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희망을 가진자의 것이다

코끼리 왕 바바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3
장 드 브루노프 지음, 김미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3년 12월

유아기의 아이는 대부분 글을 모르기 때문에 엄마가 읽어주는 형식을 취합니다. 하지만 좋은 그림책은 아름다운 그림이 글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어 그림만으로도 책읽기가 가능합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그림책 코끼리 왕 바바(장 드 브루노프, 시공주니어)는 각 페이지마다 적지 않은 글이 자리하고 있지만, 누구나 그림만으로도 그 내용을 읽어내릴 수 있습니다.

평화로운 숲속, 코끼리 바바는 행복했습니다. 어느 날 엄마코끼리와 산책을 나왔다가 사냥꾼이 쏜 총에 바바는 엄마를 잃고 눈물을 흘리다가 너무 무서워서 도망치기 시작했지요. 달리다보니 도시까지 오게 되었지만 바바는 두려워하지 않았답니다. 큰 상점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것저것 물건들을 사고, 급기야 새로 산 옷이 맘에 들어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귀부인과 친구가 된 후론 함께 살며 인간생활을 익혔습니다. 코끼리 나라를 생각하거나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구요. 이쯤 되면 누구나 '아! 이 이야기는 엄마를 잃는 불행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코끼리 바바의 모험이야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것입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흔히 모험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며 모진 풍파를 만나게 됩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그 어려움을 모두 이겨내면 상처투성이에 옷은 찢겨져 너덜거리지만 주인공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빛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책은 프랑스 추리소설의 주인공으로 영국의 꼬장꼬장한 골샌님 학자풍의 셜록홈즈와는 다르게 훤칠한 키의 미남에 멋스러운 코디로 뭇 여성의 애간장을 녹이는 뤼팽(게다가 그는 철저한 애국자다)을 선택했듯이 다분이 프랑스적이랍니다.

바바는 '엄마의 원수'들이 사는 도시로 가게 되지요. 하지만 그 곳은 바바에게 두려운 곳이기보다는 새롭고 신기한 곳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바바를 불행한 상황으로 몰고 갈 것 같은 도시는 선명한 원색에 다양하고 흥미로운 볼거리들을 담고 있답니다. 그 도시의 길가에 서 있는 신사 아저씨들을 보며 바바는 생각했습니다. '우와, 저 아저씨들이 입고 있는 옷 좀 봐. 정말 근사하네! 나도 저렇게 멋진 옷을 입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때마침 만난 귀부인에게 지갑을 건네 받은 후 바바는 상점으로 갔고, 고향 숲이 느껴지는 멋진 초록색 양복을 샀습니다. 이제 우리는 초록색 양복을 입은 품격 있는 코끼리 바바에게서 아라비안 나이트의 신밧드 볼 수 있을 것이라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됩니다.

초록색 양복...... 초록색은 조화와 균형을 상징하는 색으로 희망, 회복, 평화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바바의 엄마가 죽었을 때도, 바바가 사냥꾼에게 쫓기듯 달아났을 때도, 엄마생각이 나서 울음을 터뜨렸을 때도 바바의 심리는 불안하게 그려져 있지 않네요. 마찬가지로 이 책의 작가 장 드 브루노프는 바바의 도시생활을 숲 속 생활과 똑같은 원색으로 표현했습니다.

불행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어려움을 씩씩하고 슬기롭게 이겨낸 바바는 이미 다른 코끼리와는 달랐습니다. 회색의 벌거숭이 코끼리가 아닌, 멋진 초록색 양복을 입고 빨간 자동차를 타고 그리운 숲 속으로 돌아온 바바는 도시에서의 성공적인 모험을 인정받고 쭈글쭈글 주름 투성이 어른 코끼리에 의해 왕으로 추대됐습니다. 사랑하는 코끼리 친구 셀레스트와 결혼을 했고, 이번엔 둘이서 여행을 떠났답니다. 다음 이야기가 또 궁금해지지요?

