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품절


-오늘은 실험이니까, 다섯 명이 적당히 한 조를 만들어 앉도록.
선생님이 아무 생각 없이 던진 그 한마디에 과학실 안에는 심상치 않은 긴장감이 돌았다. 적당히 앉으라고 해서 정말로 적당히 앉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극히 한순간에 치밀한 계산- 다섯 명 전부 친한 친구로 뭉칠 수 있을지, 아니면 모자라는 부분을 남는 아이들로 채우지 않으면 안 될지- 이 이루어지고, 친구를 찾아 헤매는 시선들이 순식간에 뒤엉키며 조가 짜여진다.-6p쪽

중학교 시절, 얘깃거리가 떨어지면 서로 눈 둘 데를 몰라하고, 별 볼일 없는 화제를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지고, 그리고 어떻게든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요란하게 웃어대던 그 시절에, 수업과 수업 사이의 10분간이 나는 영원처럼 느껴졌었다.-19p쪽

그때의 난 얘깃거리를 찾기 위해 매일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썰렁'해지는 게 무서워서, 보트에 새어들어 오는 차가운 침묵의 물을, 별 볼일 없는 일상의 보고로 막아내는데 필사적이었다. 손가락의 어디를 다쳤다, 어제 본 텔레비전이 재미있었다, 아침에 금붕어가 죽었다……. 하루에 있었던 일을 전부 이야기해도 모자라서 침묵의 물은 다시 졸졸졸 스며들어 온다.-86p쪽

"넌 언제나 한꺼번에 이야기를 쏟아놓지? 그것도 듣는 사람이 듣는 역할밖에 할 수 없는 자기 얘기만. 그러면 듣는 쪽은 맞장구치는 것 말곤 할 게 없잖아. 일방적으로 얘기하지 말고 대화를 하면, 침묵 따위는 생기지 않아. 만약 생겨도 그건 자연스런 침묵이니까 초조해지지도 않고.-86p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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