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접시의 시 - 나희덕의 현대시 강의
나희덕 지음 / 창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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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에게 전수받는 시 읽기의 노하우

 

 

 

 

한 접시의 시』





시라는 장르는 참으로 매력적이지요. 물론 어렵다는 편견을 쉽게 지울 수 없는 것이 저 역시 시는 소설과 달리 너무 어려운 장르로만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많은 말들과 사유들이 한 문장 혹은 한 단어 등으로 압축되어 있으니 어렵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이렇게 시가 어렵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우리나라의 국어교육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시의 요소와 형식은 무엇이며, 구조는 어떠한지, 시적화자는 누구니, 청자는 누구고, 의미망은 물론 리듬은 내재율, 정형률 등등 정해진 답이 있고 그걸 외우다시피 하니 정작 음미해야할 시의 맛은 혀끝에 닿기도 전에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일례로 떠도는 이야기 중 어떤 시인의 자녀가 수업시간에 그 시인의 시를 배우게 되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운 그대로 시인에게 전하니, 자신도 모르게 의미가 모두 정의되어 있어 되레 당혹스러워 했다고 합니다.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온전히 독자의 몫이라고들 합니다. 그럼 문학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도 정해진 시스템 속 구축되어진 내용들을 바탕을 하고서라도, 읽는 학생으로 하여금 개인적으로 해석할 여지도 주어져도 하는 게 타당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그걸 오답이라고 칭할 게 아니라 해석의 자유라고 여겨지면 어떨까요. 물론 필수과목의 교과서 중 국어교과서를 가장 좋아하고 읽기를 즐겼던 저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교양과 지식을 쌓는 데 있어서의 올바른 시스템을 통해 배움을 얻게 되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지만, 괜한 아쉬움에 한 번 적어봤습니다. (이것도 얼추 십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 말한 것이니, 지금은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모르는 것이구요.)

 

 

해서 소설만큼 시도 많이 사랑받길 바라는 마음에서 좋은 책을 추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처음으로 혼자 중얼거리듯 적는 게 아니라 말하듯이 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나희덕 시인의 시는 교과서에 많이 실리기도 했고, 시 문학상을 모조리 휩쓴 시인이기도 하고, 현재 교육자로서 시를 가르치는 입장에 서 있기도 합니다. 그녀는 실제로 고등학교 교사로서 근무한 경험도 있기도 하니, 어떻게 보면 시인인 동시에 교육자로서의 삶이 거의 몸에 베인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엔 시를 통한 치유의 방식이랄까요, 각박하고 지친 삶 속에서 쉼이라는 것은 필수적인 데, 또 마냥 쉬기에는 어렵기도 하고, 늘 성과와 달성할 목표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니 보니 쉬는 것도 쉬는 게 아닌 형태가 돼버렸죠. 해서 시 읽기라든지, 치유매체로써 시를 모은 책들이 많이들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중에서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이유는 시를 어렵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초보 독자들에게 길잡이 되어줄 책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물론 시읽기에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의 방식대로 음미하면 그만이지요. 하지만 읽다보면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읽고, 혹은 그 이전에 잘 안 읽혀서 난감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친절하게도 [한 접시의 시]에서는 여섯 갈래로 나누어 시를 만나는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시적 언어와 상상력, 화자, 리듬, 이미지, 은유와 상징, 서정과 서사. 대략 이렇게 말이지요.

 

각 갈래별 설명과 덧붙여 예시로 든 시가 부분 부분 발췌되어 있고, 관련된 특성이 잘 드러난 시들을 몇 편씩 덧붙여놔서 시를 읽고 직접 느껴볼 수 있도록, 그래서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여기에는 시인의 개별적으로 추가한 해석? 풀이라고 해야 할까요. 덧붙인 설명들이 세세하게 덧붙여 있어, 시인의 시 읽기의 노하우를 엿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정독하고 나면 시인이 시를 굉장히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읽는 독자로 하여금 훌륭한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것도 굉장히 알찬 수업을 말이죠(교과서 같아 싫으신 분들도 있으시겠지요).

