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국의 딸들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딱 10년전 우리집 서재 한귀퉁이에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채 누렇게 빛바랜 나남출판사의 <김약국의 딸들>을 읽었다.
책을 다 읽고나서의 느낌은 뭐랄까?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지독한 운명을 껴안고 사는 여자들이 있을까?'라는 생각이들만큼 내가 살아온 인생의 경험과 상상력을 몽땅 동원해도 이해가 안되는 답답함이 남았다.
10년후 눈이 부실정도로 뽀얀 표지로 새로 나온 <김약국의 딸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기도했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동안 나의 감상은 또 어떻게 변했을까? 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통영에서 에헴~ 큰소리 꽤나 치는 김약국과 아들자식 하나 없는 한실댁, 과부인 첫째딸 용숙, 결혼직전 파탄의 아픔을 겪은 둘째딸 용빈, 아편쟁이 남편에 육체적 불륜에 탐닉하다 정신이상이 되어버린 셋째딸 용란, 시아버지에 능욕 당하고 침몰하는 배와 인생을 마감한 넷째딸 용옥, 그리고 막내딸 용혜...
사랑의 배신과 실패, 결혼의 과정 그리고 그 아래 자리한 전통의 굴레와 운명이라는 이름의 잔혹함까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김약국의 다섯딸들의 불행은 빠져나올수없는 깊은 수렁처럼 변함없이 여전히 처절했다...
어려서 읽은 책을 시간이 한참 지난후 다시 읽게되는 일이 있다.
다시 읽어보니 구석구석까지 기억하고 있어서 놀랄때도 있고, 내 기억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라 놀랄때도 있다.
<김약국의 딸들>은 분명 후자쪽에 가깝다...
서서히 몰락해가는 김약국 일가나 비극적인 딸들의 운명에 참을수없는 답답함을 느끼기보다는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일상적인 말들이 술술 읽히면서도, 오래 음미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겉으로는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하지만 온몸으로 뼈저리게 삶을 감당해온 사람에게서만 나올수있는 그런 눈물과 감동의 언어들 앞에서 우리는 작아질수밖에 없으니까...
물론 이런 세상이 정말 존재했단 말인가? 여자들이 왜 이렇게 바보같이 사는지? 한탄이 나오는때가 없지는 않지만, 유교적 질서의 굴레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할수 없었던  그녀들에게 많은 빚을지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통영을 떠나는 용빈과 용혜를 보면서 김약국의 딸들의 비극이 파멸로 끝나는게 아니라 봄처럼 끈질긴 생명이 느껴졌다.
<김약국의 딸들> 번외편이 있다면... 남자들을 위한 제도와 관습의 희생양이 아니라, 이제는 그냥 '여자'로 행복한 그녀들을 만나고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이어지는 법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