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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누아르 ㅣ 달달북다 3
한정현 지음 / 북다 / 2024년 8월
평점 :
“여자에게야말로 누아르 장르가 필요해요”
한정현 작가의 "러브 누아르"는 여성들이 겪는 고난과 사랑, 그리고 1980년대 서울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이면서도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여성들의 삶이 사랑과 꿈을 이루기에는 너무도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세상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어떤 식으로 자신만의 자리를 찾으려 애쓰고 있는지를 풀어냅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누아르라는 어두운 장르가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당대의 여성들이 직면했던 억압과 불평등을 서사 속에서 진지하게 다룹니다.
1980년대 한국은 군사독재와 경제발전이 교차하는 시기로, 여성들에게도 격변의 시대였습니다. '미쓰 막걸리'라는 별명을 가진 주인공 박 선은 직장 생활에서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그녀는 한양물산이라는 공장에서 경리로 일하며 일상적인 차별과 냉대 속에서 고군분투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미쓰 리 언니와 같은 동료들 사이에서 작지만 중요한 연대의 힘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80년대 서울, 경제 성장과 함께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은 직장에서 이름이 아닌 ‘미쓰’로 불리며, 사회적인 억압을 견뎌야 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여성들이 직장 생활에서 겪는 불평등과 차별은 이 소설의 중요한 주제로 다뤄집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여성들이 자신의 꿈과 사랑을 이루기 위해 어떤 희생을 감내해야 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아르적인 분위기가 왜 필요했는지 보여줍니다. 그녀가 겪는 좌절은 단순한 개인적인 고통이 아닌, 당시 많은 여성들이 겪었던 사회적 억압의 축소판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했습니다.
작가는 선과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들의 사랑과 꿈이 누아르적 현실 속에서 어떻게 짓눌리고 사라져 가는지를 현실적으로 그려냅니다. 선은 사랑과 성공이라는 꿈을 꾸지만, 사회가 허락하는 공간은 매우 좁았습니다. 그녀가 동경하는 미쓰 리 언니는 선에게 꿈을 꿀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지만, 결국 그 꿈은 현실 속에서 깨지기 마련이었습니다. 미쓰 리는 “여자가 성공하는 이야기는 애시당초 글러먹은 거”라는 차가운 현실을 말하며, 여성이 성공하는 이야기는 세상에 없는 환상일 뿐이라고 단언했습니다 .
내용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로맨스가 주된 서사가 아닌 사랑의 부재와 누아르적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로맨스 소설이 사랑의 성공과 달콤한 결말을 그린다면, "러브 누아르"는 사랑을 이루기 어려운 사회적 상황과 여성의 억압된 현실을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로맨스는 이 이야기에서 도망칠 수 없는 현실을 상징합니다. 선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오히려 그녀가 처한 가혹한 현실을 더욱 부각시키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또한, 작품은 로맨스 없는 암흑기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남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선은 자신이 사랑하는 미쓰 리를 동경하지만, 그 사랑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는 당시 여성들이 살아가던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여성이 사랑과 꿈을 이루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사회적 구조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누아르일 수밖에 없다는 미쓰 리의 말은 결국 이 사회가 여성들에게 부과한 차가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여성들의 연대와 용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선과 미쓰 리의 관계는 단순한 상하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의지하고 연대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상징했습니다. 미쓰 리는 선에게 냉혹한 현실을 알려주고, 선은 그런 미쓰 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배워나갔습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에 살아갔던 수많은 여성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갔던 모습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여성 간의 연대는 이 작품에서 중요한 테마로 손꼽히며, 서로를 위로하고 지탱하며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98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듯합니다. 작가는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억압, 그리고 그 속에서도 살아남고자 하는 여성들의 힘을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여전히 여성들은 사회적, 직업적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으며, 사랑과 성공을 동시에 이루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런 현실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가고, 어떻게 연대하며 살아가는지를 생생히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사회적 문제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여성들이 처한 현실은 1980년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며,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사회적 억압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정현 작가는 여성들의 연대와 용기를 통해,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여전히 유효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러브 누아르"는 로맨스와 누아르가 만나는 독특한 장르적 실험이며, 독자들에게 여성이 처한 현실을 깊이 있게 성찰하게 만듭니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 이상의 깊이를 담고 있으며, 여성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