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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숨
배명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1월
평점 :
인류가 목성까지 진출한 미래. 지구와 태양 사이에서 공전하는 우주콜로니 ‘첫숨’에서의 이야기.
첫숨은 굉장히 우아한 소설이다.
예를 들어 판타지에서 소드마스터와 대마법사 같은 1인 군단급 개인이 다수 존재할 경우 중세봉건 사회가 유지될까? 그렇지 않다. 역학 관계가 무너져서 다른 형태의 사회로 재편성 될 것이다. 이점을 일종의 장르특성이나 클리셰 같은 느낌으로 다들 무시할 뿐 성립할 수 없는 사회라는걸 안다.
그러나 첫숨은 그렇지 않다. 하나의 세계가 세계로서 모순없이 작동하고 매끄럽게 돌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첫숨은 매우 우아한 소설이다.
우주시대. 지구(1G)에서 자란 사람과 달(0.17G)에서 자란 사람, 화성(0.38G)에서 자란 사람은 각각 자란 문화와 걸음걸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익숙하지 않는 중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 그걸 기믹으로 활용하기 위해 1,2가지 묘사한게 아니라 실제인듯 작품속에 녹아있다. 마치 그런 상황을 보고 기록한 마냥. 그리고 그런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원심력으로 중력을 만드는 콜로니를 배경으로 세움으로서 고도차에 따른 중력을 표현하고, 그걸 중심 소재로 활용한 첫숨은 굉장히 이색적이고, 자연스럽다. 정말 우아하다고 느껴질 만큼 하나의 세계가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또 매력적이었던 것은 주인공의 추론. 덤덤하고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해 추론하는게 인상적이다. 상대의 표정, 몸짓, 발걸음, 단어, 행간부터 시작하여 건물의 배치, 디자인, 자료의 생산목적 등등 모든 것에 대해 의도를 추론해 들어가는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자연스럽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1인칭 화자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장치일지도 모르겠는데, 읽는 당시에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자연스럽다는 칭찬을 계속하게 되는데 이게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중 하나다.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흐름에 방해가 되는게 없다는 뜻이니까. 시냇물이 흘러 강이 되듯 작은방에서 ‘첫숨’까지 세계가 물 흐르듯 확장된다. 이런건 정말 드문 경험이다.
그리고 책 디자인. 표지에 첫숨 콜로니를 상징화 시킨 도안에다 제목을 새겼는데 이게 정말 예쁘다. 그리고 책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에 우주를 넣어둔게 또 신의 한수다. 이건 ‘우주와 우주 사이에 ‘첫숨’이라는 세계가 있다’는 걸로 해석이 가능하잖아! 누가 생각했는지 천재적인 디자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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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단점. 내가 느낀 단점은 딱 하나 있는데, 모든 등장인물이 한국식 이름이라는 거다. 지구출신 보안책임자, 화성출신 정치가, 달출신 무용수를 비롯한 모두가 한국식 이름이다. 화성까지 테라포밍한 먼 미래에서의 한국이 배경이 아니라, 그 시대 가장 큰 콜로니가 배경인데 등장인물이 모두 한국식 이름? 이렇게 될 가능성은 극단적으로 낮다고 생각되기에 좀 어색했다.
100점 만점에서 이 유일한 단점이 0.1점 까먹어 총점 99.9점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