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이 나올 때 쯤 트랜드가 그러하였는지, 박민규의 소설을 떠 올리게 한다. <마이너 리그>에서는 마이너 리거들의 삶을 통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펜 클럽>에서는 아마츄어들의 삶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파고들 듯 보여주는 면이 비슷해서일까.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난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스스로를 마이너리티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절대로 메이저 - 내가 생각하는 메이저는 티비 드라마에 나오는 중산층 이상의 화목한 가정이다. 보통 가장인 아버지는 중견회사 사장이나 임원 또는 고위공직자이고 어머니는 전업주부. 물론 다 대졸이다. 그리고 자식들은 보통 무슨 실장이나 의사 변호사 같은거, 딸 같은 경우는 악기를 하기도 한다. 뭐 이정도는 프로토 타입이고, 대충 중산층의 화목한 가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다. 유치원도 가기 전부터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은데 그 당시는 우리 집이 집도 있고 좁지만 땅때기도 좀 있었고 했었는데. 타고난 마이너 성격인지 아니면 티비에서 나오는 메이저들의 가식성을 어렸을 때부터 어렴풋이 낌새를 챈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마이너 정서는 이후 집안 경제가 어려워지고 이런저런 불화를 겪으며 곧 확실하게 굳어져 갇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으며 정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난 죽을 때 까지 마이너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져 가고 있다. 

근데,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나와 같은 마이너의 삶이 메이저의 삶보다 수적으로 더 많은 것 같다. 책에 나오는 만수산 4인방 처럼 어떻게든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티비 드라마 속의 중산층 가정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내 주위의 현실 아닌가. 근데 어쩌다가 우리가 마이너고 그들이 메이저가 되어 버린거지? 

메이저는 하나의 허상이다. 마이너들이 추구해야 할 하나의 허상. 지배 계급들은 마이너들이 메이저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서로 경쟁하기를 원하겠지. 열심히 노력하면 또는 어쩌다가 한방 빵 터지면 메이저가 될 수 있다고 선전하며 마이너들이 지배-피지배 관계를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고 있다. 간혹 가뭄에 콩 나듯 실제 그런 놈이 있어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계급 이동을 하지만 대부분의 마이너들은 자기들끼리 아웅다웅 치고박고 살다가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 

만수산 4인방도 그랬고 나도 그러고 있다. 그러다 가끔은 그런 세상이 지겹고도 역겨워 지배 계급에 항거하기도 한다. 그 날도 그랬다. 정부에게, 지배자들에게 얘기를 좀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살지 말라고. 단지 그것 뿐이었는데 놈들은 나를 유치장에 가둬놓고 말았다. 젠장. 

32살의 초입 집시법과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유치장에 갇혀 은희경의 <마이너리그>를 하루만에 다 읽었다. 70년대 병영과도 같던 고교생활을 하던 주인공들과는 갇힌자로서의 동지애를 밥벌이를 위해 밸이 꼬여도 악으로 깡으로 참고 살아가는 모습에는 생활인으로서의 연대감을 느끼며 나는 소설에 몰입했다. 유치장에서 <마이너 리그>를 읽는다? 예전 같았으면 좌익용공사상을 유포할 수 있다는 핑계로 반입 금지 되었을지도 모를거라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일주일 후 책의 기억을 다시 더듬는다. 어떤 교휸적인 내용이 있었는지 찾아보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마이너들의 삶(약간 우스꽝스러운, 그렇지만 비일비재한)에 관한 소설일 뿐이다. 굳이 교훈을 찾을 필요는 없다. 다만 앞으로 다가올 나의 마이너 인생을 전보다는 덜 아쉬워하며 조금 더 담담히 받아들일 수는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