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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아메리카나 1~2 - 전2권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메리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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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 / 미국적인 것들이란?
아디치에의 네 번째 작품 『아메리카나』의 큰 틀은 단순하게 보자면 연애소설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연애소설의 얼굴을 한 인종차별과 상처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이야기 속 화자는 이페멜루와 오빈제로 현재와 과거의 시점에서 교차되며 서사가 진행된다. 소울메이트 같은 두 사람이 중학생 때 처음 만나 사랑이 빠지고 미래를 함께 꿈꿨지만 상황에 따라 멀어졌다 다시 재회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당시 나이지리아의 정치 경제적 상황에 따라 곪아터진 문제가 곳곳에 발생하여 대학은 파업하여 문 닫는 날이 지속되었고, 이에 이페멜루는 주변의 도움과 권유에 따라 SAT 시험을 보고 75% 장학금을 받기로 한 것에 감사하며 미국에서의 새로운 생활, 즉 아메리칸드림을 꾸기 시작한다. 떠난 자와 남겨진 자의 이야기 같았으나, 미국에서의 삶과 문화를 동경하던 오빈제는 결국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의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 돌아와 나이지리아의 거물이 되기에 이른다.
지나치게 강박적이고 헌신적인 종교활동에 맹신하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아버지. 군사 정부의 거물로 장군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사내의 정부가 된 우주 고모까지. 이페멜루의 주변 환경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우등생이었지만 딱히 꿈이나 목표가 뚜렷하게 있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행복한 삶을 원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재력과 힘을 가진 남자에게 기생하는 우주 고모의 삶의 형태를 혐오하고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든 일어서보려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페멜루는 어떤 측면에서는 타인의 티끌과 같은 흠을 아주 크게 보고, 자신의 흠은 모른 체하는 그저 그런 약은 인물로 보일 수 있으나, 그가 매력적으로 느껴진 데는 단순히 외관에 대한 묘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 대한 지적에 수용하는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 인종차별에 대한 관심이나 생각, 고민 등을 해본 적이 있나보면 살아오며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그저 다른 이가 겪었던 일화들에게 대해 같은 한국인으로서 공감하고 같이 감정이입한 약한 분노만 있었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다.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지점은 다양하겠지만, 어떨 땐 나의 삶의 형태나 관심사에 따른 것이기에 순수 한국인, 즉 한국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경험과 이해는 직접 경험한 것과 알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차이로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겪어본 적이 없으니 와 닿지도 않고 관심이 가지도 않는 것이다.
어떤 창작물에서든 무조건 주인공(화자)에 이입하여 보는 사람인 나 역시 이페멜루가 겪는 타국에서의 소외감, 차별과 고단함에 같이 분노하면서도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미국에서 유색인종이 받는 차별보다 유색인종 여자가 겪는 차별까지 더해진 걸 보며 더 답답해졌다.
이페멜루가 십년 이상 미국에서의 삶을 유지하며 이룬 것들만 보더라도 내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회 보장 번호를 임의로 사용하여 생활했던 시절보다 잘생기고 낙천적인 부유한 백인 남자친구의 전화통화 하나로 해결되는 일이 더 큰 기회가 되었다. 반면 오빈제 역시 어머니의 도움으로 영국에서의 비자를 얻어 잠시 머무르게 되었지만 다른 이의 국민 보험 번호를 통해 일자리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좁은 아파트에서 룸메이트와의 생활의 불편함을 감내하면서도 등록금과 월세를 내는데에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무수한 일자리 면접을 봤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마지막 벼랑 끝에서 할 수 없어 선택한 어느 테니스 코치의 긴장을 풀어주는 일이란 이페멜루 스스로를 갉아먹고 상처 입히는 일이었고, 자신이 더럽혀졌다는 수치심에 안식처와도 같은 오빈제와의 연락도 끊게 되었다.
