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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ㅣ 사계절 그림책
울프 에를브루흐 그림, 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 사계절 / 2002년 1월
평점 :
두 세달 전 즈음 집앞 문화회관에서 같은 제목의 뮤지컬 포스터를 본 적이 있었다. 그림도 재미있고, 설정도 재미있어서 한참동안 바라보며 웃었었다. 그리고는 저 우수운 모습 속에서 나를 보기도 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하기보다는 불평불만을 터뜨리며 감정적으로 힘들어하는 내 모습이 저 표지에 그대로 묻어났던 것이다. 누군가 내 머리에 똥을 쌌다면 일단 냄새나는 똥부터 머리에서 치우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때로는 똥 봉변을 당했다는 사실에 집착하다보면 더 큰 봉변을 당하게 되는 일도 많다. 그런데 그럴 때면 나는 누구인지 범인을 색출하는 데에 혈안이 되건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으면서 불평불만에 휩싸인다. 그러다보면 머리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지독한 냄새도 내 곁을 떠나지 못하는데 말이다.
며칠전 알라딘 중고 서점을 거닐다가 이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구입해서 단숨에 읽었다. 과연 표지 그대로 '누구가가 싼 똥'을 맞는 봉변을 당한 두더지 아저씨가 똥을 싼 범인을 색출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는 마음 속 한 가득 치밀어 올는 분노를 안고 만나는 동물들마다 붇잡고 심문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결국 범인을 밝혀내고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범인의 머리 위에 자신의 소박한 똥을 싸고야 마음의 평화를 되찾게 된다.
책을 읽기 전에는 불평과 색출과 복수가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범인을 찾고 나서야 증거품으로 머리에 이고 다니던 똥을 내려놓고 '눈에는 눈, 귀에는 귀'의 방식으로 복수극을 벌인 아저씨의 모습이 더 현실적이고 통쾌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비록 그가 지를 수 있는 똥의 크기는 애초에 그의 머리에 엄청난 양의 똥을 내지른 개의 그것에 비해 사소하리만큼 작지만 말이다.
이 책의 결말에 통쾌함을 느낀 이유는 당하고도 말 못한벙어리 냉가슴의 사례들을 너무 많이 보고 듣고 느낀 탓인지는 모르겠다. 왠만하면 용서하고 지나가라는 옳고도 진부한 말씀들이 주는 압박감도 싫었을것이다. 뻔한 교훈대신 과학적인 문답형 규명방식(용의자들에게 '너가 내 머리에 똥 쌌어?'라는질문을 반복하고 '난 아니야'라고 고개를 흐드려 증거자료를 제시하는 각종 동물들의 똥들을 구경하고)과 전문가(각종 동물의 똥 전문가인 파리)의 정밀한 분석을 통해 '통쾌한 복수'를 실현하는 결말이 신서해서 나는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내 뱃속의 아이와 이 재미를 함께 나누려면 앞으로 얼마나 한 시간이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