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 - 짜릿한 자유를 찾아 떠난 여성 저널리스트의 한 달에 한 도시 살기 프로젝트!
마이케 빈네무트 지음, 배명자 옮김 / 북라이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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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향한 열망, 결국은 나를 여행한 것임을,



『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








프리랜서 기자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마이케 빈네무트. 183cm의 장신의 50대 싱글 여성이다. 어느날 그녀는 유명 퀴즈 쇼 <누가 백만장자가 될 것인가?>에 도전하여 상금 50만 유로를 받는 큰 행운을 누리게 된다. 인터뷰에서 말했던 그대로, 1년에 한 달씩, 12개 도시를 여행할 것이라는 목표를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22kg의 커리어 하나와 노트북, 그리고 가벼운 옷차림


그녀가 지구를 돌고 돌아 자신의 거처인 함부르크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을 고스란히 담긴 이 에세이는 가벼운 듯, 묵직한 무언가가 담겨 있다.


여행에 관해 별 관심이 없었기에, 그와 관련된 서적을 잘 찾아보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도시를 방문해 현지인처럼 생활하며 여행하는 방식은, 만약을 가정하여 내가 꿈꾸던 여행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어떤 걸 얻고, 어떤 것들이 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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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글들은 모두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대상은 친구나 가족이 되기도 하고,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또는 과거의 자신이나 전 남친이 되기도 한다. 받는 대상이 따로 있지만, 읽다 보면 친근한 말투 속에 녹여진 에피소드나 자신이 느낀 점들을 모두 솔직하게 풀어져 있어 저자와의 거리감이 가깝게 느껴지게 한다.

 

어쨌든 남들이 쉽게 누리지 못한 행운을 얻은 것에 대해 알차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만약 내가 상금을 타게 된다면 어떠할까. 도전의 시작 전에 했던 인터뷰에서 했던 목표를 그대로 실천할까, 아님 지금 당장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용도로만 쓰여질까. 


물론 여행에서 돌아온 그녀가 가장 크게 깨달은 것들 중 하나는 꼭 이렇게 자금이 없어도 여행은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하게 작용된 건 떠날 수 있는 '용기' 라는 것.


(글쎄요)



무계획, 무약속, 무타협의 여행



사람마다 여행하는 방식이 각자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대학시절 친한 친구들과 2박3일로 국내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물론 꼼꼼하게 계획을 세운 친구가 있어 좋은 점도 많았지만, 의견조율이 잘 되질 않아, 자꾸만 엇갈렸었다. 시간대비 가장 효율적으로 여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최대한 그 도시에 사는 사람처럼 생활하듯이 여행하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다. 난 후자 쪽에 속하기에 빡빡하게 세워진 계획으로 진행되는 여행에는 거부감을 느꼈고 그 후론 '여행'이란 것을 가본 적이 없다



그녀는 계획이 없었다고 하지만, 적어도 어디를 가고 어디를 안 갈건지는 분명히 정해뒀기에, 큰 틀은 있되, 세부계획만이 부재했다고 생각된다. 여행지로 자주 선택되는 도시들이 그 틀에는 제외되어 있어 의문이 들었다고는 하나, 결국은 여행자의 마음대로다. 자기가 가고 싶은 도시를 방문하는 게 가장 최선일 것 같다. 많이들 방문한다고 해서 꼭 자신에게도 잘 맞는 곳이라고 말할 순 없을테니 말이다.


그녀는 우연에 몸을 맡기어 친구의 친구, 타지에서 새로이 사귄 친구가 소개해준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만들고, 우연의 허락을 받아 점차 커진 눈덩어리처럼 널리널리 관계를 불려나간다.


또한 저널리스트기라는 직업의 속성상 어떤 한 장소에 구애받지 않기에, 여행 속에서 생활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게 가능했다. 아파트형 게스트 하우스에 묶고 제2의 도피 장소를 정해, 매일같이 방문하여 현지인처럼 생활했다.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고 그 인연들의 또 다른 인연을 얻기도 했다.


