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책, 상실과 상실이 만나
『안녕, 내일 또 만나』
윌리엄 맥스웰은 뉴요커의 편집자로 일했고, 다수의 현대 영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뽑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중 단연 많이 언급되는 부분은 앨리스 먼로가 극찬에 극찬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작가이기도 하다. 한 작가에게 이토록 많은 영감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작가라니, 더없이 궁금해진다.
나는 『그들은 제비처럼 왔다』이라는 작품으로 처음 접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때도 큰 감명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화려한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고, 덥덤한 어투로 인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세공해놓는 성실함도 좋았고, 아름다운 비유 역시 좋았다. 큰 재미를 바라고 읽는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인물들과의 거리감이 멀지 않아 공감할 수 있었고, 나에게서 있었던 상실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작가 자신이 겪은 상실에 대한 경험은 몇번이고 그 내면 속에서 아물지 않는 기억으로 회상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실에 대한 경험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이전에 읽었던 작품에서도 그랬고, 이번에 읽은『안녕, 내일 또 만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상실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학자같기도 하다. 상처를 감추기 위해 회피하는 게 아니라 끈질기게 직면하고 있다는 점은 꼭 배우고 싶은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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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구성은 요근래 흔히들 말하는 막장의 불륜 스토리를 포함한, 한 마을에 이웃으로 살았던 두 소년의 상실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룬다. 병으로 어머니를 잃었고, 다리를 잃은 형과는 심적인 연결고리를 잃었고, 아버지의 재혼을 통해 그마저도 상실로 느낄 만큼 아직 다 자리지 않은 소년의 상처. 그리고 그 소년 옆에 늘 거부없이 함께해주던 소년의 상처 역시 가족으로 인한 것이었다. 불륜관계로 인한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다시 한번 잃게 된 아버지.
상실을 겪었지만 이를 밖으로 내색하지 않은 채, 우정을 나누는 두 소년은 많은 시간이 지나 우연히 다시 재회한 학교 복도에서 스쳐간 눈빛 사이로 지난 시간들에 대한 인사를 나눈다. 각자의 마음 속으로.
내일 다시 만나기로, 그러나 인사만 남은 아쉬운 이별이 되지만.
이 작품 역시 덤덤한 어조로 여러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윌리엄 맥스웰의 대표작같은 작품이라고 했을 때 조금의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내겐 맨 처음 접한『그들은 제비처럼 왔다』이 더 매력적이고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추천하는 명작이 나에게는 별로 맞지 않는 건가, 싶어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것만큼 재미없는 일도 없지 않은가. 어쩌면 더 큰 기대로 보았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고, 생각보다 여러 인물이 등장한 만큼 비중조절이 잘 안 된 걸로 느껴져서 그런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소년의 상실을 다루기 위해 가족이 등장하는데, 주인공인 '나'의 가족을 다루는 것에 비해 클레터스의 가족을 다루는 부분이 피상적으로 느껴졌다.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땐 시큰둥한 기분만 남았는데, 후에 다시금 생각해볼 수록 여러 가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상실과 관계성, 내일이면 여느 날처럼 똑같이 만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 우정.
묘한 여운이 일어서, 다시금 책장을 열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여러 번 곱씹어 볼수록 매력적인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중심화두처럼 가족, 그리고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샐린저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신기하게도 윌리엄 맥스웰은 실제로 샐린저의 편집자이기도 했다. 샐린저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탈고한 후 바로 차를 몰고 맥스웰에게 찾아가 그의 집 현관에 앉아 함께 원고를 검토한 유명한 일화도 있다고 하니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고, 이는 함부로 손댈 수 없는 견고한 성벽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여운이 있는 그런 작품들을 쓴 작가들이 이미 인연을 맺고 있었다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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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용기와 영감을 줄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한없는 신뢰감을 얻었던 편집자이자 작가였던 맥스웰의 작품은 이만하면 이미 검증된 게 아닌가 싶다. 그의 작품이라면 믿고 읽을 수 있는, 윌리엄 맥스웰은 그런 작가이다. 좋은 기회로 다른 작품도 더 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