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해자들에게 - 학교 폭력의 기억을 안고 어른이 된 그들과의 인터뷰
씨리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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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해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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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회피형 인간이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나 기억에서 도망치고 외면하기 바쁘다. 그게 나에게는 일종의 생존방식이었던 것 같다. 모른 척 덮어두면 시간이 지나 쌓인 두꺼운 먼지 속에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은 보지 않아도 됐고, 그러면 그럭저럭 살만해진 듯 했다. 찌질하고 창피한 지난 날의 나는 그렇게 어두운 구멍 속에 쳐 넣어두면 괜찮을 것만 같았다. 그때는 사회성이 부족했고,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으며 수동적이기만 했다. 지금이라고 많은 변화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때보다는 나아진 듯 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희석되어 괜찮아졌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제목에서부터 나를 콕콕 찌르는 이 책과 담고 있는 주제에서 나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나의 상처와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왕따"라는 문제는 복합적인 측면이 있다. 피해를 당하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절실하지만 여기엔 같은 반 학생들부터 선생님까지 방관자가 존재하고 이미 형성된 깨트릴 수 없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이를 깨고서라도 용기내 손을 내밀어 줄 단 한 사람이라도 존재했다면, 피해를 당한 학생들은 자신을 스스로 자책하지도, 무기력하게 고통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을 거란 말에 공감이 간다. 하지만 그게 그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할 거란 말이 이제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가정을 덧붙이게 되지만.


왕따를 당한 기억을 인터뷰로 풀어내, 여자반 남자반 나눠 이야기를 한다. 언어폭력부터 물리적인 폭력까지. 그 범위와 정도는 지나치고 유해하다. 그리고 가해자들은 하나같이 그런 자각이 없는 게 태반이다. 가해자들에겐 가해자들이란 인식이 없고, 이를 오로지 피해입는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뿐이다. 학창시절 학교는 살아가는 세계 그 자체, 즉 전부와도 같다. 그곳에서 배척당하고 소외당하게 되는 순간 손발이 묶인 듯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보면 그토록 힘든 시간에 반드시 학교에 가야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를 깨닫고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도움을 청할 어른도 없고, 부모님께도 말할 수 없어 혼자서 끙끙 앓아야 하는 것뿐 세뇌당하듯 들어온 폭력적인 말에 갇혀 자신의 잘못으로 몰고 가 이 고통을 끝내기 위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할 수밖에 없기도 한 것이다. 



강인한 사람이 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신체적으로 힘을 기르는 것이 아닌 강한 멘탈과 자존감을 갖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학교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은 가정폭력에 노출되기도 쉽다. 그러니 그 시간을 견디고 버텨내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것이다. 



용기를 내어 인터뷰를 한 어른이 된 왕따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읽고 보며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당했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종종 스스로를 혐오하며 파괴하는 힘으로 살아가는 것도 사는 것이라 믿었는데, 사실은 용기가 부족했던 것만 같다. 지나친 엄살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되돌아보면 난 왜 그토록 유리멘탈이었고, 강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원망스러웠다. 내가 당한 고통보다 나의 가족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이 더 괴로웠었다. 나만 당하면 그만이지 싶은 고통이 다른 부분에서 나의 형제도 같이 겪고 있었구나 싶으면 속이 너무 상했다. 밝은 빛만 전해주고 싶었는데 필요없는 어둠까지 떠안고 있었구나 싶어서. 



그래서 이들이 용기를 내어 왕따를 당했던 과거의 기억, 당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지, 그 전엔 어떤 학생이었는지, 방관자와 가해자에 대한 생각 등 고백하고 이야기하는게 지금도 같은 고통을 겪고 있을 이들에게, 혹은 겪었던 이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주는 듯했다. 



그저 텍스트로만 봤을 때도 가슴이 너무 아팠는데, 육성으로 말하는 걸 보고 들으니 울컥한 심정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은 이렇게 선동과 같은 정치질에 휩쓸리지 않을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하고, 솔직한 속내를 들어줄 이가 필요하다. 스쳐 지나가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도 견뎌낼 용기와 힘을 주는 것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그건 꼭 행운과도 같다. 이런 일들이 없었다면 오히려 그저 무난하게 학교생활을 잘 지냈을 것이고, 오히려 밝고 쾌할하게 보냈을 수도 있었다. 자존감이 바닥치지 않았을 것이고 무기력하게만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이 덕분에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는 이는 정말 심지가 굳건한 사람같아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해보다는 인정이란 말이 있다. 어차피 나와는 다른, 완전한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나조차도 스스로의 본질의 근원과 어디서오는지 알 수 없는 의식, 생각들을 일일이 짚어보기 힘든데,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그냥 인정하는 것이다.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구나 하는 수밖에. 아직 가해자들까지 이해할 수 있는 관용을 가지기엔 속이 너무 좁아서. 그저 그런 사람들이 있구나,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튜브라는 매체가 새로운 소통의 창구가 되어  시간이 지난 뒤에 다양한 반응이 오고 있다는 후기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꿈꿔보게 된다. 불안정하고 알 수 없기에 더욱 잔혹하고 정도를 모르는 폭력이 난무한 그 시절에 대해. 어떤 부분에서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의 흔적들에 대해.



 때문에 그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 같다. 절대 너의 잘못이 아니고, 지금까지도 이렇게 버텨와줘서 너무 고맙다고. 참고 견디면 시간은 지나가겠지만 아픈 기억은 사라지지 않으니, 도움을 청하고 소리쳐야 한다고. 너는 그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트라우마란 결국 스스로를 마주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는 일이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아직도 용기가 부족한 내겐 다소 버거운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무던하게 지나칠 수 있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잊고 싶으니까 조금씩 흐려지는 것일 수도 있다. 단순해지는 건 기질 탓이 크지만. 



어쨌든 개인적인 얘기를 제외하고서 리뷰를 써야 하는데 그저 감정만 나열한 부끄러운 글만 남기게 되어 부끄럽지만...


상처받은 모든 이들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본다. 그래서 소중한 그들의 삶이 더욱더 찬란히 빛나고, 아름다운 기억들만 새겨지길 바란다.









(이 리뷰는 RHK 북클럽1기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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