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당 인생
함성호 지음 / 마음산책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알게 된 건 저자(함성호)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처음 난 ‘이런 책도 썼나?’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상당히 재미있었다. 만화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 신선함과 충격, 기발한 상상력과 유머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사실 내가 만화를 즐겨보던 때는 대학 4년이었다. 한참 취업 고민하고, 졸업 작품으로 밤새고, 어디하나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을 때, 우연하게 들른 만화가게, 그리고 난 그 만화가게에서 해방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그저 일탈행위이고  그에 따른 만족감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러나 대학 4년에 다시 접한 그 만화 속에는  어렸을 적에는 느끼지 못한 상상의 꿈과 자유로움이 있었다. 그것은 그저 자유로움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자유로움이었다. 

  당시 즐겨보던 만화는 SF, 무협, 이현세... 등이었는데, 특히 난 만화 속에 그렇게도 넓은 세계가 존재할 줄은 몰랐다. 최첨단의 과학적인 명제가 우습지 않은 소재가 되고, 거기에 철학적인 시구들, 문학적인 상상력과 재미있는 역사의 패러디까지... (사실 난 삼국지도 만화로 읽었다.)

  그 후로 한 동안 난 만화가게를 들락거렸다. 그리고 취직을 하고서 난 천천히 심각한 현실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이렇게 심각하게 인생을 살게 된 건 만화와 멀어지면서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이렇게 빛나는 과거속의 한 추억을 이 책은 일깨워 주었다.  


  그런데 저자는 그때의 나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만화라는 마약에 빠져있는 것 같다. 그것도 금단현상마저 일으키면서.  내가 알고 있는 저자는 수많은 지적인 편력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시어를 내뿜는 어려운, 그러나 훌륭한(?) 시인이었다. 아닌가? 그런데 그도 만화책를 보는 사람이었다니!

  이야기도 추억도 이 책은 쉽게 풀어쓰고 있다. 어렵거나 힘든 상황으로 우리에게 어떤 이해를 구하지 않고, 자신이 만화 본 기억을 더듬어 우리에게 편안한 이야기를 해준다. 다만 그의 이야기에는 친근한 경험담이나 공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판과 분석이 실려 있다. 아마 작가로서 건축가로서의 눈매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어쩌면 그게 이 만화 안내서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이 책 때문에 ‘존나깨군’(이우열의 만화)은 상심(傷心)에 잠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찐득한 표현으로 ‘존나깨군’이 보여주는 성 담론과 육두문자에 병적인 사회적 스트레스가 있음을 지적한다. 미안하지만 이 부분 상당히 웃긴다.(p54)

  아이완의 -사실 난 이 만화를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에 대한 분석에서는 저자의 감성과 예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화면을 구성한 의도, 공간에 스민 감정과 표현의지, ... 아마도 그린 사람보다 더 분석을 잘 해놓지 않았나 싶다. 참고로 저자는 비평가이자 건축가이다.


  이렇게 가끔씩 드러나는 실랄한 독설은 아마도 저자의 만화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 아닐까 한다. 아득한 어린시절 그 어둡고 축축한 구석에서 만화를 보며 자라난 사람들 - 사실 이런 기억은 우리 세대만의 추억일지도 모르지만 - 그 사람들, 바로 우리는 만화를 보며 즐겁고, 슬프고, 애닮은 인생을 배워왔다. 저자는 만화를 통해 그런 인생의 진실을 가르쳐 주려는 것 같다. 어쩌면 만화 속에는 우리의 생각과 꿈, 우리가 느끼며 꿈꾸며 살아가는 이 세상에 관한 모든 얘기가 그려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현실보다 더 진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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