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지 않는 것들 - 최영미 시집 이미 1
최영미 지음 / 이미출판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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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지 않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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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만에 출간된 최영미 시인의 시집이 왠지 무겁게 느껴졌다. 거기엔 참다 못해 터뜨린 고백에 되돌아온 소송과 고소장을 받아들게 된 시인의 생활 속에 파고든 싸움의 흔적에 지쳤던, 시를 놓쳤던 순간들이 기록되어 있었고, 치매를 앓고 있는 병든 어머니의 간병의 시간들이 새겨져 있었으며, 뜨겁고 차가웠던 연애, 사랑의 말들이 속삭이고 있었다. 내가 애정하는 모든 시집이 그러했지만 일상속 언어가 특히 다수 자리하고 있으니, 더 마음에 파동을 일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최영미 시인이 「괴물」 이라는 시를 발표하며, 문단내 암암리에 감춰졌던 추악한 얼굴을 세상에 드러내보이게 했을 때, 미처 잘 알지 못하였다. 부끄럽지만 한 번에 그를 잘 떠올리지 못했다. 그러고는 이 시인은 누구였던가 되짚어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떠올리게 되며, 순간의 감탄사가 나왔던 것 같다. 이만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그 이름의 무게를 심상치 않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모두의 존경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원로작가는 매년 거론되는 그 대단한 상에 대한 수상여부로 호명되는 사람이었으므로.


용기내어 고백함에 깊이 경이의 박수를 보내고 싶었고, 문단내 실태에 대해 내심 실망도 하였지만. 글쎄, 존경하는 시인이자 한창 문학을 공부할 때 나의 교수님으로부터 문단에서 '여류 시인'으로 불리며, 어떠한 처우를 받아왔는지 한 번쯤 언급해주신 덕분에 인지는 하고 있었다. 그래도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실로 여성의 목소리로 말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마음 한구석엔 지금쯤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하고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모성으로 대체되었던 여성의 자리가 주체적인 자아를 가지고 외칠 수 있게 된 게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자신감으로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하였고, 확실히 그 내공은 가히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수식어가 따르지 않아도, 행간의 폭이 좁은 듯 보여도 깊게 느껴지고, 에둘러 가지 않아도 탄성과 생기가 있다. 근데 왜 이렇게 아프게만 느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시인의 말처럼, 삶은 늘 그렇듯 '계산이 맞은 적은 단 한 번도 없고(「밥을 지으며」), '당신이 날 버리기 전에/내가 먼저 시들지 않'으려고 하지만(「꽃들이 먼저 알아」), 사는게 피곤해서인지 생각하면 할수록 시가 자꾸만 도망간다(「시작메모 中」).


때론 '지겨운 이 땅을 떠나지 못했고(「오래된」), 헤매다 길가에 고꾸라지게/제발 그냥 내버려'(「내버려둬」)주길 바랬으나, 세상은 오지랖 넓게도 관여하곤 했다. 이에 '엉망진창인 세상을 정리할 순 없지만/쉼표와 마침표의 질서를 사랑하고'(「수건을 접으며」) 용기내어 내었던 얕은 목소리가 점차 한데 모여 큰 목소리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

여성의 이름으로 우리의 역사를 써야겠다


어머니가 아니라, 아내가 아니라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그래야, 이 삐뚤어진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


머뭇거리던 목소리들이 밖으로 나와

하나의 목소리는 다른 목소리로 이어지고

행성이 되어 벽을 무너뜨린다



두려움을 넘어

내가 우리가 되는 기적


보석처럼 빛나지는 않지만

너희들은 서로의 가슴이 별이 되리라




48-50쪽, 「여성의 이름으로」중에서




시인은 또 소송에 치여, 아픈 어머니를 간병하며 다른 것 하나 제대로 못하는 생활 속에서도 '내가 아는 똥은 더럽지 않다'(「간병일기」)며, 어머니의 배변활동에 잠시 기뻐할 수 있는게 젊었을 적에는 모르던 기쁨이라고도 말한다.


도망가버린 시를 잡지 못하여 아쉬웠지만, 그의 시집에는 그의 언어로만 가득하다. 바위로 깨뜨린 계란, 세상속에서도 숱하게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굳건히 두 발을 내딛고 서있는 모습이 위태롭지만 다시 일어서 굳건히 외치리란 믿음이 생긴다. 얽히고설킨 관계에 있어 주저함을 보인 것에 어찌할 수 없었지만 씁쓸한 현실을 실감한다. 시집을 내고 싶어 출판사에 연락해보았지만 조심스러운 태도만 남겨졌다. 결국 스스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시집을 발간할 수밖에 없던 현실이 시인 앞에 놓여진 것이다. 이에 시인의 피 대신 사업자의 피로 채우는 것에 씁쓸함을 느낀다. 하지만 고생스러움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씩씩하고, 힘차게 나아가는 태도가 더욱 좋았다. 


모든 걸 놓아버릴 수도 있고, 놓고 싶을 때도 있었을텐데, 끝까지 양손 모두 간절히 붙잡고 여기까지 와 이 시집을 펴내준 것에 대해. 


그리하여 이 시집에 실린 여러 시들에 동요하였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아무래도 그 당시 많은 이들의 만류에 미처 싣지 못했던 시인의 등단소감이다. 거침없고 솔직하며 활력 넘치지만 씁쓸한 뒷맛을 기록한. 이 굵직한, 울림있는 소감이 그 어떤 수려한 문장과 다짐보다 더 잘 와닿았다. 


또한, '인생은 낙원이야/삶은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하는 낙원'(「낙원」)이라 이를지니,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 살아갈 날들 속에 또 어떤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게 될 지 알 수는 없지만, 사랑은 계속 해야 하는 것이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고생을 더 해야겠다던 시인의 다짐이 무색하지 않게, 그만의 힘이 가득한 시를 앞으로도 만나보게 될 것이다.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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