이 책은 작가와 그의 아내, 그리고 두 아들까지 한가족이 함께 창작한 이야기라 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이 책은 그저 자식들과 그림책을 즐기며 대화를 나누는 아빠의 순수한 마음을 느끼게 합니다. 저희아이도 이책에서 아빠의 마음을 느꼈나봅니다. 늘 한권을 반복해서 읽기보다는 여러권을 읽곤 했었는데, 이 책은 기본이 10번입니다. 책을 읽을때마다 누군가 와서 이렇게 속삭이는지도 모르겠네요. '얘야, 세상은 희망을 가진 자의 것이란다.'

만나기 힘든 항아리, 여기서 볼수 있어요

숨쉬는 항아리 - 솔거나라 전통문화 그림책 6 ㅣ 전통문화 그림책 솔거나라 2
정병락 글, 박완숙 그림 / 보림 / 1995년 1월

언젠가 항아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최근에야 항아리를 보기가 쉽지 않지만 그나마 우리눈에 띄는 것들은 반짝 반짝 윤기가 돌도록 무언가를 발라 놓은 것이라더군요. 그런 항아리들은 숨을 쉴수가 없다지요.. 옹기항아리들이 정말 숨을 쉬는가..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하는데...정말 숨을 쉬더랍니다..

숨쉬는 항아리... 글뿐 아니라 그림마저도 감탄하게 하는 외국의 창작동화들.. 참 좋지만 엄마도 잘 모르는 음식에 과일에 풍물들을 보며 왜 우리동화는 이렇게 잘 만들어놓은것이 없을까..아쉬워 했었는데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오는 책을 만나게 된거지요. 투박하지만 친근한 옹기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종류, 그리고 하는 일까지 재미있게 잘 담겨져 있습니다. 플랩으로 달려있는게 좀 어설프기는 하군요..^^

저희아이요? 참 좋아합니다. 언젠가 나들이갔다가 돌아오는 국도 길가에 옹기 파는 가게가 있길래 잠시 멈췄을뿐인데도 항아리~ 항아리~ 하며 씩 웃었답니다. 책 읽어줄때마다 이건 김칫독..이건 젖동이..이건 고추장 단지..잘도 따라 합니다. 참 아쉬운 일이죠..이렇게 멀리 나와야 항아리를 볼수 있다니 말예요.

우리아이.. 숨쉬는 항아리처럼 메주를 된장으로 만들어낼수 있는 속 깊은 아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림책 보고 놀아요

쑥쑥 몸놀이 2 (전3권) - 우리아기놀이책 4집 ㅣ 우리 아기 놀이책 19
다섯수레 편집부 엮음 / 다섯수레 / 1999년 4월

다섯수레에 나온 말놀이 그림책을 보고 종알거리는 아이의모습에 한편으로 또 다른 기대를 안고 구입한 책입니다. 아빠하고 나하고/꼬마야꼬마야/엄마품은 따뜻해요..이렇게 세권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이중에 저희아이는 꼬마야꼬마야를 가장 좋아한답니다.

늘 집에서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도 놀이에대해서는 빈곤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왜 우리 어릴때 하며 놀았던 그것들 생각은 떠올리지 못했을까요.. 그저 구입한 교재와 교구들을 만지작 거려야 할것 같은 강박관념도 있었고요. 이 책들은 단순히 그림을 보며 읽어주는 책이라기보다는 그 모습을 보며 놀이를 할수 있는 책이랍니다.

꼬마야꼬마야 뒤를 돌아라~~ 로 시작되는 책속에는 우리아이들과 똑같은 모습의 아이가 놀이를 하고 있어요. 물론 저희아이는 그모습을 하는 엄마모습을 나름대로는 똑같이 흉내내려 애쓴답니다.

우리말로 우리정서로 우리리듬에 맞는 책이라 아이도 쉽게 받아들이는 건 아닌가 하여 즐겨보는 책이지만 그와함께 몸으로 부대끼며 보고 이야기할수 있는 책이라 더욱 흡족하네요. 오늘도 저희아이는 이 책에 나온 놀이들을 하고 잠자리에서는 책을보며 엄마와 노래를 부르곤 꿈나라로 빠져들었답니다.