오빈제 역시 처음엔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해야 했고, 위장결혼을 하며 시민권을 얻고자 했지만 결국 실패하게 되었고, 부유한 거물이 되기까지 주변의 투자와 도움이 있어야 했지만, 두 인물 모두 나이지리아에 돌아와 가지게 된 생활수준을 보면 차이가 아주 컸다. 물론 이페멜루가 자신이 살고 싶었던 곳에 집을 얻었고, 그동안 쌓은 이력으로 거짓말 조금 보태 잡지사 일자리도 구했으며, 이년치 집세를 미리 낼 수 있을 만큼 재정상황이 많이 나아졌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야기 속 여자들은 왜 늘 남자의 재력을 기대해야 하는 것인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이페멜루가 자신의 친구를 염려하며 지적한 블로그 글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젊고 매력적인 여성은 대개 부유한 거물들의 애인일 것이라는 암시는 불쾌하고도 씁쓸한 현실이었다. 지적인 인물로 묘사된 대학 교수 블레인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해고 위기에 처한 경비원을 위한 시위활동을 하는데에 이페멜루가 다소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경비원은 그에게 성추행, 성희롱을 한 노인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페멜루가 인종에 대한 문제를 생활 깊숙이 뼈저리게 느끼고 이를 표현하게 되며 블로그를 통해 세상에 대해 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후원금과 광고 요청, 인터뷰, 강연까지 활동의 저력을 넓혀가며 잠시 동안은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여 간 강연에서 진지하게 인종에 대한 문제를 말할 때면 찾아오는 침묵은 그런 인종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포지션, 즉 포즈만을 원했던 위선이라는 걸 알게 된다. 실망스럽지만 겪어보지 않는 문제에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열성적으로 외칠 만큼 트인 사람이란 얼마나 될 것인가.
흑인 대통령의 당선에 대한 열망, 설렘, 기대 등에 대한 언급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벅찬 일이었을지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인 독자인 내 입장에서는 그저 조용히 차분히 읽어나갈 뿐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서평에 잘 알지도 못한 정치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는 친일파인데다, 한국에 도움을 주는 일이라곤 전혀 없이, 암울한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허울만 좋은, 이미지 메이킹이 잘 된 인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데 여기서도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미국계 아프리카인, 아프리카계 비미국인 등 또다시 나눠 각자의 입장에서 은연중에 행해지는 차별에 대해 뭔지 모를 회의감이 들었다. ASA(아프리카인 학생 협회)과 BSU(흑인 학생회). 미국에서 태어난 사촌 디케는 어느 모임에 들 수 있는 것일까 자문하는 이페멜루를 보며 태어난 배경에서도 계급이 나눠지는 것에 대한 씁쓸함 때문이었다. 한국을 예로 들자면 서울공화국이 아닐까? 지방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해 터전을 잡고 사는 사람은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보다 더 살기 힘들 테니 말이다. 형이상학적인 집값에 서울에서 태어난 것도 스펙이라는 말에 너무 공감이 간다.
다시 돌아와서 이들은 결국 다시 만날 수밖에 없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딱 맞는 반쪽이기에 재회가 반가웠지만, 오빈제는 이미 번듯하게 이룬 가정이 있었다. 물론 자신이 휘청거릴 시기, 갑작스럽게 얻게 된 부가 부담스럽고 낯설게 느껴져 이를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아 줄 사람이 그때 만나게 된 코시였을지라도. 그들에겐 사랑스러운 딸 부치가 있었다.
서로가 애틋하고 강렬히 원하는 관계성이라도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은 관계이므로 끝은 언제나 엇갈리고 깨지게 될 것이라는 예감과 다르게 서로를 위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이페멜루의 타국에서의 생활로 참담하고 혼란스럽고 외롭고 고통스럽기만 했던 시절에 대한 내용이 전반적으로 펼쳐진 1권보다 어느 정도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고 스스로에 잘 알게 된 때의 두 사람의 생활을 다룬 2권이 더 술술 잘 읽혔던 것 같다. 과한 이입은 이렇게 괴로운 것이다.
인용된 블로그 「인종 단상 혹은 미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비미국인 흑인의 별난 생각」 글은 실제로 작가가 운영했던 블로그 글로 읽어보면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차별에 대한 말과 행동들의 예시가 나와 있다. 그 부분만 읽어봐도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생활 가까이 느끼는 인종차별에 대한 일화만 보더라도 말이다.
이 작품을 통해 ‘차별’ 이란 한 번쯤은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종, 성별 상관없이 모두가 사람으로 태어나 삶을 영위하는데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가 있는 건 당연하지만, 신분이라는 형태만 사라졌을 뿐 계급사회의 성격은 여전하다. 그게 아니라면 갑과 을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 재산의 급에 따라 생활수준은 왜 차이가 나는 것인가. 단순화하여 생각해보면 그러하다.
