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기다려줄게 - 아이의 닫힌 방문 앞에서 8년, 엄마가 느끼고 깨달은 것들
박성은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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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6학년 입학식 전날 코로나19에 걸려 일주일 동안 학교를 못 간 적이 있었다. 격리가 해제된 일주일 뒤, 어라, 등교 거부를 하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다른 애들은 벌써 다 서로 사귀었을 텐데 나만 이렇게 뒤늦게 가면 과연 적응할 수 있겠느냔 거였다. 심지어 뚝뚝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결국 우는 아이를 어렵게 설득해 학교에 가도록 떠밀었고, 그렇게 한 뒤 마음이 편치 못해 남편을 몰래 학교 근처까지 미행을 붙였다. 교문 앞에 도착한 아이는 머뭇거리다 내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 나 못 들어가겠어.” “아냐, 너 들어갈 수 있어. 할 수 있어. 들어가 봐. 괜찮아.“ 나의 답장이었다.

둘째는 결국 학교에 들어갔다. 울면서.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아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 아직도 쟁쟁하다.



<엄마가 기다려줄게>는 10살 때부터 8년 동안 등교 거부를 한 아이의 엄마의 처절한 투쟁기(!)다. 아이의 닫힌 방문 앞에서 8년 동안 엄마가 느끼고 깨달은 바를 적은 수기. 제목에서부터 어떤 내용을 다뤘을지 너무나 와닿아 서평 신청을 하게 됐다. 

저자의 자녀는 10살 때부터 신체화 증상을 동반한 불안장애, 무기력증을 오가며 등교도 무엇도 하지 않은 채 자기 방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부모에게 소리지르며 완강히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들의 아픈 이야기는 사실 엄마들 카페에 암암리에 많다.

이런 아이들을 대하는 데에는 ‘기다림에도 단계’가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1단계, 학교 안 가는 아이를 이해하기 힘들고 분노가 치민다.
2단계, 아이를 이해하기로 결심하고 인내를 거듭하지만 마음은 지옥이 된다.
3단계, 아이 앞에서 충분히 내려놓았다고 가면을 쓰지만 체념과 착잡한 마음으로 우울감이 짙어진다.
4단계, 학교 가는 것만으로도, 동굴(방)에서만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사를 느낀다. 
마지막, 진짜 내려놓기. 조건 없는 사랑으로 채워지는 응원과 지지의 단계.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진심으로 내려놓기’다.

온 신경을 아이에게 쏟는 것이 아이를 챙기는 것이라 여겼는데 오히려 아이를 따라 나 또한 동굴로 들어가는 결과만 가져다주었다는 것을 깨달은 어느 날, 저자는 아이를 두고 동굴에서 나오기로 결심한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새벽 걷기]였다. 엄마의 시간은 아이와 별개로 흘러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1인칭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가장 이기적인 것이 가장 이타적이다’라는 말도 있다. 나를 먼저 돌보자. …결코 이기적이지 않은 습관이다(208쪽).“

또한 마음 다스리기로 유명한 책 <아티스트 웨이>를 읽으며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감사 일기가 아닌 자신만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편하고 부담 없이 쏟아내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무의식에 존재하는 나의 생각과 감정을 꺼내는 과정으로 ’아 내 마음이 이러했구나'를 깨우쳐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현재 나 자신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당신이라면 이 방법을 추천한다(206쪽).”



타인의 시선에 잡혀 있던 아이는 이제 어느 정도 그 시선에서 놓여났다고 한다. 대학은 하나의 선택지가 되었고 자퇴 후 1년간 아이는 입시 공부를 떠나 자유롭게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지냈다. ’그래도 된다‘는 믿음, 내 길은 내가 만든다는 믿음이 자녀의 마음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멀리멀리 돈 만큼 큰 원이 된다는 말처럼, 저자의 아이는 오랜 방황 끝에 2024년 대학생이 되었다고 한다. 대학이 인생의 종착역은 아니지만 최소한 우리나라에서 ‘대입’이라는 큰 고비를 넘어선 셈이다. “엄마, 기다려주세요”라는 자녀의 말은 아이를 따라 지하 동굴로 들어가던 저자의 발길을 다시 지상으로 이끌어준 이정표였다고 한다. 순탄친 않았지만 저자에겐 확신이 있었다고 한다. “분명히 끝은 온다”는. 저자와 그녀의 가족이 오롯이 기다린 것은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 소망이 책의 말미에서 이뤄져서 참 다행이다. 몇 번이고 안도하였다.


우리는 1인칭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가장 이기적인 것이 가장 이타적이다’라는 말도 있다. 나를 먼저 돌보자. …결코 이기적이지 않은 습관이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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