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테 안경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조 바사니 지음, 김희정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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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테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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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소개】


‘기억의 작가’ ‘페라라의 작가’로 불리는 20세기 이탈리아 문학의 숨은 거장 조르조 바사니(Giorgio Bassani, 1916~2000)의 1958년작. 단편집 『성벽 안에서―페라라의 다섯 이야기』, 장편소설 『핀치콘티니가의 정원』과 함께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바사니의 경장편 소설이다. 


『금테 안경』을 두고 이탈리아 작가 엘사 모란테는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설의 하나”라 했고,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이고, 아마도 바사니의 최고작일 것”이라 극찬했으며, 안드레아 카밀레리는 2000년 바사니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페라라의 위대한 작가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꼽았다. 또한 이탈로 칼비노는 이 작품을 읽은 직후 프랑스 세유Seuil 출판사의 프랑수아 발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사니를 “요사이 등장한 이탈리아 작가 가운데 가장 수준 높은 작가 중 하나”로 평가하기도 했다.  (출처: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작품 속 주인공은 페라라의 성공한 의사 아토스 파디가티다. 온화한 성품의 지식과 교양을 겸비한 의사이자, 풍족하고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 중년의 신사이다. 페라라 시민들의 관심과 존경을 받으며 잘 살아가던 이 신사에게 사람들은 문득 의문을 가지게 되는데, 이렇게 훌륭한 성품의 인물이 왜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생활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말은 많이 모일수록 점차 사실화가 되는 바 소문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예로, 파디가티의 성향이 동성애자라며 수군거리게 되었고, 어느새 납득하게 되었으며, 곧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시대적으로 구속받는 상황이었기에 사람들의 관심도 점차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물론 당사자는 그 어느 하나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반드시 이 선량한 신사에게 모욕을 주고 농락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매력적이지만 오만한 젊은 청년은 고통과 상처만 주는 존재이다. 자신이 대단한 인물인양 착각하는 이기적인 인물에 매혹되는 어리석은 존재가 또 인간이기도 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연인이라고 지칭될 수 없는 관계 속에 얽매이고 한줄기 희망도 품었다가 친숙한 사람들 앞에서조차 욕보이게 되고, 종국엔 비참하게 버림받는 인물, 파디가티는 초반에 묘사된 모습과 달리 줄곧 당황하고 상처받고 휩쓸려 끝끝내 비극적인 선택을 남기게 된다.



이런 파디가티에 대해 말하고 있는 화자인 ‘나’는 이 중년 신사에게 연민을 가지게 되고 곧 친구가 된다. 관찰자이자 방관자의 입장을 고수하던 ‘나’ 역시 페라라에 사는 시민이자, 볼로냐 대학을 다니던 학생이었고, 또 유대인이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살았지만 과거의 아픈 역사가 있기에 언제고 불안함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던 나는 반유대주의적 인종법 시행을 앞둔 1930년대 어두운 시대 속에서 불안과 두려움 속에 절망에 잠긴다. 무솔리니 파시즘 체제가 들어선 1920년대 이후, 체제의 위기의식 없이 안일한 동조를 하며 살아가던 유대인 공동체는 갑작스러운 인종법 시행 발표 관련하여 배신과 당혹에 휩싸인다. 반유대주의라는 반복되는 역사의 불안함에 어두운 밤거리를 헤매는 나와 그리고 홀로 남게 된 쓸쓸한 중년 신사 파디가티,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떠돌이 개 한 마리.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 공간은  페라라와 볼로냐, 리초네, 다시 페라라로 이동하는데 서사를 전개하는데 각각의 전환점이 되어준다. 특히 해변 휴양지 리초네에서는 쌓여있던 갈등과 긴장감이 표출되어진다. 


공동체에서 소외된 이들이 느끼는 고독감과 외로움은 이야기의 끝을 향해 갈수록 더 짙어지는데, 과연 그들이 그 안에 속해 있었을 때에도 고독하거나 외롭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작품 속 이 두 인물은 얼핏 평화로워 보이는 세계 속에서 위선과 경멸에 휩싸인 시선과 시대상에 맞물려 폭발하는 시점을 마주하고, 이내 버려지고 외면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 모든 서사는 직접적인 사건들로 존재하지만 표현방식은 직유든 비유든, 에둘러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더 유려하고 비극적인 인상을 남기는 듯 하다. 어두운 밤거리, 고독한 두 인물의 배회랄까, 그리고 그 마지막은 매우 쓰기만 하다. 



머릿수로 결정되는 무리의 가치관의 무서운 점은 바로 이런 지점이다. 자신들이 믿는 게 옳다는 신념으로 확신하는 태도,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외면하는 태도 말이다. ‘그들’과는 엄연히 다르고, 더 우월한 존재라고 착각하는 어리석음. 모든 게 평화롭게 수용하는 세계란 아직은 도래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조심스럽게 천천히, 그렇게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지금도 이렇게 삭막하게 위태로운데 작품 속 시대에는 얼마나 더 숨 막히고 참혹했을지 가히 짐작도 가질 않는다. 


바사니의 작품을 처음 접해보는데, 그렇게나 많은 작가들이 하나같이 좋은 문체라고 칭송하는 데는 이러한 태도가 뒷받침되어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모순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환경적인 요소와 그가 느꼈을 심리적 요소가 부합되어 특유의 문체가 완성되었을 것 같다. 차분하고 담담하면서도 아름답지만 고통스러운.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비극과 모순된 태도에서 아름다운 문체가 발현되니 역시 문학은 행복한 삶을 가진 사람이 하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슬픔과 아픔이 있고, 좌절과 절망이 있기에 이를 위로하고 위안을 주기 위해 글을 쓰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문득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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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등진 그의 모자는 날벌레 무리에 둘러싸인 듯 보였다. 하지만 그는 드높은 가지 위의 거대한 새처럼 걸터앉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날카롭고 단호한 목소리로 한 점 한 점 득점 수를 외치며,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공평한 심판이라는 자신의 임무에 몰두한 채 그 위에 머물렀다. 이유는 분명했다. 그는 하루하루 밀려오는 지독한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달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91쪽 

 


자신을 멸시하는 연인으로 인한 그의 고통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고백하자만 그의 마음을 가늠하는 순간 내가 느낀 것은 연민보다 혐오감이었다.   97쪽


 

매우 가까운 장래에 그들, 이교도**들은 칠팔십 년 전에야 마침내 우리가 벗어났던 참담한 중세 구역의 구불구불한 좁은 길에다 또다시 우리를 떼거리로 몰아넣으려 할 것이다. 우리는 겁먹은 많은 짐승들처럼 철책 뒤에 차곡차곡 쌓일 것이고, 거기서 절대 탈출할 수 없을 것이다.     111-112쪽


**Goi, 유대인 입장에서 비유대인, 이교도를 가리킬 때 쓰는 말. 히브리어로 ‘백성’이라는 뜻으로, 보통은 Goy로 쓴다.


 

(…) “이처럼 자신의 본성을 받아들여야겠지.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럴 수 있지? 너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을까? 인간에게도 다분히 동물성이 존재하는데, 과연 인간이 복종할 수 있을까? 동물이라는 것을, 단지 한 마리의 동물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123쪽


 

지난 두 달 동안 내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고독감이 바로 그 순간 한층 더 심해졌다. 총체적이며 결정적이었다. 나는 나의 유배지에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142쪽




** 덧붙이며

매우 늦은 후기이지만 고마운 이웃 연꽃폴라리스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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