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스
워푸 지음, 유카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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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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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두드리기>

문단 내 꽤나 이름을 떨치는 작가인‘그’는 신작발표를 앞두고 있다. 이번에 발표할 신작은 사회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문학적인 깊이는 물론 추리소설의 묘미까지 느껴지는 작품을 발표하려는 중이고, 인쇄만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그에게‘아귀’라는 이름의 독자가 작가의 새로 발표할 작품에 여러 오류가 있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온다.




<당신 없이는 미소 지을 수 없어요>

20년 전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문제의 작품은 세 남녀 사이의 치정관계와 연관된 살인사건으로 흥미롭게 연재가 되던 도중,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작가가 사망한데 이르러 완전한 결말에 다다르지 못하고 종결되고 말았다. 연재했던 잡지사는 점차 발전하여 다시금 이 작품의 재연재를 예고하며 유고 원고를 찾았다는 광고를 내건다. 진실은 대필 작가로 활동하는‘그녀’가 편집자를 통해 독자‘아귀’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나머지 부분의 원고를 완성하는데 있다. 그리하여 도대체‘아귀’의 정체는 무엇일까?




<영웅들>

경찰 정년퇴직을 한 아버지가 수술 후 병상에 입원하고 계시는데 방문한 동료 샹 아저씨 덕에 과거 수사한 여러 사건에 대해 듣게 되고, 글 쓰는 일을 꿈꿨던‘그’는 이를 소설로 옮겨 적어보기로 한다. 블로그에「영웅들」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기 시작하고 좋은 반응도 얻는 와중에‘아귀’라는 독자로부터 범인 묘사에 대한 지적을 받게 된다.



영웅도 보통 사람이고,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다. 하지만 잘못을 직시하고 바로잡으려고 최선을 다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마땅히 영웅이 잘못을 인정하기 시작한 지점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164쪽



<우리와 그들>

은행에서 일하는 그녀는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는 남자친구와의 순조로운 연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좋아하는 SF소설을 읽고 시놉시스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연재 플랫폼에 직접 연재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에 도전해보기에 이른다. 서툴지만 열심히 하는 그녀를 위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추리소설에 대한 힌트와 아이디어를 주고 그녀 역시 열심히 연재하는 끝에 독자도 서서히 늘어가 이제 유료 연재만을 남겨 두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적인 작가 포스를 풍기는 독자 네티즌‘아귀’로부터 미스터리를 풀어나가기 앞서 당연히 전제되어야 할 것들에 대해 지적하는 메일을 받게 된다. 작가에게 영향을 주고 싶지 않다던 이 독자는 반드시 그 영향을 미치고 만다.



“사실 좋은 소설은 인간 내면의 깊은 심리를 파헤치고, 더 나아가서는 사회의 정치적인 현실을 반영하기도 해.” 221쪽



<커다란 노란 택시>

추리소설 「커다란 노란 택시」로 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게 된‘그’는 그로 인해 문단에 등단할 수 있는 영광을 동시에 누리고 되었고, 수상작을 포함한 심사평이 실린 합본집이 출간될 예정을 앞두고‘아귀’라는 인물로부터 메일을 받게 된 그는 기능적으로 설치된 플롯에 허점이 많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미 인쇄과정에 들어간 책을 수정할 수도, 심사위원들에게 이런 사정을 논의해볼 수도 없어 막막했던 그는 새롭게 구상한 플롯과 인물묘사로 이야기를 이어가 후속 작업을 이어갈 계획을 밝힌다. 아직 인쇄가 채 마치지 못한 수상작을 과연, 누가 어떻게 읽고 지적할 수 있었을까?


전제, 주제, 인물, 플롯 그리고 설정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입니다. 266쪽



<점점 더 하얗게 창백해졌네>

연애소설 작가인‘그녀’는 오랫동안 안정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으나, 점차 출판사의 형식에 맞춘 작품이 아닌 자유롭게 다른 형식의 작품을 써보고 싶은 열망에 미스터리와 연애를 접목한 작품을 신작으로 발표하게 된다. 연애소설 이외에 가장 좋아하는 장르 역시 미스터리와 스릴러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만족스러운 반응에 독자 반응을 살피던 도중‘아귀’라는 네티즌의 댓글에 자신의 생각과 같이 속편은 나오지 않을 거란 말에 호기심에 질문을 이어가게 된다.



