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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구조
WOLFGANG MEISENHEIMER / 국제 / 1996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건축에 관한 개론서이다. 초보자들에겐 입문서로서 건축가들에겐 교양서로서 읽혀질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과 구성 방식은 개론서라고 하기에는 좀 어려운 점이 있다. 친절하게 풀어놓은 그림들을 보면서 단편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저자의 설명은 간결하고 암시적이며 때로는 시적이어서, 하나하나의 그림을 살피면서 저자의 짧은 해설을 읽노라면 독자들은 많은 의문을 품게 된다. 아마도 저자는 독자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이 다른 것은 저자 자신의 독특한 건축관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저자는 건축의 공간 현상을 세 범주로 나누고 있다. - 배열과 분할(*), 내부공간. 그에 따르면 건축은 사물과 공간의 배열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으로, 배열이 첫 번째 범주이다. 배열과 다른 범주는 물체와 공간의 내적 질서와 분할의 영역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을 둘러싸는 내부공간을 이야기 하는데, 이러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저자의 인지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이젠하이머(저자)는 공간 조형의 기본 모델로서 인체를 강조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배열과 분할, 내부공간” 모두가 인간이 공간을 느끼고 만드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그는 공간을 논하기에 앞서 인간 행위의 원초적인 무대로서 장소를 이야기하고, 이 장소들의 체계로서 공간을 정의한다. 공간 또한 1차적으로 ‘행동의 공간’(**)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으로, 인간이 촉각 등에 의해 원초적으로 인식했던 공간의 감각을 일깨운다. 행동의 공간에 이어서 ‘시각적인 공간’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공간을 지각하게 되는지를 시지각의 유클리트적인 특성과 투시적인 구조(깊이감)를 들어 설명한다.
그에게 있어 공간을 읽는 최종적인 수단은 인체이다. 심지에 배열의 최종적인 원리를 설명하면서도 그는 Edward T. Hall의 공간심리학 연구인 프럭시믹스(Proxemics)를 인용한다. 사람들 간의 공간심리학적인 허용거리가 바로 공간 배열의 원칙이 된다는 것이다. 분할의 원칙으로 다루고 있는 유클리트의 도형과 플라톤의 입체(hedron)은 통설에 불과 하다. 다만 그가 덧붙인 조형의 상징적이고 인간적인 의미의 분석은 뛰어난 것이다. 그는 조형 형태(Gestalt)를 설명하면서도 에렌펠스의 ‘시간적인 형태’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삶의 공간 이라는 건축의 인간적인 가치를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그 외에도 그는 건축조형의 근본적인 모델이 인간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접하면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어딘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건축의 원형상“이었다. “건축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조형적인 기본 꼴은 건축공간에서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것은 고도로 문명화된 건축술의 형태에도, 그리고 소박한 형태에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 아마도 저자는 넌지시 그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인체공간, 동굴과 같은 인체의 내부, 몸을 감싸는 옷, 부풀어 오른 옷, ...” 저자는 건축의 역사가 유클리트적이고 정형화된 ‘사이공간’과 원시적이며 비유클리트적인 ‘동굴공간’으로 대별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마도 동굴은 그 원시성으로 인해 끝없이 재탄생되는 원형적인 모티브였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공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잘 읽어내고 있다.
인간은 태초로부터 수많은 꿈을 꾸어왔다. 태초의 오두막이 거대한 신전의 삼각 지붕이 되고, 바벨탑이 현대도시의 초고층이 되기까지 ... 그러나 인간이 꿈꾸는 건축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수많은 시간과 그 장대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 그것은 마치 피라미드와 원시오두막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것과 같다. 건축가에게는 그런 원형을 읽어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건축이 왜 존재하는가와 같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 이 책에서는 “분류”라고 옮겼으나 적합하지 않다.
** 이 책에서는 “유형학적 공간”이라고 옮겼으나, 문리에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