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데아
이우 지음 / 몽상가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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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피드를 넘기다가, 서울 이데아라는 낱말을 봤다. 문득 이 블로그에 2016년도 즈음 썼던 ‘사막 이데아’라는 글이 떠올랐다. 내가 만들어낸 나만의 낱말들 중 하나였는데. 내가 정의한 의미와 그가 정의한 의미가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평단을 신청했다.

막상 책을 받아서 읽어보니, 중간에 사막에 대한 대목이 나와 놀라기는 했지만 내가 사용하던 의미와는 결이 매우 달랐다. 이우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모로코의 수도인 라바트에 정착하고, 카페 카리온에 자주 가서 그의 데뷔작인 레지스탕스와 본 작품인 서울 이데아를 썼다고 밝혔다.

<서울 이데아>는 스무 살 청년 준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의 어머니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모로코에서 그를 키우고, 파리 그랑제콜에 다니게 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준서는 모로코나 프랑스 파리 어디에서도 마땅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모든 걸 포기하고 한국 대학교에 들어와 자신의 힘으로 살아내 보기로 결심한다. 막연한 서울에 대한 향유, 서울이 마치 그가 상상한 이데아와 닮아있을 거란 생각으로.

막상 그가 한국의 대학교에 들어와 활동을 해봤지만. 그는 모로코나 파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소속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과 연대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모로코에서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과외를 하고도 하지 않는다고 다 들통이 난 거짓말을 반복적으로 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배척되었다. 파리에선 생테스와 테니스를 치기 위해서 파리 도심에서 벌어진 총기 테러 사건에 대한 시위에 참여하지 않고 등을 돌려버린다. 한국으로 와서 소속감을 느끼고자 하면서도. 막상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닐 때도 테니스 동아리를 다닐 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테니스를 잘 하려는 게 목적이라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결국 뜻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 테니스 동아리에서 나와버린다. 그가 대학교 학생회까지 들어가게 만들었던 SIA에 들어가 학생 권익을 위해 운동을 했던 것도 그 집단의 목표보다 그가 좋아하던 주연과 교류하기 위해 들어갔다.

책 자체는 450여 페이지로 꽤 두꺼운 편이었지만, 그에 비해 글양은 비대하지 않았고, 글도 매우 술술 쉽게 읽히는 종류의 글이었다. 글이 긴 것에 반해 큼직한 사건이랄 게 없어서 좀 잔잔하고 그가 생각하는 서울 이데아란 무엇인지, 그가 서울에서 찾고자 하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같이 의미를 찾아 나가려는 목적으로 사건들은 잔잔하고 빠르게 시야에서 흩어졌다.

사건들을 차근히 읽어나가면서도, 준서가 하는 행동이 논리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이기적이거나, 독단적이고, 처세가 부족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의 마음조차 잘 읽어내지 못한다거나, 상대의 입장에 대한 서술도 1차원적인 부분이 많아서 종아리 정도까지 물이 찬 강가에서 송사리 떼를 구경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자신이 진정한 한국인이 되기 위해서, 다문화가정을 꿈꾸는 외국인 은혜를 매정하게 내치거나, 한국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소속감을 얻기 위해 서울 땅을 밟았으면서도 막상 그가 집단 안에서 겉도는 모양새는 대부분 그가 독단적인 모습들은 아마도 작가가 의도한 준서의 모습이었을 테지만, 캐릭터 설정이 그래서인지 더욱 그가 서울에서 이데아를 찾기란 어려움이 컸을 걸로 보였다.

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그가 그렇게 바라던 서울 이데아, 서울에서의 소속감의 결정체가 다름 아닌 연애 감정에 마침표가 있었단 점이다. 335쪽에 이런 서술이 있었다. “그녀가 그곳에 있었다면 어쩌면 자신은 파리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가 모로코나 파리에서 정착하지 못한 이유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곳에서 찾지 못해서란 말인가? 이 긴 서울 이데아의 끝, 그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제대로 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서인 이유가 사랑을 찾지 못해서라는 귀결이 과연 맞는가?

난 오히려, 러시아인의 겉모습이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빅토르가 한국에서 모델 활동을 하는데. 그가 자연스럽게 겉모습 때문에 스태프에 의해 외국인으로 분류되고 영어로 지시를 받을 때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고 서술된 부분이 꽤 훌륭한 관찰이 담겼다고 느꼈다. 빅토르는, 그동안 자신이 이십여 년간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그가 한국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지, 거기에 피로감을 느꼈던 것을 그 순간에 알아차렸다고 말했다.

서울 이데아를 읽으며, 나는 호주에서 이민 2세대로 살아가는 친구 알렉스를 떠올렸다. 그 자신이 호주 사람이란 건 잘 알지만 언젠가 한국어를 한국인처럼 할 수 있는 날이 오거든 한국에 찾아올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그가 호주 사람이지만, 여전히 그가 그들 사이에서도 호주인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피로감을. 나는 준서도 빅토르처럼 느꼈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은혜와 잘 어울리지 못했던 이유도, 그녀가 이성적으로 매력은 있었지만, 그가 한국인이란 정체성을 부여하는데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에 배척했듯이. 그가 보다 한국인이 되기 위해, 한국인으로서 소속감을 느끼기 위한 행동들이 몇 박자씩 엇박이 나는 모습들을 관찰할 때 난 그가 그래도 차근히 서울의 한 대학가에서 소속감을 찾아가고 있다고 느꼈는데. 이 모든 노력들이 여자 하나 때문에 휘청이고, 울분과 화로 이야기가 끝나버린다는 게.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과, 그 자녀의 대학 비리, 광화문 촛불시위 같은 큼지막한 사건을 SIA와 관련된 사건에 녹여서 서술한 점은 흥미롭긴 했지만. 서울 이데아라는 의미가 광화문 촛불시위에 쓰인 서울 이데아의 의미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가 향유하고 싶은 서울 이데아의 실체를 찾는 내용인지도 애매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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