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rt & Classic 시리즈
루이스 캐럴 지음, 퍼엉 그림, 박혜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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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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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사랑받는 고전으로 각광 받는 여러 작품들 중 앨리스는 단연 환상적인 요소 덕분인지 다양한 장르로 각색되어 왔다. 애니메이션은 물론 스크린에 상영되는 영화까지. 등장하는 인물? 캐릭터 역시 성격이 워낙 개성이 넘치고 항상 분주하고 다소 정신없게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계속 빠져들어 보게 하는 지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계토끼를 따라 토끼굴로 떨어진 앨리스가 그를 따라 가는 길엔 수많은 동물들(체셔고양이, 겨울잠쥐, 토끼, 가짜거북이 등등)을 만나고 카드 병장과 무조건 사형을 연발하는 여왕이 있고, 어떤 요리든 후추를 뿌려대는 요리사와 신경질적인 공작부인, 전설적인 동물? 그리핀 등 환상적인 요소와 중의적인 표현들이 넘쳐난다.

고전의 색다른 묘미는 어린 시절 접했던 고전작품이 나이가 들어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특히 어린왕자가 그러하고 앨리스 역시 마찬가지로 어릴 적엔 앨리스의 다음 모험은 어떻게 될 지, 모든 이들을 사형시키라 말하는 여왕으로부터 잘 도망칠 수 있을지, 시계토끼는 과연 어딜 가고 있었는지 등 궁금해하며 읽었을 것이다(추측으로 일괄하는 이유는 분명 읽긴 읽은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기 때문).


확실한 건 작가의 취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어유희로 가득하고 풍자적인 성격마저 띠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앨리스 모험의 대부분이 어떤 플롯이 무게중심이 되어 전개된다기보다 말장난이 주를 이루고,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각자 자기 할 말만 하고 있기에 앨리스는 가만히 관찰하기도 하고 호기심 있는 그대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훌륭한 각주 덕에 그 뉘앙스를 대략적으로 읽어나갈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었다. 난 영알못이니까. 하지만 영어를 잘 해서 원서로 읽을 수 있다면 좀더 직접적으로 그런 식의 유머가 잘 와닿았을 지도 모른다. 알에이치코리아 서평활동 덕분에 접하게 된 앨리스의 새로운 판본은 "아트앤클래식"이란 기획으로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퍼엉의 삽화를 함께 보며 각 장면을 그릴 수 있다. 퍼엉 작가의 해석대로 재탄생된 앨리스와 다른 캐릭터의 모습을 보면 몽글몽글이란 표현이 떠오르게 된다. 앨리스의 푸른 여름날 한 장면에 따듯함이 깃든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앨리스는 자꾸만 커졌다 작아지길 반복하고 머릿속에 떠올리는 생각들이 모두 눈앞에 펼쳐지는 사건으로 발생되기도 하며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을 둘러본다. 혼란한 그 세상에선 일상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으며, 티타임마저 자리를 옮기는 식으로 대체하는 우스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어디를 가야 하는지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다소 심오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자신의 생각과 목소리를 가지게 되기도 한다. 도대체 판결을 내릴 수 있긴 한 건지 마지막 타르트 관련 법정 풍경에서 앨리스는 다시금 몸이 커졌다가 본래의 모습대로 돌아온다. 그런 앨리스에게 목을 베라고 명령하는 순간 꿈에서 깨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이 얼마나 멋진 꿈이었나 하고 감탄하고 만다. 

그리고 마치 앨리스의 꿈을 엿보기라도 한 듯 언니의 목소리로 마지막 완결점을 찍는다. 

이 환상세계의 모험담은 앨리스가 자신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듯이, 단순히 몸이 커지는 신체변화가 아닌 내면의 변화와 성장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말장난으로 표현된 트릭이 곳곳에 숨겨져 있고, 이를 해석하며 읽을 수 있다는 것. 앞으로 살아가는 나날들 역시 하나의 이야기처럼 때때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되어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이를 직면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되고 곧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시시한 농담을 던지며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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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운 앨리스는 이렇게 생각했다. 
'차라리 집에 있을 걸 그랬나봐. 계속 커졌다 작아졌다 하지 않아도 되고, 생쥐랑 토끼한데 이리저리 불려 다니지 않아도 되잖아. 토끼 굴로 내려오는 게 아니었어 ……. 하지만 생각해보면 신기하잖아. 이런 삶도 있다는 게! 나에게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가 이야기의 한 가운데에 있잖아. 내 이야기가 담긴 책이 있어야 해, 정말로! 그래, 나중에 크면 내가 직접 책을 쓸 거야. 그런데 지금 난 이미 커버렸잖아.' 

69쪽


애벌레가 근엄하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너 자신을 설명해봐!"
"죄송하지만, 설명을 잘 못 하겠어요. 왜냐면 제가 지금 제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애벌레가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앨리스가 아주 공손히 대답했다.
"더 정확히 말할 수가 없어요. 우선 저도 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겠거든요. 하루에 몸이 이렇게 여러 번 다른 크기로 변하니까 너무 혼란스러워서요."

88쪽


"그래, 아직까진 기분이 좋은 거 같은데. 부탁인데 내가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할지 말해줄래?"
고양이가 답했다.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달려 있지."
"어디든 상관은 없는데……."
"그럼 어느 쪽으로 가든 상관이 없겠네."
앨리스가 설명하듯 덧붙였다.
"어디든 도착하기만 한다면야……."
체셔 고양이가 말했다.
"넌 틀림없이 어딘가에 도착하게 될 거야. 계속 걷는다면 말이야."

123쪽


'얘기를 시작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끝낸다는 거지.'

188쪽


마지막으로 앨리스의 언니는 이 어린 동생이 시간이 흐른 뒤 자신만의 모습을 어떻게 간직한 여성으로 성장할까 그려보았다.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 동안, 앨리스는 어린 시절의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러웠던 마음을 얻허게 간직할까.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을 모아 놓고 신기한 이야기와 오래전 꿈꿨던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까지 들려주며 얼마나 아이들의 눈을 반짝이게 하고 안달나게 할까. 어른이 된 앨리스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행복했던 여름날을 더듬으며, 아이들의 꾸밈없는 슬픔을 공감하고 아이들의 소박한 즐거움에서 기쁨을 발견하며 얼마나 행복해할지 가만히 떠올려보았다. 

253쪽




(이 리뷰는 RHK 북클럽1기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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