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이끄는 생각 - '사람과 아이디어를 키워라' 미국 싱크탱크의 전략
홍일표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서평> 세계를 이끄는 생각



미국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것?


미국을 여러번 다녀온 사람들은 미국에 있는 것은 웬만하면 한국에도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한국사회가 양질 두 측면에서 변화하고 발전하였다는 자부심의 표현일 것이다. 미국에 있는데 아직 한국에 없는 것이 있다. 그중 하나가 ‘싱크탱크’(Think tank)이다.

한국에도 ‘싱크탱크’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한국의 대부분의 싱크탱크들은 싱크탱크라기 보다는 ‘연구소’(insititute)라고 부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수많은 한국의 국책연구소, 기업연구소, 민간연구소하고 무엇이 달라서 미국은 싱크탱크라고 하는가? 미국에서 ‘싱크탱크’가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보면 이 차이를 알 수 있다.

홍일표 박사가 1년 6개월동안 발로 뛰면서 쓴 ‘세계를 이끄는 생각’은 미국의 싱크탱크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서이다. 미국 정치나 여론형성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싱크탱크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싱크탱크는 미국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서 정당, 의회, 언론 등과 함께 영향력을 행사하는 빼놓을 수 없는 집단이다.

홍일표박사의 책을 읽으면 미국의 싱크탱크는 ‘정책결정과정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활동하는 두뇌집단’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모든 활동은 대부분 이에 종속된다. 한국에도 수많은 연구소들이 있는데 한국에는 싱크탱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에는 정책결정과정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연구소는 드물다. 있다하더라고 미국의 싱크탱크과 같은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와 같이 활동을 하고 싶어도 한국의 관료제나 정치풍토는 이를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싱크탱크를 싱크탱크로 만드는 이유


미국의 대학은 싱크탱크에 비해 순수학문의 영역에 가까이 있다. 싱크탱크도 ‘학생이 없는 대학’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순수학문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싱크탱크는 대학과는 달리 자신들이 연구결과를 정부정책에 반영시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쉽게 연상할 수 있듯이 인재를 모으고, 예산을 확보하고, 연구와 분석을 진행하며, 이를 출판한다. 정책자료 생산, 각종 토론회 참석, 언론기고나 출연, 의회 증언, 개인적인 자문, 의회나 정부의 회의 참여 등의 활동을 한다. 한국과 다르다고 한다면 이 모든 활동을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잘 연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정부정책에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반영하기 위해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개발하기도 한다. 싱크탱크 내부에 언론 인터뷰를 지원하는 시설을 구비하기도 하고 독자적인 방송이나 촬영, 녹음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도 있다. 위싱턴 DC에 있는 레이건 공항에서 백악관이나 국무부, 의회까지 걸리는 10분 넘는 이동시간에 읽을 수 있게 짧은 자료를 만들기도 한다. 또 자신들의 개인적 친분관계를 이용하여 식사모임이나 친목모임에서 정책에 반영되도록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런 사적관계가 때로는 공적인 절차보다 유용하기 때문에 사적인 인맥관리도 중요한 활동에 포함된다.

홍일표 박사는 각종 자료 분석과 관계자 면담, 싱크탱크 행사 참석 등을 통해서 이와 같은 싱크탱크의 활동구조를 파악하여 기술하였다. 이 책에서는 미국 싱크탱크의 역사, 수많은 싱크탱크들의 개별적인 성향, 싱크탱크들의 공통점과 차이점, 예산 확보와 인력 운영방식, 정책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고안한 방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16개의 다양한 성격의 싱크탱크를 낱낱이 분석한 본문을 읽는 것만으로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파악한 듯한 짜릿함에 빠져든다.

또 워싱턴 DC에서 활동하는 정책전문가 면담을 통해서 싱크탱크에 대한 시각, 싱크탱크의 순기능과 부정적인 기능 등도 덧붙여서 한권의 책으로 미국 싱크탱크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였다.


미국 공무원의 영혼



미국 싱크탱크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회전문’(revolving door) 인사이다. 관계에 몸담았던 사람이 정권이 바뀌면 싱크탱크에서 연구활동을 하다가, 다시 관계에 진출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우리로 치면 ‘낙하산 인사’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회전문 인사는 싱크탱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각종 기업과 관계 사이에 오랫동안 형성된 인사방식이다.

싱크탱크가 현실 정책 결정에 깊이 개입할 수 있는 것도 이와같은 회전문 인사 덕택이다. 미국의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정책노선에 따라 영혼을 가지고 공무를 집행할 수 있는 이유도 회전문으로 자리가 보장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홍일표 박사는 회전문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관료였다가 싱크탱크에서 일하고 다시 관료로 가는 메카니즘 때문에 이들은 모호한 합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나중에 관료가 되었을 때 싱크탱크 시절에 펼친 주장 때문에 난처한 경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반드시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싱크탱크는 살아 있는 생생한 정책생산 기능보다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할 수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정책의 경쟁력보다는 돈과 서로간에 상호 영향력이 더 중요하다.

씽크탱크의 한국적 함의는 무엇일까? 홍일표 박사는 이 책의 결론부분에서 싱크탱크 자료조사와 탐방을 종합정리하였다. 시간이 없는 사람은 이 부분만 읽어도 싱크탱크에 대해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결론에서 홍박사는 싱크탱크의 자금출처인 재단의 부재, 불안정한 정당정치, 관료주도의 정책생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싱크탱크의 등장은 기반이 취약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와 ‘정책’을 고민하는 다음 세대를 키우기 위해서는 ‘사람에 투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용적 이상주의’


한국에서는 '한국식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그 필요성은 미국 싱크탱크인 ‘새로운 미국재단’(NAP; The New America Poundation, www.newamerica.net)

의 고민과 일치한다는 것이 이 책을 일독한 소감이다. NAP는 미국 사회는 혁명적으로 변화하는데 워싱턴의 정치는 이런 변화와는 상관없이 좌와 우,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과거의 구도에 맴돌면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NAP는 급진적인 사회변화를 추구하되 이념과 당파를 넘어서는 ‘실용적 이상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실용적 이상주의’는 보수와 진보 사이의 어정쩡한 중간이나 비당파가 아니다. 새로운 방법론으로 당파를 넘어서서 미국 사회의 문제해결을 지향하되 자신들의 이념이나 이익에 고착되지 않는다는 ‘급진적 중간’(radical center)을 의미한다. 낯선 용어지만 한국의 ‘민족화해운동’, ‘남남대화운동’이 고민해 볼만하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