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타임워프 - 페미니즘이 한국 사회를 기억하는 방법
김신현경.김주희.박차민정 지음 / 반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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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트스 타임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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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타임워프』 는 버닝썬, 강남역 살인 사건, 낙태죄, 유영철, 88올림픽, 박근혜, KTX 등등 과거의 사건들로부터 현재 뜨거운 화두로 충격과 경악스러운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 사건들까지, 기억의 '병치'를 통해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다각도로 바라보고 있다. 


저자들은 성 산업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여성학을 전공하며 가르치고 있는 교수와 연구자이다. 다수의 연구와 논문, 강의을 통해 여성학 문제를 다뤄왔던 사람들이다. 생각보다는 읽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어서 여성학이라는 학문을 처음 접하게 된 사람에게도 훌륭한 입문서가 될 것 같다. 일단 큰 틀에서 다루고 있는 사례(사건들)가 전체적인 맥락에서 대부분 알만한 주요 사건들을 다뤘기 때문이다. 


작금의 여혐 전쟁과 페미니즘 이슈를 다루는 목소리가 하나 둘씩 터져 나오는게 한편으로는 조금 생경하고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런 상황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고 변화는 어려운 것이며, 아주 멀고 희박한 지점에 있을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점차 모여 외치는 목소리가 반갑기만 하다. 물론 이와중엔 본질을 오염시키는 종자들 때문에 애꿎은 피해자와 편견이 더해지고 폄훼되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지만 신념과 소신으로 무게 중심을 잘 가지고 가는 이들이 있기에 앞으로 나아가는 힘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거라 믿는다.


저자들이 다루는 주제에 관해서도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젠더, 군대내 동성애를 어떻게 인식하고 다뤄왔는지에 대한 지점 역시 흥미로웠다. 이는 사실 크게 의식하지 않고 관심두지 않았던 부분이기에 폐쇄적인 조직내 엄격한 규율이 존재할 거라 짐작은 했었지만 그렇게 폭력적인 방식과 단순화로 행해졌는지는 미처 알지 못했었다.



또한 방송계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적폐는 얼마나 뿌리가 깊은지 손에 쥔 권력을 내려놓지 못하고 마치 신처럼 군림하고 있는 검찰세력과 언론, 소위 윗선들이 행하는 부조리, 행패에 분노가 치민다. 성범죄자들은 확실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집행유예를 받고 사회에 나와 있으며,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들에겐 온갖 조작과 가설로 함부로 씌운 프레임에 가둬두려 하고 있다. 이런 행태가 길거리의 시장 잡배의 폭력과 무엇이 다른지 모를 정도이다. 왜 가해자에게 가야 할 화살이 오로지 피해자로 향하는 것인지, 피해 입은 사실을 왜 스스로 증명해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지러운 판결의 여러 사례 중 황당한 것 중 하나가 왜 그런 일을 당했을 때 거부하지 못했고, 피하지 못했냐는 지적이다. 무지몽매함에서 오는 답답한 벽을 어떻게 깨부셔야 하는지 막막할 뿐이다. 


지금도 해결되지 못하고 어영부영 흩어져 있는 사건들은 현재 읽을 수 있는 텍스트가 있어 알고 있었지만, 과거 88올림픽이나 변소에 대한 이야기, 유영철 사건에서 그가 했던 발언들에게 대해서는 새롭게 알아가는 부분이 있었다. 또한 양공주에서 원정녀라 칭하며 혐오하는 발언을 일삼는 그들이 성매매 자체를 소비하는 자들이라는 것 또한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여성은 땀을 흘리며 뛰는 모습도, 단장이 덜 된 모습도 보이면 안 됐으며, 미적인 요소로 존재해야 했다. 또다른 신분사회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여성 인권이 이제와 제자리를 찾아보려는게  왜 불만과 혐오로만 받아들이는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그러하다. 그동안은 민족주의적으로 일본이라는 국가의 잘못을 지적해왔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자국 내에서도 피해를 입은 사실 자체가 족쇄처럼, 주홍글씨처럼 여겨져 바깥의 시선 속에서 스스로를 감추고 또 감춰야만 했기 때문이다. 


생명 존중과 사회의 성문란이란 잣대로 낙태의 선택과 권리를 다른 곳으로 돌려놓고 죄라 칭하였다. 판단하기 무척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나, 왜 이런 문제를 다루는 주체가 당사자가 아닌 그 고통을 알지 못할 완전한 타인인 것인지도 황망한 현실이다. 묻지마 살인, 사이코패스 등 매체에서 다루는 이유 모를 범죄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으나, 유독 성범죄 관련해서 많이 갖다붙이는 논제이기도 하다. 그저 여성과 약자이기에 살인과 폭력을 행한 범죄가 있었음에도 묻지마 살인이었다며, 정신감정을 통한 감형 등 병증에 집착하며 그에 따른 합당한 사유를 찾으려는 방식도 다소 강압적으로 느껴진다. 


읽는 내내 분노하고 안타까웠으며 때론 공감하기도 또,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어떤 텍스트를 읽어도, 아주 잘 읽어내야 한다는 주의문이 붙어도 '박근혜'를 말하는 텍스트에서는 역시나 거부감이 든다. 그가 '여성' 대통령으로 실패가 아닌 여성 '대통령'으로서 실패했다고 말하는 부분에는 공감하지만, 여성이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어떠한 여지라도 주는 부분에서는 공감할 수가 없다. 물론 이 책에서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박정희라는 더러운 권력 아래 편안히 살아온 생에서 '여성'이라고 무얼 더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게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일 따름이다.


핸디북 같은 작은 책자 속에 다루는 내용은 거대하고 깊으며 무궁무진하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나에게 여성학 입문서처럼 다가왔다. 그것도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를 살펴봤기 때문에 더더욱이 그러하다. 페미니즘이라고 말할 때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아주 많다. 관련된 서적도 조금 읽어보게 되었고, 이를 토대로 상상을 더해 재탄생된 문학작품도 읽어보았으나, 아직도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부분도 있다. 중심을 잡기 어려울 때도 더러 있다. 자꾸만 '나'의 자리로 겹쳐보여 아프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다가오는 게 더 큰 게 사실이다. 우선 이렇게 점차 모이는 목소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해갈 수 있다는 그 시작점이 보이기를 바랄 뿐이다. 고통을 끊어낼 수 있는 길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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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병치시킨 사건들에 현재 진행형인 사건들을 창조적으로 병치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최근 헌법재판소의 낙태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명랑한 수술'과 겹쳐 본다면 여성의 섹슈얼리티 권리에 대한 언어와 세계가 더 풍부해질 수 있지 않을까? 서울올림픽에서 수행된 여성들의 환대 역할은 평창동계올림픽에서의 북한 여성들에 대한 집중적인 재현과 은밀한 관련을 맺고 있지는 않은가? 10 · 26의 여성연예인들이 고 장자연 사건뿐 아니라 김학의 사건과 버닝썬 사건을 해석하는 새로운 단초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일본군 '위안부' 기억 활동을 현재의 성폭력 사건을 둘러싼 성폭력 부정의 담론장과 병치시킨다면 앞선 기억 활동은 낯설게 응시될 수 있을 것이다.   202-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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