아이와 밤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달님 안녕 ㅣ 하야시 아키코 시리즈
하야시 아키코 글ㆍ그림 / 한림출판사 / 2001년 4월

단행본으로는 처음 구입한 책입니다.. 5개월무렵부터 자기전에 늘 이책을 읽어주었는데 지금은 너덜너덜해서 동생때 다시 사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랍니다. 그만큼 많이 읽었고 아이도 잘 가지고 놀며 좋아하는 책이예요.

선명하고 단순한 그림에 간단한 이야기.. 하지만 몇번 읽다보면 엄마가 말이 많아지게 만들지요.. 캄캄한 밤에 뜬 달님...재혁아 인사해야지..안녕? 안녕하세요? 저런 갑자기 구름이 나타나 달님을 가리네요..이맛살이 찌푸려지는 재혁이.. 구름님 비켜주세요..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구름님.. 다정히 인사하며 자리를 뜨시네요.. 그리곤 다시 방긋 웃으며 나타난 달님과 인사..방긋 웃는 재혁이.. 자..그럼 이제 재혁이도 코 잘까? 저런..멜롱 달님하고도 인사를 해야 한다고? 책을 다 읽어주면 책을 뒤집어 메롱하고 있는 달님의 모습을 흉내내며 인사합니다. 그리곤 책을 들고 혼자 누워 한참을 보다가 겨드랑이에 끼고 잠이 들지요.^^

이 책 덕에 여유없이 땅만 바라보던 엄마는 아이의 손가락 끝을 따라가며 고개 들어 하늘 한번 바라보게 되네요. 어느새 저희아이는 바이바이~ 안녕~ 인사를 익히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책은 글자수가 적고 글자 하나하나가 충분히 커서 좀 더 자라면 한글공부하기에도 적합한 듯합니다. 누구에게라도 권해주고 싶은 책이랍니다..

마음이 그득해짐을 느낍니다.

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학생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

사범대를 나온 전 대학을 다니는 내내 이 이야기를 들으며 지냈답니다. 질의 내용속에는 학과목에 대한 실력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교사의 모습까지 포함하는 것일테지요.

개인적으로 교사는 무언가를 가르치며 이끄는 사람이기 보다는 정보, 경험, 자극등등을 제공해주는 인격체로서의 역할이 더 커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창가의 토토에 나오는 고바야시 선생님이 바로 그런분이 아니였을까 합니다. 일반 초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토토와의 첫만남에서 선생님은 그저 토토의 이야기를 웃으며 들어주셨더군요. 꼬박 네시간동안을...

상상해보세요. 머리숱도 얼마 없고 앞니까지 빠진 단정한 차림의 선생님과 호기심으로 초롱초롱해진 눈을 굴리며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한 아이가 서로 똑같이 몸을 앞으로 내민채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라... 생각만해도 그저 흐믓한 미소를 흘리게 됩니다.

이책을 읽은 후 전 토토의 학교생활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꼽아보려 했었지요. 하지만 어느하나 그저 보고 넘길만한 에피소드는 없었답니다. 사회의 편견에 젖어 있지 않은 도모에 학교 아이들의 건강한 시선으로 일구어지는 학교생활.. 전철교실과 뿌리가 있는 나무 두그루로 된 문을 가진 학교이야기를 읽어가다보니 이책은 고바야시 선생님의 학생에 대한 신뢰로 채워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신뢰와 믿음. 사람과 사람사이에 이보다 더 중요한 게 또 있을까요? 알고 있으면서도 우린 또 이를 얼마나 간과하며 지내는지...

그저 제 어린시절에 고바야시 선생님과 같은 아니, 비슷한 분이라도 가까이 있었다면 전 지금보다 더욱 생동감 있게 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를 경험한 엄마를 가진 제 아이는 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랄수 있을텐데 하며 아쉬움이 남는군요.

하지만 아쉬움만 남겨놓아서는 안될테지요. 전 고바야시 선생님이나 토토의 엄마와는 비교도 되지 못할정도로 너무나 평범할뿐아니라 한쪽 구석엔 이미 사회 편견이 자리해있답니다.

그러기에 그저 연습을 시작하려 합니다. 우리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연습을... 그리고 그 다음은 또 다음에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글을 쓰고 나니 마음이 그득해짐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