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기하학
WILLIAM BLACKWELL / 기문당 / 1988년 12월
평점 :
절판


30년을 건축 현장에서 살아온 오부장(건축감리였다)은 언제나 육각형의 집을 꿈꾸고 있었다. 육각형은 오부장에게 가장 완전한 도형이었고, 그의 환상적인 꿈을 담는 그릇이었다. “집 전체는 육각형 5개(설마 했는데 자신의 성이 ”오“라서…)가 모여있는 형태로, 각각의 육각형이 방이 되어야 하고.… 육각형의 거실에는 투명한 유리 밑에 작은 연못이 있고, …” 오부장의 말을 듣고 있으면 나조차도 환상에 빠질 지경이었다. 결국 그는 머릿속에서만 떠돌던 이 집의 설계를 시작했다. 물론 그 설계는 불행하게도 나에게 맡겨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오부장의 망상에 사로잡혀 헛고생만 하게 되었다. 그는 정말 육각형의 공간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그 안에 살고 싶어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것은 다만 평면적으로 완전해 보이는 육각형에 대한 신비감이었다. 이것은 5개의 육각형을 붙여 놓으면서 실현될 것 같았지만, 육각형의 방을 사각으로 갈라놓으면서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오부장은 그저 평면적인 윤곽만 5개의 육각형이길 바랬고, 집의 입체적인 형태나 공간에 대해서는 육각형을 불편해 했다. 결국 난 그가 꿈꾸고 있는 것이 육각형이 아닌, -그렇다고 어떤 기능이나 크기가 제시된 것도 아니었다- 육각형을 빙자한 환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 만의 환상 속을 헤매고 있었고 설계를 남에게 맡기기에도 너무나 주관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때 이 책을 샀다. 이 책은 건축에서 부딪히게 되는 수많은 도형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난 오부장이 왜 육각형(hexagon)을 완전한 도형이라고 생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에 오부장의 사고방식이 3차원적이었다면 그는 정12면체dodecahedron)나 ‘절단8면체’(p168, cube-octa series)의 형태를 원했을 것이다. 건축에 있어서 기하학을 다룬 책은 많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은 유클리트의 입체도형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공간-기하학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Fonatti의 <건축의 기본조형 원리>는 기하학의 형태를 주로 평면조형의 원리로 삼아 설명하고 있으며 기본입장이 건축적이라는데 차이가 있고, 봉일범의 저술 -<움직이는 기하학)은 유클리트의 입체도형 원리를 루이스 칸의 건축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는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간된 ‘건축과 기하학’을 다룬 서적들은 -이 책을 비롯해서- 크게 두가지 맹점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서적이 유클리트 기하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기하의 인간적인 또는 감성적인 해석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현대건축은 유클리트의 영역을 넘어서 프렉탈의 세계를 넘나들고 있으며, 건축에 있어 기하의 해석은 한편의 시와 같이 인간적인 감성으로 용해되어 나타난다. La Grande Arche는 기하학적 해석의 가장 인상적인 예 중에 하나일 것이다. “열려진 입방체는 세계를 향한 창문이며, 미래를 바라보는 가로의 커다란 종결점입니다.그것은 현대의 개선문으로서 인류의 승리를 기념하며미래에 대한 희망의 상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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