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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프랑스 작가 '카롤린 몽그랑'의 두 번째 작품 '밑줄 긋는 남자'다.
일단 여러가지가 생각난다. 맨 처음 서점에서 이 책을 봤을 때, 제목이 특이해 살펴본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책에는 밑줄이 그어져있더라..그러니까 밑줄이 인쇄되어있더란 소리. 그러나 주머니가 얇은 나에겐 너무 얇고 비싼 책이라 외면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외면하길 잘 했단 생각이 든다. 이렇게 느긋할 때 읽기에 참 좋은 책이니까.....
주인공 이름이 '콩스탕트'다. '콩스탕트'는 뒤마의 삼총사에 나오는 '달타냥'의 여자친구, '보나시외 부인'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녀는 아버지의 친구인 '보나시외'와 결혼한 인물로, 젊은 달타냥과 바람이 났다가, 결국은 '밀레디'에게 죽임을 당하는 비극적 인물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콩스탕트'는 비극적인 것과는 도무지 연관이 안 되지만, 스스로 비극속의 주인공 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만큼 감수성이 남다른, 아니 실은 평범할 지도 모르는, 20대 중반의 여자이다.
그녀가 마을 도서관에서 빌린 책 속에서 밑줄을 발견하고는, 그걸 자기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곡해하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는 밑줄 긋는 남자가 정해준 다음 책을 읽고, 다시 다음 책을 읽고...이런 식으로 남자의 흔적을 좇는다...
책은 니미에(누군지 모름), 도스또예프스키, 키에르케고르, 가리(처음 들었음) 등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문학 텍스트들을 이용해 자신의 상상력을 마구 쏟아낸다.
정말 교묘하고 영리한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만.....................
이 책의 역자후기에는 '누구든 소설 속의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화 시키는....'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도서관이라는 곳에서 책을 매개로 이어지는 사랑이란 얼마나 낭만적인가, 고로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면 책속의 주인공을 자신과 동일화하며 즐기지 않겠느냐, 또는 그렇게 즐기기에 이 책은 아주 좋다라는 식의 평가다. 그래,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나의 경우, 이 책을 읽으며 소설 속의 인물 누구도 나와 동일화 시킬 수 없었다. 실은 요즘 그런 경험을 거의 해보지 못했다. 소설은 그냥 소설일 뿐, 감정이입의 단계로 날 이끌지 못하더라. 그런 경험을 갖게 한 책은 오로지 두 권으로, 읽는 동안 내가 책속에 있다고 느낀 것은 '바우돌리노'가 유일했고, 읽은 후에 책 속에 있었다고 느낀 것은 '전날의 섬'뿐이었다.
이 작품은 갈증날 때 마신 청량음료 같다....
마실 땐 시원하지만, 잠시 후에 더 한 갈증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