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열권의 책을 썼다. 2009년 말에 출간된 책 <심리학 사랑에 빠지다>를 시작으로 지난 삼년을 돌아보면 '쓰고 쓰고 또 쓰고'의 연속이었던 삶이었다. 올해 초에 임신을 한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쓰고 쓰고 또 쓰느라 실컷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읽고 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임신과 출산, 육아, 모성과 관련된 책들에 저절로 관심이 간다. 

 

나는 책 탐이 많다. 빌리기보다는 소유하기를 원한다. 빌린 책들에는 기한이 정해져 있거나 공유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따라오기 때문에 편하게 읽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사는 데에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어떤 때에는 사고 싶은 책을 사기 위해 글 쓰고 상담하며 돈을 버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사놓고도 읽지 않은 책도 많지만 사고 싶은 책은 나날이 늘어나서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는 책 때문에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야하지 않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일을 많이 줄이고 인세 수입도 주춤해지고 나의 작은 집에 책들이 넘치기 시작할 무렵 즈음 종로에 알라딘 중고 서점이 생겼다. 나는 이 곳을 보자마자 좋아했다. 나에게는 내가 보유하고 있는 한정된 재화로 충족할 수 있는 책 탐을 보다 여유롭게 펼칠 수 있는 장이자, 허기진 마음의 혈관에 쉽게 책 수혈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장이기도 했다. 책을 읽는 기쁨은 주지만 책을 소유하는 기쁨까지는 주지 않는 도서관이나, 책을 소유한다는 설렘은 주지만 새로운 책의 얼굴을 설렘은 주지 않는 서재보다 좋은 장소일 수 있었다.

 

중고서점은 갈 때마다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남편과 나는 종로의 거리를 두 손을 잡고 걷다가 '오늘의 한도액'을 각자 정하고 주황색 서점으로 들어섰다. '오늘의 한도액'이란 '오늘은 2만원 어치 이상은 집어들지 않겠습니다'라는 다짐을 말한다. 우리는 자주 한도액을 넘어섬으로써 이 다짐을 지키지 못했고 그렇다고 해도 서로 크게 구박하지도 못했다. 양쪽 다 책 탐이 많기는 마찬가지 였기 때문이다.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아이를 위한 심리적, 물리적 책 세계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에 나는 언젠가부터 마음을 사로잡는 동화책, 청소년 도서, 양육과 관련된 도서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알라딘 중고 서점을 더 적극적으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책을 사기만 할 것이 아니라 팔기도 하면서 말이다.

 

서재를 한 차례 정리해서 팔 책들을 솎아냈다. 그저 꽃혀 있기만 하던 책들을 모두 동화책이나 지금 딱 읽고 싶은 책으로 바꾸기 위해서 였다. 사두고 나서 '언젠가는 읽겠지'했으나 그 언젠가가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큰 책들이나, 재미있게 읽었지만 다시 읽을 일은 없을 것 같은 책들, 나의 선호와 관계없이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들, 이렇게 서재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책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나는 이 책들을 너댓권씩 안고 아침 나들이를 하기 시작했다. 마침 28주에 접어든 지금부터는 순산을 위해 걷기 운동도 많이 해두어야 한다고 한다.

 

오늘도 집에 누워있던 책들을 팔고 새로운 책들을 수혈받아 오는 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도 생생하게 살아있고 나도 생생하게 살아있고 내 뱃속의 아기도 생생하게 살아있는데 이 생생한 책 여행들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이 블로그를 시작하기로 했다. 다른 곳에도 블로그가 있고 혼자서 노트에 쓰고 컴퓨터로 옮기지 못한 글들이 많지만, 굳이 새로운 블로그 공간을 열게 된 이유는 요즘 읽고 있는 모성(어머니 노릇)관련된 책에 대한 단상들을 모을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여 이 공간의 핵심주제는 '모성', 매개물은 '책', 매개물 제공자는 '알라딘 중고서점'(때때로 다른 온/오프라인 서점), 기대 결과는 '행복한 모성', '나를 위한 모성'이 될 것 같다. 학문적으로는 문학과 심리학과 여성학에 닻을 내린 에세이를 써왔기에 책 선정이나 블로그의 분위기 역시 그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들로 채워질 것 같다.

 

지금까지 나는 글쓰기를 통해 개인적 관심을 꾸준히 기록하다보면 그 기록이 공공성이 묻어나는 유익한 담론으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체험해왔다. 이 곳이 나 위한, 그리고 너를 위한, 더 나아가 모두를 위한 책읽기, 글쓰기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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