 

 물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느껴지는 것은 모두 개인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니, 옳고 그르다 할 수는 없습니다. 입맛에 맞으면 계속 읽는 것이고 아니면 마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시를 읽은지 오래되어 도무지 모르겠고, 답답하고 왜 이렇게 안 읽히는 것일까 짜증이 치밀 때, 찾아보는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느낀 시의 매력이란 다 보여주지 않는데에 있습니다. 즉 시인이 섬세하게 만들어놓은 세계 속에 들어가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시적인 것'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를 가지기 쉬운 장르이기도 합니다만, 시는 감성의 산물이라고 하더라도, 감정과잉이 되면 되레 매력이 사그라지는 법이죠. 단순히 이야기 하자면 슬프다고 대놓고 슬프다고 말하는 것은 시라고 말하기 애매하다는 것입니다. 슬프다고 직접 말하고 드러내는 것보다, 그려볼 수 있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측면에선 논리가 분명해야 되기도 하는 것이죠. 시적 비약도 분명히 존재하지만요.

 

아직 시에 대해 그렇게 잘 알지 못해, 떠들어본 것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도 있듯이 말이죠.

 

 

이 책에 실린 많은 시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시 두 편을 남기고 어색한 이 말투와 리뷰 같지 않은 사설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나'와 '너'는 이동 중 part

 

 

먼지처럼 

 

 

                              - 이장욱

 

 

 

 

나는 코끼리의 귀가 되어 펄럭거리고

너는 개의 코가 되어 먼 곳을 향하고

우리는 공기 중을 부드럽게 이동하였다.

 

활명수를 마시고 있는 약국 안의 사내와 함께

머리를 말리고 있는 여자의 거울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배경이 되어

무한히 지나갔다.

 

오늘 아침의 세계는 역사와 무관하고

어젯밤의 세계는 다만 어젯밤의 세계,

우리는 어지럽고 아름다웠다.

먼지처럼

음악처럼

 

오늘은 누군가 성수와 뚝섬 사이에서 사라지고

누군가 병든 유태인처럼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누군가 박물관의 입구처럼 조용해지고

아침에는 추리 소설 속의 탐정처럼 깨어났다.

 

노련한 사서들은 언제나 음악의 비유를 경계했지만

우리는 미래의 음표로 나아가기 위해 현재에

집중해야만 하는 피아니스트와 같이

 

나는 내일도 기린의 목처럼 부드럽게 휘어졌다.

너는 모레도 하마의 입처럼 무거워졌다.

우리는 삽십 년 후에도 가득한 먼지처럼

천천히 이동하였다.

 

 

           - 『정오의 희망곡』, 문학과 지성사 2006 

 

 

 

 

* 물로 지은 방 part

 

 

눈물 한 방울 

 

 

                              - 김혜순

 

 

 

 그가 핀셋으로 눈물 한 방울을 집어 올린다. 내 방이 들려 올라

간다. 물론 내 얼굴도 들려 올라간다. 가만히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으면 귓구멍 속으로 물이 한참 흘러들던 방을 그가 양손으로

들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가 방을 대물렌즈 위에 올려놓

는다. 내 방보다 큰 눈이 나를 내려다본다. 대안렌즈로 보면 만화

경 속 같을까. 그가 방을 이리저리 굴려 본다. 훅훅 불어 보기도

한다. 그의 입김이 닿을 때마다 터뜨려지기 쉬운 방이 마구 흔들

린다. 집채보다 큰 눈이 방을 에워싸고 있다. 깜빡이는 하늘이 다

가든 것만 같다. 그가 렌즈의 배수를 올린다. 난파선 같은 방 속

에 얼음처럼 찬 태양이 떠오르려는 것처럼, 한 줄기 빛이 들어온

다. 장롱 밑에 떼 지어 숨겨 놓은 알들을 들킨다. 해초들이 풀어

진다. 눈물 한 방울 속 가득 들어찬, 몸속에서 올라온 플라크톤들

도 들킨다. 그가 잠수부처럼 눈물 한 방울 속을 헤집는다. 마개가

빠진 것처럼 머리속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한밤중 일어나

앉아 내가 불러낸 그가 나를 마구 휘젓는다. 물로 지은 방이 드디

어 참치 못하고 터진다. 눈물 한 방울 얼굴을 타고 내려가 번진

다. 내 어깨를 흔드는 파도가 이 어둔 방을 거진 다 갉아먹는다.

저 멀리 먼동이 터오는 창밖에 점처럼 작은 사람이 개를 끌고 지

나간다.

 

 

           - 『불쌍한 사랑 기계』, 문학과 지성사 1997

 

 

 

 

 

 

(소리 내어 읽어보기를 추천드립니다. 읽다보면 입에 걸리는 구절도 있고, 그냥 눈으로 읽을 때와는 다른 느낌을 전달해주기도 하기 때문에, 직접 천천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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