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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지향의 평화를 향하여 - 김대중 전 대통령 주요 연설, 대담 2005-2007
김대중 지음, 김대중 평화센터 엮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5월
평점 :
<서평> 통일지향의 평화를 향하여
약속한 날짜를 지키지 못했던 남북 정상회담 합의
북한의 수해 때문에 2차 정상회담이 10월초로 연기되었다. 지금까지 남북은 3차례 정상회담을 약속했다. 첫 번째가 90년대 초반에 발생한 북한핵문제로 한반도가 전쟁위기로 치닫던 시점이었던 1994년이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사이의 정상회담은 그해 7월 8일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무산되었다.
2000년에 약속한 정상회담은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동안 열렸다. 남북 정상은 6.15 공동성명을 채택하여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관계로 튼튼하게 엮어 놓았다. 이제 세 번째 약속한 정상회담이 10월에 열리게 되어 있다.
물론 2005년 6월 17일에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면서 정상회담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 약속은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남북이 공식으로 발표한 정상회담은 앞으로 열리게 될 회담까지 포함하여 3차례이다.
3차례 약속했던 정상회담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모두 처음 약속한 일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정상회담은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지켜지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사이에 약속했던 1차 정상회담도 원래는 6월 12일로 합의했으나 실제로는 하루 늦은 6월 13일에 열렸다. 이번 2차 정상회담도 북한의 수해 때문에 애초 약속했던 8월 28일에서 한 달 가량 연기된 10월 2일부터 열리게 되어 있다.
이 세가지 약속의 또다른 특징을 꼽는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약속했던 정상회담에도 김대중 대통령이 역할이 있었다. 당시는 북한 핵문제 때문에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었다. 북미 사이에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던 때에 김대중씨는 미국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연설하였다. (1994.5.12)
3차례 정상회담 합의와 김대중 전대통령
김대중씨는 당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자’는 일괄타결을 북핵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하였다. 또 클린턴 대통령에게 북한과 중국에 특사를 보낼 것을 제안하였다. 실제로 그해 6월에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주석과 회담하여 북한으로부터 남북 정상회담의 약속을 받아내었다. 일괄타결과 특사교환은 북핵문제를 풀기 위한 유효한 해법으로 그 후로도 오랫동안 효력을 가지고 있었다.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1차 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6.15 합의를 채택하였다. 이번 2차 정상회담 성사과정 자체에 김대중 전대통령이 관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2차 정상회담은 1차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결과로 볼 수 있고, 김 전대통령이 지속적으로 2차 정상회담을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간접적인 역할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통일지향의 평화를 향하여’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했던 주요 연설과 대담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1차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연설과 대담이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통일과 평화와 관련한 노무현 대통령의 어록을 찾아 읽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통일지향적인 평화와 통일논의
김 전대통령의 책에 ‘통일 지향의 평화를 향하여’라고 제목이 붙은 것도 소홀히 볼 수 없는 대목이다. 이 책을 펼치면서부터 왜 제목이 ‘통일 지향의 평화를 향하여’인지를 금방 알 수가 있다. 남과 북이 분단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통일을 노래한다. 남북 사이의 오랜 갈등과 대결에 지친 많은 사람들은 통일보다는 분단의 평화적 관리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통일을 배제한 평화는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없다.
남과 북은 운명 공동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북한을 부정하든 존중하든 북한과 관계를 통일지향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고서는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 없다. 통일을 지향하지 않는 평화는 모래성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통일논의를 피해왔다. 6.15 공동선언 2항에서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 사이에 공통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였는데도, 6.15 선언을 지키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통일논의를 소홀히 하였다.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서도 통일논의는 당연히 중요한 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분단국의 정상이 만나는 회담이 때문에 북핵문제와 경제협력이라는 당면한 현안을 풀기 위해서라도 통일논의는 불가피하다.
‘통일 지향의 평화를 향하여’를 읽으면 김대중 전대통령의 통일에 대한 신념을 접할 수 있다. 일괄타결 방식으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방식의 북핵문제 타결, 통일 이후 주한미군의 역할 인정, 철의 실크로드 연결로 한국경제의 새로운 활력 모색, 동북아 각국의 평화적 협력관계 정착 등 국정경험과 오랜 탐구에서 나오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충분히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것이기 때문에 새로울 것이 없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새삼스레 놀란 것은 퇴임 이후에도 일관해서 통일논의를 해왔다는 사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3원칙 3단계 통일론에 대해서 끊임없이 주장해온 것이다. 알려진 대로 3원칙이란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이다. 3단계는 남북연합, 남북연방, 완전통일이다.
6.15 공동선언 2항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김대중 전대통령이 대한민국의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아닌 자신의 통일방안을 가지고 북과 협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에서 약속한 남측의 연합제란 화해협력, 남북연합, 완전통일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3단계 가운데 2단계인 남북연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북연합은 김대중 전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의 남북연합과 동일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의 3단계 통일방안 가운데 남북연합이 정상회의, 각료회담, 남북국회회담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남북연합과 완전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남북경협의 재원마련을 위하여
중요한 것은 1차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사실상 최초로 남북연합을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남북연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정상회담을 정례화시켜서 사실상 정상회의라는 틀을 갖추어야 한다. 아울러 장관급 회담을 중심으로 한 각종 남북회담을 체계화시키며, 나아가 그동안 별다른 진척이 없었던 국회회담을 추진하면 된다. 그러면 노태우 정부, 김영삼 정부때부터 논의해온 남북연합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이 여러차례 지적하고 있는 한가지 사실을 언급하고자 한다. 김 전대통령은 “지금 남쪽에서 400조나 되는 돈이 올 데 갈 데 없어서 흘러 돌아 다니고 툭하면 투기로 들어가는데 이런 게 북한에 투자되고 중소기업들이 대거 북한에 진출하면 지금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중소기업들이 덕을 보는 거에요”라고 말하였다.
400조나 되는 돈들이 북한에 투자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게 된다면 정상회담에서 합의할 남북경협에 대한 재원마련이 가능해진다. 2차 정상회담에서는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가 지정이 해제되어 북한에 국제금융기구의 차관이 들어갈 것에 대비해서 북한이 금융인프라를 정비하고 금융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촉구하고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약속과 함께 약속을 이행할 수단을 만들어야하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