을 밝히는 빛을 내는 것이다. 그래야만 마침내 거짓을 드러내는 진리가 되는 것이다.
구원에도 조건을 달고 제한을 만들며, 거대한 벽과 담을 쌓아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구원의 한 없음을 소리친 에리우게나. 구약성서 창세기가 그대로 보여주듯이(창세기 1장의 흑암과 혼돈, 수면은 무엇이란 말인가?) 무로부터의 창조를 거부한 이븐시나. 이성과 신앙을 고루 존중한 이븐 루시드. 합리적인 과학의 사고와 실험정신을 열어준 베이컨. 유명론 하나만으로도 중세 종교 사회를 뿌리부터 뒤흔들었던 오캄! 비어있는 신의 신비를 강조한 에크하르트. 모든 인간의 평등을 주장한 수아레스. 신으로부터 분리된 이성을 강조한 데카르트.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소리쳤던 갈릴레이. 성서비평학의 등장이전에 이미 성서를 의심하고 비판했던 스피노자. 그리고 이름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신성한 모독자들. 신성한 모독자들은 성스러움을 더럽힌 이단자가 아니다. 이들이야 말로 진리의 수호자요. 정의와 공평의 재판관이다. 진리의 사도다. 신성한 모독자들은 성스러움을 모독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거짓돠 폭력, 맹신과 광기를 폭로하고 드러낸 것이다. 스스로를 녹여 부패를 막는 소금처럼, 스스로를 불태워 작은 빛하나 열어보이는 촛불과 같은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