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준 평전 - 성육신 신앙과 대승 기독교
김경재 지음 / 삼인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김재준 목사님은 경동교회를 설립하시고 한신대학교 이전의 조선신학교 설립부터 까지 많은 예언자적 활동을 하신 우리시대에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수 없는 정의의 참 예언자 였다. 나는 김재준 목사님을 중심으로 한국교회의 새 역사 운동을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한국 기독교장로회’ 라는교단은 총회에서 학교를 만든 타교단과는 달리 학교로부터 교단이 나왔다고 할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준 목사님은 10살이되기전에 4서를 통독할만큼 동양사상에 능통했다. 내가 이러한 점에 집중하는것은 다석 유영모 ,신천 함석헌 선생님과 같이 이분들은 기독교 신앙과 신학을 받아들이되, 동양사람으로서 그리고 한국인 으로서 주체적이며 생명적인 복음 해석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선비기질은 30~50년대 신학논쟁과 교권주의자들과 투쟁 , 또는 선교사들의 우월감과 회유에 타협이나 굴복이아닌 소신있는 전진의 밑 바탕이 되었다고 할수있다.

 

신학이 일정한 틀에 갖혀 자유로운 학문과 신앙이 없었던 6.25 후 전쟁이 끝난 시대에 캐나다 선교부가 무엇을 도와주면 좋겟느냐 했을때 그는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 양성을’ 도와 장학길을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독노회 안에서는 교권투쟁과 교리 논쟁 싸움 만이 있었을뿐이었다. 이때에 부산에서 한국신학대생의 교역자 임명거부와 , 김재준목사파문, 한국신학대 총회직영신학교 인허취소 를 받게된다. 민족의 분단가운데서 사랑과 창조적 사상진리로 민족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낙담한 젊은이들에게 내일의 비전을 보여주어야 함에도 근시안적 교권싸움으로 세월을 허송한것이다. 이때에 장로교 산하 진보파 교회 지도자들은 마침내 원상 복구나 화해가 불가능함을 알고, 1955년 제38회 호헌 총회를 열교 진보적 ‘한국 기독교 장로회’ 를 만들었다. 이사건은 장로교에서 나온 청년들과 여신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각성과 이들중심의 새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되었다.

 

루터와 캘빈이 성서만의 원리를 종교 개혁의 모토 중 하나로 내세웠을때부터, ‘성서 해석의 차이아 다양성’이라는것을 피할수 없었던 만큼 이미 교파 분열사는 예고된 일이기도했다. 하지만 성서의 문자가 우리의 신도 아니요 교리가 우리의 신이 아니다. 김재준 목사님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기독교 교리에 충성하는 또 하나의 종교 교리적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어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 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장로교의 분열은 분명히 불행한 일이요,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분열의 과정을 통하여 창조적 소수를 불러 일으키시고 그 안에서 새역사를 쓰시기를 원하셨다. 김재준은 하나님의 형상의 핵심적 본질을 자유로 생각했다. 우리도 마땅히 앞으로 더욱더 이자유를 찾기위해 애써야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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