그녀는 여행준비의 일면으로 여행블로그를 개설했는데, 앞으로 쌓일 추억들을 기록해두고, 소통하는 방식으로 그때 그때의 호기심을 해결하기도, 또다른 즐거움을 얻기도 했다.


그녀는 독특하게도 일을 벌이는데, 여행하는 틈틈이 색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약간은 개인적인 성향이 담긴 실험들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쥐트도이체 차이퉁>과 같이 독자에게 주문을 받아,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도시에서 무언가를 부탁하면 자신이 대신해주는 것이다. 주문은 사소한 것부터 허무맹랑한 것까지 천차만별이다. 현지 물건을 구입하는 것부터 동창을 대신 만나보는 것을 포함하여, 요구사항은 참으로 다양했다. 

어찌보면 미친 짓 같기도 한데, 이런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행하는 것을 보면 활력이 넘치는 사람 같다. 걷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과 만나 한 잔 기울이며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는 듯 하다(술 얘기가 빠지질 않는 걸 보니, 사람자체를 좋아하는 인물같다).


각 도시별로 배움은 분명히 존재했기에, 대략 열 가지로 추려 정리하는 식으로 마무리한다.



좋아하게 될 일 말고 지금 당장 좋아하는 일 하기.



그녀는 가보고 싶은 곳을 방문하기도 하지만, 배움에도 열성적이다. 우쿨렐레를 배우기도 하고, 스페인어와 탱고를 배워본다. 많은 배움을 통해 그녀가 다다른 결론은 좋아하게 될 일이 아닌 당장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특히 탱고를 배우면서 더욱 확실히 깨달은 듯 하다. 


세상엔 하고픈 일도 많지만 해야 할 일도 참 많다. 사실 해야 할 일의 목록을 해치우는 게 그리 즐겁지 만은 않다. 막상 닥쳐보면 꼭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 아닐 때도 있다. 


단지 실행에 옮길 용기가 부족했을 뿐. 

허니 내가 사랑하는 게 뭔지 찾아내서 그것을 하면서 최대한 매순간을 누려보라고 한다. 


사실 마음 내키는 대로 살기가 그저 쉬운 시대는 아닌 것 같다. 사회에 따라 그 분위기도 달라지는 것일까. 그녀가 반복해서 말하는 내려놓기, 버리기, 눈치 안보고 살기, 하고 싶은 대로 살기, 아무 것도 안 하기 등등. 실행해 보고픈 매력적인 것들은 참으로 많은데 왜 이렇게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려운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다행스러운 한 가진,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대답을 바꿔도 된다는 것이다. 사이의 틈이 존재하니까. 질문을 던지는 힘으로, 질문을 사랑하는 힘으로 살아가보자.



순간을 사랑하기



도시와 사람 간에도 상극이 있다. 긍정적인 성향에 뭐든 잘 흡수하는 듯 보이는 그녀에게도 상극인 도시가 있었는데, 인도 뭄바이가 그러했다. 빈부격차와 만원버스, 오염된 공기와 단절된 환경.


도시와 대화를 나누듯 여행을 해왔는데, 상극인 도시를 만나고 좌절하게 되고 친구 네트워크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만나는 사람도 없게 되었고, 기껏 세웠던 여행이 다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좌절을 맛보게 된 것이다. 


그녀는 인도 뭄바이에서 인내심이라는 걸 기르게 된다. 맞지 않음, 견디기 힘듦. 그걸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자신의 기분을 드러내었기에 그녀의 마음이 더 진심으로 다가왔다.


역사적으로 맞닿아 있는, 이스라엘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프고 또 아픈 공간. 엄숙한 분위기의 속죄일. 도시 곳곳이 멈춰서 고요한 적막이 감도는, 속죄하는 날. 

겸손하였고, 지난 역사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 얘기하였다.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내전, 참혹한 현장. 위험이 도사리는 공간. 그녀는 이 곳을 '삶이 다시 시작되는 곳'이라 말한다.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겸손을 배워간다.

 


 

자유를 향한 열망



여유로움과 설렘으로 시작해서, 색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고, 상극인 도시에서 인내심을 길러야 했다. 또한, 한없이 머무르고픈 곳에서 떠나는 게 아쉽기도 했으며, 생활하고픈 곳을 찾기도 했다. 


