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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아이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평점 :
"화성의 아이"는 삼백 년 후의 화성이라는 독특한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생명과 사랑, 상실과 연결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SF소설의 외양을 취하면서도 그 본질에 있어서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이 만들어내는 정서적 교류와 성장의 서사를 모색합니다. 로봇과 유령 개, 인간 클론과 실험체들이 만들어내는 이 화성의 세계는 단순한 미래의 상상이 아닌,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절망을 이해하되 웃음을 잃지 않는” 마음으로 삶을 헤쳐 나가는 여정을 환상적으로 그려낸다.
김성중은 중앙신인문학상을 시작으로 현대문학상, 젊은작가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실력파 작가입니다. "화성의 아이"는 그가 데뷔 후 16년 만에 처음 발표한 장편소설로, 기발한 상상력과 현실적인 감정을 조화롭게 녹여낸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줍니다. 그는 그동안의 작품을 통해 환상과 실재가 맞닿은 경계를 연구해왔으며, 이번 소설에서도 삶의 본질과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화성이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존재들의 관계와 성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소설은 표면적으로 SF의 형식을 취하지만, 화성은 전통적인 사막 행성이 아닌 풀과 호수가 어우러진 생명력 넘치는 세계로 묘사됩니다. 작가는 화성이라는 낯선 공간 속에 비인간 존재들을 배치해 경계 없는 상상력을 펼치면서도, 우리 삶의 본질을 은유적으로 탐색합니다. 각 인물이 성장하며 관계를 맺는 과정은 상실 속에서도 삶이 지속됨을 상기시킵니다.
비인간적 존재들이 만들어가는 가족과 연대의 이야기를 그린 이 책은 생물학적 가족의 틀을 벗어나지만, 그 유대감과 보살핌의 진정성은 오히려 더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라이카와 데이모스가 유일한 인간 아기 마야를 키워내는 과정은 이 소설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정체성을 지닌 존재들이 연대와 사랑을 통해 서로를 보듬고 성장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가족과 관계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듭니다. 김성중 작가는 이를 통해, '절망을 이해하되 웃음을 잃지 않는 마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가 직면한 상실과 고독의 문제를 풀어가는 하나의 지침처럼 느껴집니다.
이 이야기는 삼백 년 후의 미래, 화성에 도착한 ‘루’라는 존재의 깨어남으로 시작됩니다. 루는 영하 270도로 냉동된 채 발사된 실험체들 중 유일한 생존자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조차 모른 채 고독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그러나 화성에는 루보다 먼저 도착한 유령 개 라이카가 있습니다. 라이카는 냉소적 유머를 구사하면서도 정서적으로 깊이 있는 캐릭터로, 비인간적 존재임에도 독자에게 강한 친밀감과 유쾌함을 선사합니다.
라이카와 함께 루가 화성 탐사로봇 데이모스를 발견하고, 이 셋은 함께 화성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곧 비극적인 진실이 밝혀지는데, 루는 화성에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캐리어”로서 보내진 존재였으며, 아이를 출산하며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후 태어난 마야는 화성에서 고아로 자라지만, 라이카와 데이모스의 극진한 돌봄 속에 성장해나갑니다.
"화성의 아이"는 이처럼 비인간적 존재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유사 가족을 이루며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각기 다른 존재들이 고립된 화성에서 연대와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과정은, 현대 사회에서의 고독과 소통의 어려움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책 속의 한 대목에서, 라이카는 마야에게 '모든 별은 어머니이고 우리는 춥지 않단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우주의 광활한 고독 속에서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음을 상기시키며, 소설이 전달하는 따뜻한 메시지를 잘 담고 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표현처럼, 사랑과 연대는 때로는 기괴하게 보일지언정 인간적인 감정의 정수로 다가옵니다. 또한 화성을 냉혹한 사막이 아닌 생명이 깃든 따스한 공간으로 그려내며,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경계를 허물어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합니다. 또한 상실과 절망을 껴안고도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각기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다양한 캐릭터의 목소리를 부여합니다. 이 소설의 각 장마다 화자가 바뀌면서 독자는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경험하게 됩니다. 라이카의 냉소적인 유머, 데이모스의 차분한 로봇적 사고, 그리고 마야의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은 각기 다른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유령 벼룩조차도 화자로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김성중 특유의 유쾌함과 창의적 발상이 돋보였습니다.
이처럼 다층적인 시점과 목소리의 전환은 서사에 생동감을 부여하며, 독자에게 김성중이 창조한 세계에 깊이 몰입하게 됩니다. 소설을 읽는 동안 화성에 두 개의 위성이 떠 있는 미래의 세계에 발을 디딘 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화성은 끝없는 사막과 얼음으로 뒤덮인 전형적인 SF적 이미지와는 다른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특히, 라이카가 마야에게 우물이 있다는 사실을 전하며 '여기가 언젠가 지구처럼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장면은, 인간이 남긴 흔적과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이 동시에 공존하는 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처럼 작가는 화성이라는 공간을 생명과 연대가 형성되는 중요한 장소로 만들어냅니다.
또 다른 매력은 유머와 비극을 절묘하게 균형 잡아낸 데 있습니다. 마야가 태어나면서 벌어지는 유머러스한 장면들은 소설의 무게를 덜어주었습니다. 또한 라이카와 데이모스는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서로를 보살피며 웃음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이는 절망 속에서도 유머와 따뜻함을 잃지 않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마야의 여정은 결국 우리 모두가 고독한 존재이지만,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 성장하고 사랑을 배워나가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이 매혹적인 소설은 상실을 껴안고 한 발짝씩 나아가는 삶의 여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며,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절망과 상실 속에서도 웃음과 사랑을 잃지 않는 법을 이야기하며, 타인과의 연대 속에서 의미를 찾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화성이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연극처럼, 이 소설의 각 장은 다채로운 화자들의 목소리로 이어지며 독자를 매혹합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경이로움과 감동이 공존하는 세계를 창조하며, 그 안에서 독자가 잠시나마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나누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