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감각 - 21세기 지성인들을 위한 영어 글쓰기의 정석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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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서판><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로 유명한 캐나다계 미국인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그런 그가 글쓰기에 관한 책을 신간으로 냈다니 아니 읽을 수가 없었다. 서둘러 서평단 신청을 했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못 쓴 글이 많을까? 영어는 문자 메시지와 소셜 미디어 때문에 타락하고 있을까? 요즘 아이들이 글쓰기를 신경이나 쓸까? 아이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왜 글쓰기에 신경을 써야 할까?

그런 의문이 들 때 저자 스티븐 핑커가 답한 좋은 글쓰기의 가치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작성자가 자신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게 해 주고, 독자가 인생의 귀중한 시간을 흐리멍덩한 글을 해독하는 데 낭비하지 않도록 해 준다.

둘째, 잘 쓴 글은 신뢰를 얻는다.

셋째, 잘 쓴 글은 세상에 아름다움을 더한다.

<글쓰기의 감각>은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작가를 위한 책이고, 또한 문예에 흥미가 있으며 언어는 어떨 때 최선으로 작동하는가 하는 문제에 인간 마음을 탐구하는 과학이 어떤 도움을 주는지 알고 싶은 모든 독자를 위한 책이다.

이 책은 대문자 표기법 따위의 소소한 질문에 대한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여느 고전적 글쓰기 지침서처럼, 영어로 글을 쓸 줄은 알지만 더 잘 쓰고 싶은 사람을 위한다. 논픽션, 그중에서도 특히 명료함과 일관성을 최우선으로 중시하는 장르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지겹게도 들어 온 “수동태를 삼가라”는 말이 나쁜 조언이라는 사실을 안다. 수동태 구조는 독자의 주의와 기억을 특별한 방식으로 끌어들이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여러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능숙한 작가라면 그 기능을 잘 알아야 하고, 문법적으로 순진한 글쓰기 지침서에게 감화된 탓에 수동태를 봤다 하면 재깍 능동태로 수정하는 교정자에 맞서서 가끔은 수동태를 지켜낼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핑커는 조언한다.

기존의 글쓰기 지침서들은 또 언어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사실, 즉 언어는 시간이 흐르면 변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언어란 어느 한 사람의 권위자가 제정한 규약 같은 게 아니다. 그보다는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 조금씩 기여해서 공동으로 작성하는 위키(wiki)와 닮았다.

좋은 글을 음미하는 것은 무턱대고 어떤 규칙들을 따르는 것보다 작가의 감각을 키우는 데 더 효과적일뿐더러 더 솔깃한 방법이다. 좋은 글은 강하게 시작한다. 클리셰 같은 진부한 말로 시작하지도 않으며 내용이 있으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의견으로 시작한다.

좋은 글의 조건에 대해 핑커가 본문에 구술한 부분을 발췌해 봤다.

(p.59) 네 예문의 저자들에게는 공통된 습관이 많다. 낯익은 어휘와 추상적 요약보다 참신한 단어와 구체적 이미지를 선호한다는 점, 독자의 시선과 독자가 응시하는 대상에 늘 신경 쓴다는 점, 단순한 명사와 동사를 바탕에 깔되 간간이 특이한 단어나 관용구를 적절히 배치한다는 점, 대구를 이루는 문장 구조를 즐겨 쓴다는 점, 가끔 계산된 놀라움을 안긴다는 점, 상황을 세세히 알리는 묘사를 보여줌으로써 노골적인 설명문을 늘어놓을 필요를 사전에 없앤다는 점, 뜻과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율격과 소리를 쓴다는 점. (…) 이 저자들은 마치 우리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있는 것처럼 쓴다.

(p. 64) 좋은 글을 쓰는 비결은, 계율이나 다름없는 규칙들을 그저 고분고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대와 소통하는 척하는 이 가공의 세계를 최대한 생생하게 마음속에서 그릴 줄 아는 것이다.

(p. 66) 작가는 독자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독자도 그것을 볼 수 있도록 독자의 시선을 적절히 이끌어 준다. 이때 글쓰기의 목적은 보여 주기이고, 글쓰기의 동기는 객관적인 진실을 보여 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p. 144) 구체성을 살린 묘사는 작가와 독자의 소통을 도울 뿐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추론을 더 잘하도록 돕는다.

예) 체스판이 떨어졌다/상아로 된 체스판이 떨어졌다.

예 2) 측정계는 먼지투성이였다./유압 측정계는 먼지투성이였다.

<글쓰기의 감각>의 아쉬운 점이라면 통사론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읽었을 때 난감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중간중간 트리 구조로 문장을 분석해놓은 부분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지 영 모르는 사람이 분명 나타날 수 있다. 옮긴이 후기에 옮긴이가 설명해놓은 대로 구문과 단어를 다룬 4장과 6장은 영어에 해당하는 내용이니 영어 글쓰기가 목적이 아닌 독자라면 건너뛰고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조언이 있는 부분만 발췌독해 볼 것을 권한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핑커는 “수동태를 쓰지 마라”라는 조언을 절대적 진리로 주장하는 교조주의자가 아닌, 규칙과 관습에 얽매이는 원칙주의자가 좋은 글을 망친다고 보는 실용주의자다. 명쾌함을 지향한다고 해서 화려하고 섬세하게 쓰지 못할 것은 없다고 말하며 그 스스로도 그러한 글을 선보이는 데 주저함이 없기도 하다.

그런 점을 선택에 참고했으면 한다.

*본 내용은 사이언스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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