하지만 적어도 ‘현대사회’ 라고 칭하는 요즘엔 ‘미래’ 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라면 모두에게 똑같은 권리가 주어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유연한 태도와 사고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함부로 대하고 차별할 권리란 없는 것이다. 이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차별을 잘못 악용하여 선동질하는 무리에 휩쓸리며 부유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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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자기가 더 이상 원하지 않는 것을 그리워하는 게 가능할까? 블레인은 그녀가 줄 수 없는 것을 필요로 했고, 그녀는 그가 줄 수 없는 것을 필요로 했으며 일어날 수도 있었던 미래의 상실을 슬퍼했다. 19쪽
그는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한 번도 확신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의 자기 인생을 정말로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좋아해야 마땅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지를. 43쪽
오빈제는 나중에 알게 된다. 거물들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할 뿐이라는 것을. 47쪽
약간 부유한 자들은 부유한 자들 앞에서, 부유한 자들은 굉장히 부유한 자들 앞에서 노골적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돈을 갖는다는 것은 돈에 사로잡히는 것과 같다고 생각됐다. 49쪽
그 밖에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곤 바싹 마른 취업난의 황무지로 굴러 들어가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희망에 굶주려 있었고, 자동차들은 땀 흘리며 기나긴 주유소 줄에 며칠씩 서 있어야 했고, 연금 수급자들은 연금을 지급하라는 늘어진 현수막을 들고 있었고, 대학 교수들은 파업 재개를 알리기 위해 모여들었다. 82-83쪽
그녀는 이미 신붓감 심사를 위한 의례를 따르고 있었다. 세상이 아니라 그에게 순종을 약속하는 미소를 머금고, 그의 손에서 포크가 떨어졌을 때 몸을 던져 받아 냈으며, 그에게 맥주를 더 따라 주었다. 197쪽
왜냐하면 이제 그들에게 고국은 이곳도 저곳도 아닌 흐릿한 추상적 공간이 되었고 적어도 인터넷상에서는 자신이 하찮은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9쪽
그들은 서로에게‘곧’이란 말을 자주 했는데‘곧’은 그들의 계획에 뭔가 현실적인 무게를 실어 주었다. 201쪽
세상은 거즈에 싸여 있었다. 그녀는 사물의 형태를 볼 수 있었지만 또렷이는, 절대 또렷이는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오빈제에게 자신이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하지만 모르는 것들, 자신의 영역으로 흡수했어야 했지만 하지 못한 세세한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222쪽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움에서 비롯된 조롱, 공허한 장소가 다시 충만해지는 것을 보고 싶은 비통한 열망에서 비롯된 조롱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이페멜루는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서는 자신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236쪽
이페멜루는 훗날 알게 될 것이다. 킴벌리의 눈에 빈민들은 죄가 없다는 것을. 가난은 빛나는 것이었다. 가난이 빈민들을 성스럽게 만들어 줬기 때문에 그녀는 그들을 사악하거나 더럽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성인은 외국인 빈민들이었다. 254쪽
이페멜루는 그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들의 자선심에는 그녀가 동조할 수도 없고, 가지고 있지도 않은 사치스러움이 있었다.‘자선’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흥청망청 자선을 베푸는 행동은 아마 자신에게 어제가 있었고,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을 거라는 확신에서 나온 듯 했다. 286쪽
그녀는 고마운 가운데서도 약간 분했다. 커트가 전화 몇 통으로 세상을 재배치하고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뭔가를 쓱 밀어 넣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3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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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외국 생활로 인해 신뢰할 수 없고 심지어는 험악한 사람으로 변한 친구나 친척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질기디질긴 희망과 자신만은 예외라고 믿고 싶은 절박함이 대관절 무엇이기에 이런 일이 다른 사람에게만, 자신처럼 의리 있는 친구를 갖지 못한 사람에게만 일어났다고 믿게 만든 것일까? 43쪽
사람들이 무엇을 먹는지, 무엇에 사로잡히는지, 무엇에 수치심을 느끼는지 무엇에 끌리는지를 알고 싶었지만 소설 몇 편을 읽고 나서 실망했다. 중요한 것, 심각한 것, 급박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대부분이 아이러니한 무의미함으로 용해되어 사라졌다. 57쪽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는 무서운 깨달음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견고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지만 손대는 것마다 전부 무(無)로 변한다는 깨달음이었다. 105쪽
그녀는 생각했다. 여기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고, 단단한 돌에서 잘 익은 토마토가 튀어나올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그녀는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와 같은 어지러운 감각을 느꼈다. 그녀는 새롭게 태어난 자신 속으로, 낯설면서도 낯익은 존재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257쪽
(이 리뷰는 출판사 민음사의 '아디치에 소설읽기'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