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라색 히비스커스』











**




인간은 모순적인 동물이라고들 한다. 바깥 사회에서, 혹은 주변의 이웃들에게는 물론 어디서든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자 사회 발전에 헌신하며 베풀 줄 아는, 독재 치하의 환경에서도 올곧은 신념으로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고 있다면 당연히 그의 가족들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아갈지 부러워하며 경외할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훌륭한 사람이 가정 안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한 무자비한 독재자와 같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나이지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의 화자는 열여섯 살 소녀 캄빌리이다.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상당한 재력을 가진 인물이며, 진보 성향의 언론사 《스탠더드》를 통해 민중의 목소리를 전하는 메신저이자, 자신이 가진 줄 나눌 줄 아는 사람이자,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독실한 신앙심으로 종교계에서도 믿음으로 헌신하는 인물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 소녀가 누리는 여유롭고 안락한 환경에 감사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캄빌리 역시 아버지의 신념과 믿음 그대로 물려받은 형태로 강요받은 규칙들에 대해 감히 저항하거나 거부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오히려 그의 신뢰와 마음을 얻고자 노력한다. 


아버지의 강압적인 가톨릭 교리와 행동양식에는 독재와 폭력으로 가득한데도 말이다. 이를테면 뜨거운 차 한 잔을 가족 모두 돌아가며 한 입씩 마시기를 하는 것에서도 매번 혀가 데여도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여긴다. 벨트 버클을 풀어 채찍처럼 휘두르고, 뜨거운 물을 발등에 붓고, 손가락을 뒤틀어버리며, 두꺼운 미사 경본을 집에 던지는 폭력 앞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면 당연한 수순처럼 벨트를 풀고 가차 없이 휘두르면서, 이내 멈추고 방금의 행동을 참회하듯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자식과 아내를 끌어안는 모순된 행동에 합리화가 고작 상대에게 그 잘못을 전가하는 것에 불과한대도 이 소녀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은 지속되었다. 



죄악이 아님에도 죄악이라 불리는 것들에는 의지가 깃든 것들이었다.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도, 캄빌리가 살아가는 세계 속은 좁고 단단했으며, 어떠한 틈도 존재할 수 없었다. 은수카에 있는 이페오마 고모의 집에서 사촌들과 함께 생활하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세계 속에서 처음으로 자산의 의지로 '저항'을 하게 된 오빠 자자의 행동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단단하게 둘러싸여져 있던 그들만의 세계 속 벽에 조금씩 틈이 생기게 된다. 일등이 아니면 모두 실패한 것이고, 규칙에 어긋난 행동은 죄악에 가까우니 벌을 받아야 했으며, 이는 임신한 아내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연약한 어머니는 그런 사람으로부터 자신과 자식을 지키기에 어려움이 있었고, 어느새 길들여져 있었다. 폭력으로 지배됐던 사람들에겐 이를 벗어날 용기와 생각조차 가지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심지어 자신을 사랑하기에 행한 것이라고 믿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폭력은 그 어떤 이유에서건 용인될 수 없는 것이고, 행해져선 안 되는 것이다. 



자신의 꿈도 목표도 오직 아버지께 순종하며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던 캄빌리는 웃는 법을 모르는 소녀이다. 정해진 일과표에 따르지 않으면 벌이 있기에 친구들과 같이 하교할 수 없었고, 기사 케빈이 데리러 오는 시간에 정확히 맞춰 나가기 위해 매번 뜀박질을 해야만 했다. 아버지의 사업체인 음료 공장의 신메뉴가 나올 때면 맛을 전혀 알 수 없어도 맛있는 척 연기를 해야 했으며, 어떤 상황이든 신의 가호를 청하는 말을 해야만 했다. 이를 먼저 말하지 못한 것을, 그리하여 아버지께 위안과 애정을 표현하지 못한 데에 아쉬움을 느낄 정도로. 



아버지가 전통을 중요시하시는 자신의 아버지(파파은누쿠)를 이교도로 칭하며 인정하지 않고 마치 병균을 대하듯 행동하는 것을 그대로 행했던 캄빌리는 공부 이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조금도 없었지만, 이페오마 고모와 그의 자식들인 아마카, 오비오리, 치마와 함께 생활하며 조금씩 배워나가게 된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몰랐던 소녀가 받지 않아도 될 상처에 울며 소리치게 될 줄도, 의견을 말하게 될 줄도 알게 되었으며, 진심을 담아 마음을 전할 줄도 알게 되었다. 파파은누쿠, 할아버지의 믿음 또한 자신의 아버지가 가진 믿음과 다르다 하여 결코 이교도라 괄시하는 것이 옳은 게 아니라는 것도.