아귀는 많은 연애소설에서 인물이 충분히 입체적으로 설정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지적했다. 설령 작가가 감정이 풍부하고 다양한 층위가 있는 역할을 그려낼 역량이 있다 해도, 연애소설의 경우는 주요 줄기가 애정 관계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인물이 다른 사건에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기에 인물의 다른 성격적 면모를 표현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296쪽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든 아니면 대반전이 일어나는 결말이든, 둘 다 추리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형식으로, 모두 플롯 안에서 등장한다. 그래서 많은 추리소설 작가가 일단 플롯들을 먼저 생각하고 나서 인물을 욱여넣는다. 문제는 독자가 이야기를 읽을 때 보게 되는 플롯이 실은‘인물이 일으킨 일’이라는 것이다. 301쪽




<얼룩진 사랑>

출판사의 대대적인 판매량과 직원들의 월급을 책임지는 대표작가의 연작시리즈의 원고는 잡지 연재로도 이어지게 된다. 열정 넘치는 신입 편집자와 드디어 밝혀진‘아귀’의 정체는 뜻밖으로 보이지만, 아! 하고 감탄하게 만든다.‘아귀’는 편집자와 작가가 토론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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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굉장히 재밌는 작품을 만나 모처럼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 일곱 개의 작품, 일곱 편의 추리소설이 소설 내에 액자소설과 같은 형식으로 부분부분 전개되고, 어느날 작가 앞에 나타난 유령 독자 '아귀'는 잘 풀리지 않는 이야기, 플롯이 가지는 허점에 대한 힌트를 던지면서 왜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지를 말한다. 작가들은 모두 3인칭으로 표현되고 말하며, 처음엔 경계를 느끼던 태도 역시 '아귀'의 논리와 타당한 근거에 따른 의견에 수긍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를 묻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마치 소설 속의 소설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메일이나 댓글로. 작가와 의견을 주고 받고 토론을 하는 아귀의 정체는 맨 마지막 챕터에서 밝혀지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또 다른 재미요소가 되었던 것 같다. 이런 직업군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국내는 어떠할 지 모르겠지만 해외같은 경우와는 작가와 같이 작품을 만들어나가기 때문의 그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였다. 


각기 다른 플롯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도 읽을 거리가 참으로 풍부하다. 또한 군데군데 대화의 형식은 매우 직설적이다. 이걸 호방하다고 표현하다고 해야 할지, 유쾌하다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만의 특성이 느껴져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아주 간간히 유머도 섞여있다. 생각치도 못한 포인트에서 터지기 때문이다. 독자의 특징들 역시 흥미로웠다. 

이 작품 속 독자들은 늘 자신들이 읽는 작품을 두고 토론을 하는 게 일상처럼 표현되었기 때문에 더 흥미로웠다. 물론 국내에도 독자 개개인의 서평활동을 제외하고도 북클럽이라든지 독서토론 모임이라든지 많이 있지만, 그보다는 뭔가 더 일상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힌트로 등장하는 여러 작품들과 곡 제목을 통해 차용된 챕터별 제목 구성도 좋았던 것 같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건 소설 쓸 때 가져야 할 미덕에 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풀어가는 재미가 있는 추리소설,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특히. 아귀의 표현대로 소설에서 플롯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결국 인물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너무 많은 사건들과 플롯, 그리고 탐정이라는 캐릭터적 특성을 활용한 많은 작품들을 보며 추리문학을 열렬히 사랑하는 독자에게 의문점이 드는 구석이 분명히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는 또한 글을 쓰고, 작품을 창작해내는데서 가져야 할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자료조사의 중요성과 작품 속 인물이 어떻게 생활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한 고찰도 필요할테도 관계성과 심리묘사 또한 무척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창작이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며 밀도 높은 완성도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이에 대한 책임감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게 되었다. 실제로 열혈독자들은 맑은 눈과 깊이 있는 독서력으로 발달된 날카로움을 가졌을테니 더욱더 그러하다. 


작가는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사건을 증오한다고 밝혔다. 이 소설집 전반적인 플롯 모두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아귀'라는 역할을 내세워 자신 나름대로 진실을 밝혀보고자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런 과정에는 픽션의 속성도 가미되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억울한 심정을 풀어내고 있을테고, 누군가는 괜히 지나간 사건들을 들쑤신다 여겨 마땅치 않아 할 것이다. 어느 것이든 진실에 관한 것이라면 소설이라는 매체를 통해 대중의 이목을 끌었으니 좋은 영향력이 될 수도 있겠다. 너무 과신하지만 않는다면.


재미와 완성도를 두루 갖춘, 가독성 좋은 이야기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작품 속에서 한결같이 느낄 수 있었던 작가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을 내보인 탓에 다소 직설적으로 느껴지지만, 덕분에 신뢰가 간다. 이는 소설 쓰기에 관심갖는 사람이나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작가 워푸의 다른 작품들도 기대가 된다.





(이 리뷰는 현대문학 출판사의 '문학독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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