그녀는 자유를 향한 열망으로 도전하였고, 변하였다.


현실, 자신의 거처였던 함부르크에 돌아와서도 그녀는 여전히 짐을 풀지 못했고, 여행자의 시각을 버리지 못했다. 이미 자신의 내면이 조금 다른 시선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당연할 것 같다. 여러 도시에서, 여러 사람들과 여러 방식으로 마주하고 그 순간을 나누었다. 되새겨볼 것들과 앞으로 맞이할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 여운을 다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육체의 피로감과 안도가 이런 변화의 시작을 원래대로 돌이킬 수는 없을 것 같다.


현실로 돌아와선 되레 낯선 감각이 주는 안도감에 기뻐한다. 낯설게 하기. 여행자처럼 우연에 몸을 맡기고서 낯설게 바라보는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묻히지 말고, 새로이 실천해보자는 것이다. 새롭게 느끼고, 새롭게 실행하는 것.


가벼운 마음과 기쁨으로 행한 일에는 반드시 보상을 받는 것처럼. 자유의 피를 느낀다. 1년 이라는 시간의 다른 형태의 공백과 변화를 감지한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금 떠날 채비를 한다. 1년 간 12도시를 여행했던 것은,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나를 알아가기 위한 '진짜' 여행길의 시작이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사람은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다른 것을 보고 배우고 느낀다. 각자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 다른 방식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싶기도 하다. 경험하고 느낀 것의 제한을, 그 선을 넘어서고 싶은 것이다.


열 두 도시를 여행한 마이케 빈네무트도 그랬다. 그녀는 각 도시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 각자 다른 인격의 자신을 보았다고 했다. 스스로도 말투와 분위기의 묘한 변화를 느꼈다. 생활하면서 그곳의 얼굴로 닮아가는 것이다.


답답한 현실을 자조하는 내게, 어떤 사람은 늘 같은 조언을 해주었다. 그것 역시 여행이었다. 여행을 떠나보면, 완전히 낯선 곳에서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하지만 사실 난 여행에 딱히 생각이 없어서 이런 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려 버렸다. 


하지만 요즘엔 가끔씩 그런 생각도 든다.

 

한 번쯤은 떠나봐도 좋지 않을까. 너무 한 곳에서 오래 머물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지금이 지긋지긋하니까. 그냥 도피하는 식이 아닌, 조금은 즐기고픈 마음으로 떠나고 싶다. 또 만약을 가정해서.

 

 

진짜 자유라는 것이 존재할까.

아직 어디로든 떠나보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단정하고 싶진 않다.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책을 읽는 내내 부러움 반 설렘 반이었지만. 그렇게 배아픈 현실이지만.


차라리 떠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한데, 자꾸 여건을 따지게 된다.

그저 떠날 날이 멀지 않았음을 확신하고 설렘을 기대할 때, 다시 펼쳐보려 한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곳과 사랑하는 것을. 

숨어 있는 나의 다른 얼굴을 찾아서.



(이 리뷰는 북라이프 북트레일러 스크랩 이벤트에 선정되어 작성되었습니다.)






8. 기대에 부응하느라 삶을 허비해선 안 된다. 남의 기대든 자신의 기대든.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놀랍게도 꼭 해야 하는 일이 별로 없다.
(p 153 / 호놀룰루에서 배운 열 가지 中)

인류학에는 ‘리미널리티‘라는 개념이 있다. 두 발달 단계 사이에 낀 상태로 ‘더는 아닌‘과 ‘아직 아닌‘ 사이의 단계를 말한다. 나는 지금 정확히 리미널 단계에 있다. 더는 떠나지 않고 아직은 여기 있는 상태.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리미널리티 단계에 있는 사람은 주로 목표 상태에 벌써 도달한 것처럼 흉내를 낸다고 한다.
(p 356 / 함부르크, 독일)

내 삶의 최대 장점은 앞으로 무엇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올해 무엇을 할지 나는 모른다. 또한 알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살아보면 이미 내 안에 있었던 걸 그저 끄집어냈을 뿐이다. 나는 세계 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여행한 것이다.
(p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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