심한 매질로 쓰러진 그녀 앞에 울고 있는 어머니를 힘껏 밀어 넘어뜨리고 싶다고 생각한 캄빌리에게서 안타까운 마음만 들었다. 대개 폭력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으며, 자식들의 경우 가해자인 아버지보다 자신을 감싸주고 지켜주지 못한 어머니에게 더 원망을 품는다는 분석을 본 적이 있다. 무자비한 폭력과 남자와 여자로 신분이 나뉜 것처럼, 재력이 있는 남자에게는 아내가 하나일 필요 없다는 낡은 세속에 따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임신을 생각하게 된 사람이라면. 과연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때론 그렇게 내기 어려운 용기가 더 무서운 행동을 실천하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읽는 내내 숨이 턱턱 막히는 답답함에 몇 번이나 책장을 덮어야만 했다. 편안한 생활과 누릴 수 있는 모든 환경이 갖춰졌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던 이 가족들이, 또 그런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캄빌리에게 거부감이 들었다. 한구석엔 공감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부모님께 순종하였고,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공부하였으며, 자신의 선택과 생각이 존재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 대해 떠올리게 되어 불편함이 일었다. 여기에 더한 폭력이라니. 하혈하는 어머니를 본 후로, 눈에 보이는 모든 글자가 붉은 피로 보였던 캄빌리, 그렇게 차곡차곡 쌓였을 상처를 감히 가늠할 수도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 존재하여 그에게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었고, 이내 변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음에 담았던 사람에 대해 이뤄질 수 없음을 알았고, 절망했지만 심신에 자리 잡은 상처에 새살이 돋을 때쯤 캄빌리는 한층 더 성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자주 웃게 되었고, 목소리를 낼 줄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비극적인 결말 앞에서 결코 해피엔딩을 말할 순 없지만, 그 안에서도 변화는 그만큼 값진 것이다. 의지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버지로부터 아마디 신부로 옮겨간 것뿐이라도. 


애초에 자아가 형성되었어야 할 어린 시절에 자신을 보호받지 못하고 억압된 환경에서만 자라났기에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주체성을 찾기 위해 더 수많은 노력을 하려고 해도 몸에 박힌 습관처럼 잘 깨부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돌아보면 너무나도 놀랍다. 수적으로는 절대 밀리지 않을 터인데. 한 사람이 가진 권력과 힘이 그렇게 크게 작용될 수 있는지.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힘 있는 인물이 권력을 잡았다. 남자와 여자 굳이 나누라고 하면 신체적인 부분에서는 당연히 좀 더 우위에 서게 되는 남자가 가졌을 힘과 권력을. 오늘날 젠더에 대한 질문과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간다. 


아디치에의 강연을 통해 보았듯 그 역시 과거에는 공격할 거리로 페미니스트라며 지칭되었지만 그 말의 함의를 살펴보면 결코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종종 말해왔던 '불편'에 대해 누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당연히 걱정하며 염려하며 살아가야 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떨쳐낼 수 있도록, 그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싶다고 외치고 말하는 것뿐이다. 아디치에의 페미니스트 선언이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그 부분이다.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 자신을 위해 립글로스를 바르고 하이힐을 신는,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단, 자신이 입고 싶어 예쁜 옷을 찾고 꾸민다는 선언에 대해. 어디에 더 비중 둘 것 없이, 똑같은 위치에서 동등한 기회를 가졌다면 더 많은 걸 이루고 행동하였을 많은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외치는 것이다. 



어느 단편적인 이야기 하나로 가지게 되는 편견이 가지는 무게. 그리고 이를 반복적으로 접하고 강조하게 되면 그건 사실이 아니어도 진실이 되어버린다는 것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됐다. 자신이 가졌던 생각과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반성하고 깨달은 사실을 되새겼던 아디치에의 태도가 대단했다. 재치 있는 유머와 또렷한 목소리로 전하는 그 이야기를 더 많은 이들이 듣고 알아갔으면, 그리고 한 번쯤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



모든 것이 은수카에서 시작됐다. 이페오마 고모의 은수카 집 베란다 앞에 있는 작은 정원이 침묵을 밀어 내기 시작하면서. 지금 내게 오빠의 반항은 이페오마 고모의 실험적인 보라색 히비스커스처럼 느껴졌다. 희귀하고 향기로우며 자유라는 함의를 품은. 쿠데타 이후에 정부 광장에서 녹색 잎을 흔들던 군중이 외친 것과는 다른 조율의 자유.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 27쪽 



쿠데타는 쿠데타를 낳아. 아버지가 유혈이 낭자했던 1960년대 쿠데타 얘기를 하며 말했다. 37쪽



우리에게 필요한 건 혁신된 민주주의지. 혁신된 민주주의. 이 말은, 그 말을 하는 아버지의 말투 때문에 중요하게 들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원래 아버지가 하는 말은 대부분 중요하게 들렸다. 38쪽 




두 눈이 텅 빈 것이, 마치 자기 인생의 파편이 든 더럽고 찢어진 캔버스 가방을 질질 끌며 시내 길가의 쓰레기덤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미친 사람들의 눈 같았다. 49쪽



아버지는 오빠나 내가 성 다대오를 향한 열세 번째 간구에서 졸기 시작한다고 느낄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할 생각조차 하지 않아다. 어머니가 무엇 때문에 용서받아야 하는지를. 51쪽



하지만 나는 2등을 했다. 실패로 더럽혀졌다. 54쪽



"누니에 음, 때로는 결혼이 끝나면서 인생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어요." 99쪽



고모는 너무나 쉽게, 너무나 자주 웃었다. 그 가족 전부가 그랬다. 막내 치마까지도. 111쪽



그때 나는 이페오마 고모도 사촌들에게 똑같이 해 왔음을 깨달았다. 엄마가 자식에게 어떤 식으로 말하고,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통해 그 애들이 뛰어넘어야 할 목표를 점점 더 높였다. 아이들이 반드시 막대를 넘으리라 믿으면서 항상 그랬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오빠와 내 경우는 달랐다. 우리는 스스로 막대를 넘을 수 있다고 믿어서 넘은 게 아니라 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넘었다. 274쪽



**



카메라 렌즈 앞에서 빛나는 아디치에의 존재감에 대하여-

https://blog.naver.com/minumworld/221600869527




(이 리뷰는 출판사 민음사의 '아디치에 소설읽기'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