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비행 / 남방 우편기 펭귄클래식 37
생 텍쥐페리 지음, 앙드레 지드 서문, 허희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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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리비에르를 어떻게 봐야할까. 나에게는 악덕관리자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에게는 신념이 있다. 그가 마음을 다잡고 종업원들을 몰아붙이지 않으면 우편기의 운항이 제대로 되지 않을거라는 믿음. 일견 맞는 말이다. 어느 조직에나 악역은 있어야 한다. 구성원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며 단도리를 해야 조직이 흐트러지지 않는 법이니까. 

 

좀 더 확장하면 세상의 어느 일터, 또는 정부같은 정책결정기관에도 악역은 있어야 한다. 규정과 원칙을 완고하게 지키며 이를 따르지 않는 구성원들에 징벌을 내리는. 위반을 하는 누구에게나 애처롭고 구구절절한 사정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일일이 봐주었다가는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도 괴롭지만 조직(세상)이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이 벌을 내려야만 한다. 이것이 리비에르의 철학이다.

분명 그는 신념과 철학을 갖고 있으므로 요새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영혼 없는' '관리자들'과는 다르다. 그는 규칙을 엄격히 지킴으로써 의지를 다지게 되고, 그것이 인간을 도야시킨다고 생각한다. 그저 상부의 지시라거나 규정이 그렇다면서 하급자들을 닥달하는 영혼 없는 관리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인간의 도야를 위해 기꺼이 악역을 맡은 리비에르는 일견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숭고함이 파타고니아선의 비행사와 무선사를 죽게 만들었다. 불가항력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리베에르의 '도야'를 향한 의지가 두 젊은이를 어둡고 사나운 밤 하늘에서 비명횡사하게 만든 것이다. 리비에르는 이런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인류가 도달해야할 어느 지점을 위해 장구한 항해를 하는 동안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가슴 아픈 희생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이 부분은 동의가 되지 않는다. 때로 우리는 목숨을 버려가며 가치있는 것을 지키는 숭고한 희생을 본다. 자기를 희생해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던지 하는. 그런 희생의 숭고함은 자발성에서 나온다. 파타고니아선의 두 젊은이가 끊임없이 도야하는 인류의 모습을 보여주었을지언정 그것이 그들의 바람은 아니었다. 리비에르의 그런 완고한 규정준수가 없었다면 둘은 그런 악천후 속으로 비행기를 몰지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의 생명, 두 개의 세계를 버려가면서까지 인류를 도야시키는 것이 중요했을까. 그의 숭고한 철학은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

 

오늘날처럼 노동자의 안전을 중시하는 환경에서 리비에르 같은 관리자는 발 붙이기 힘들 것이다. 어쩌면 안전규정을 엄격하고 완고하게 지키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리비에르 같은 사람을 상관으로 두고 있는 직장은 생각도 하기가 싫다. 본인은 숭고하고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겠지만 밑에 사람에게는 악덕관리자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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