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라일락 붉게 피던 집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4년 5월
평점 :
우리는 진실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아름답게만 기억하려고 하는게 아닐까,
『라일락 붉게 피던 집』
일명 장르문학이라 칭하는 미스터리 소설을 국내작품으로는 거의 찾아보지 않았었다. 문단의 순문학의 자리가 확고할 뿐더러 뭔가 등한시 되는 분위기도 한몫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시장 구조도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일본의 장르문학이 거의 장악하다시피 차지하고 있는 구조가 자리매김한 듯한 형태이기 때문이다(내가 잘못 본 것일 수도).
그야말로 숨 쉬듯 써내려 가는 듯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이미 수십 권이 번역 출간됐으며, 영화로도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미미여사의 작품도 많이 번역되고 있고 그 외에 요즘엔 라이트 노벨(우리나라로 치면 웹소설에 해당하는)도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작년에 국내 장르문학계에 획기적인 바람과 같은, 예상치 못한 수확은 단연『미스테리아』의 창간이다. 추리소설 전문 잡지라니, 국내 훌륭한 추리문학이 모두 모였다면 충분히 찾아볼 만한 것 아닌가. 우연히 읽은 이 잡지의 편집장? 편집위원의 인터뷰 중 추천작을 몇 작품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선택한 작품이 바로『라일락 붉게 피던 집』이다.
**
주인공은 잘나가는 대중문화 평론가이자 인기강사인 수빈. 수빈은 한 신문사의 의뢰로 어린 시절을 주제로 한 칼럼을 쓰기 시작한다. 1980년대 세울의 한 다가구 주택. 여러 세대가 한 집에 살았던 그 시절, 가난하지만 정겨운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는 수빈과는 다르게 아름답게 포장된 기억 속엔 상처뿐인 진실이 가려져 있을 뿐이었다. 라일락 나무 옆에 있던 집이라 라일락 하우스라 불리었던 집. 추억을 회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수빈의 유년시절의 이야기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불러 일으킨다. 각 세대의 구성원마다 생동감 있게 그려지고, 인물간의 관계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 집에서 옆집 가족의 사정을 헤아려 아이의 끼니도 챙겨주기도 하고, 정을 나누며 살아간 그 시대에도 단절이란 게 존재했단 게 흥미로웠다.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못보는 진실이 있었던 것이다. 아이의 시각으로 봐온 기억이기에 가능했던 부분일 수도 있지만, 새삼 인간관계의 오묘함을 본 듯하다.
리얼리즘을 살린 서사에 구성도 짜임새 있어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읽었지만, 아쉬운 점 역시 있다.
이건 저자의 취약점인 것인지 알 도리는 없지만, 기껏 공들여 만든 작품에 생뚱맞은 로맨스랄까? 멜로의 삼각관계는 공감도 안 되고 재미도 떨어진다. 주인공인 수빈이 과거를 되짚어 보며, 라일락 하우스 이웃들을 만나며 진실을 알아가는 모습은 좋은데, 여자로서 수빈은 좀 이상하게 보였다. 제대로 설명을 잘 못하겠지만 히스테릭한 여자의 일면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유일하게 걸리는 부분이었다. 어떤 부분에선 섬세하지 못한 인물로 그려지기도 했으니 그냥 그러려니 넘길 수도 있다.
사회의 한 단면을 예리한 시선으로 보여주면서도 미스터리적 요소도 갖췄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작품을 기대해볼 만한 것 같다. 국내에도 훌륭한 사회파 미스터리가 많이 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내가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것일 뿐일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