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이동진 지음 / 예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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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쪽이 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이지만 재미있어서 금방 읽게 된다. 어려운 영화 용어,촬영 장비 같은 전문적인 이야기가 거의 없어 어렵지 않았고 좋아하는 감독들의 작품을 세세하게 분석해서 "오~이런 장면에서 감독의 의도는 이런거였군"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무엇보다 작품 속 대사를 먼저 읊은 뒤 그와 연관되는 질문을 하는 방식이 신선했다.  

책 부록엔 [씨네21] 김혜리 기자와 이동진 기자의 인터뷰가 있어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과 어려움,궁금증을 풀어줬다. 그 중에서 '부메랑 인터뷰' 방식을 정해놓고( 대사와 연관되는 질문) 어려운 점이 뭐였냐고 물었더니 "어떨 때는 하고 싶은 질문이 있어도 도저히 맞는 대사가 없으면 포기하기도 해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신선한 질문이 많았던걸 보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많은 열정과 시간을 쏟았음을 알수 있다.  

가끔은 감독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걸 질문하고 정의를 내리거나, 잘 알아채지 못하는걸 끄집어내는 경우가 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와 [플란다스의 개]의 유일한 접점인 '폭탄주'를 질문한 것 처럼 말이다. 이동진 기자의 색다르고 깊이있는 인터뷰!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첫번째는 홍상수 감독이다. 이동진 기자는 '남자,여자,침대,술 이라는 욕망의 4원소로 삶의 허망한 구조를 드러낸 영화세계'라고 평했는데 솔직히 난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제대로 본게 없다. 몇 작품을 봤다고 생각했었는데,어이쿠! 한 작품도 없었다. 그의 작품을 잘 모르면서 인터뷰를 본다는게 왠지 죄송스럽기도 했지만 이 기회에 감독의 생각등을 알수있는 기회가 되었다. 보통은 제목과 작품이 밀접한 관계를 맺지만, 그는 어감이 좋은걸 쓴단다. 일종의 제목의 홀로서기 라는데, 이름에 어떤 상징이나 의미를 포함하는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우들과의 관계, 흥행이 안되는 상황, 주인공들의 직업의 설정,배드신, 남녀관계등에 관한 홍상수 감독의 솔직한 답변이 흥미로웠다. 특히 '이성을 앞에둔 동성끼리의 신경전'이 많이 다뤄지는데, 감독은 "남녀관계에는 다른 관계보다 환상이나 통념,의지나 이성같은게 더 복잡하게 섞여있는것 같다. 그런 관계를 다루면 제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가장 잘 드러날것 같다"라고 답한다. 앞으로도 우리는 그가 풀어내는 남녀관계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보게 될 듯 싶다.  

두번째는 봉준호 감독. 워낙 좋아하는 감독이라 인터뷰 기사를 많이 봤고, 이동진 기자가 인터넷에 올린 글도 봤기 때문에 6명의 감독 인터뷰 중에서 신선도(?)는 가장 떨어졌다. 알고있는 이야기가 많아서 그런가보다. 그럼에도 한 글자라도 놓칠세라 꼼꼼하게 읽었다. 특히 봉감독의 최근작이자 가장 어두웠던 [마더]에 관한 이야기는 더더욱! "죄에 대해 이야기할때 우리는 그의 한쪽 얼굴밖에 보지 못한다는 느낌을 살리고 싶어" 이 영화에선 측면 얼굴을 많이 찍었다고 한다. 

'마더'까지 포함해서 제가 만든 영화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하자가 있는 무능한 주인공들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던져 진다는 것(p249)/ 시나리오란 영화를 찍으면 소멸되어 버리는 것. 결국은 영화가 존재하는 것이지 시나리오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를 완성한 직후부터 거기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p254) 가 인상깊은 구절이었다. 다음 작품인 [설국열차]로 또 어떤 놀라움을 던져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세번째는 류승완 감독이었다. "제 자신이 웃고 싶었던 심정이 있어서" 탄생한 [다찌마와리] 극장판. 하지만 흥행은 잘 되지 않았다.그 영화에서 가장 크게 웃었던건 임원희가 콧물을 왕창 쏟은 장면이었는데, 현장에서도 폭발적인 인기였단다. 특히 타이밍에 딱 맞춰서 뻥 터져준 임원희의 콧물방울은 축복 이었다는 류감독. 

그는 요새 "내가 할수 있는 다른 것을 해야지. 그들이 할 수 없는 뭔가가 있지 않겠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좋아하고 존경하는 대상을 뛰어넘기보단 자신이 그들과 다른 사람이라는걸 깨닫고 난 후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이렇듯 다른 사람과는 다른 자신만의 확실한 색깔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류승완 감독. 예술가보다는 장인이 되고 싶다는 그의 바램이 영화속에 나타나는것 같다.

류승완 감독하면 액션 영화가 먼저 떠오르는데, 장르적 의미의 액션영화는 [짝패]하나라고 해서 많이 놀랐다. 액션 장면을 중요시하고 좋아해서 인터뷰를 많이 한게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킨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액션감독으로 불리는게 자랑스럽다고 한다. 앞으로 그만의 액션 스타일이 여전했으면, 많이 보여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시인 출신인 유하 감독이 네번째 인터뷰 대상이다. 첫 작품 [바람 부는 날이며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오래 쉬어야 했지만 [결혼은 미친짓이다]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중심으로 일어선 유하 감독. 첫 작품 땐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이 강했던 시기라 영화를 통해 시를 알리고 싶었고, 영화를 시와 대중문화의 길 트기 작업으로 생각한면이 있다고 한다. 비록 아쉬움이 많이 남았고 8년간 쉬어야 했지만 그 후로 멋지게 재기했다. 특히 [말죽거리 잔혹사]는 "제 머릿속에서 끄집어낸 기억으로만 만든 작품"으로 개인적 추억이 많은 작품이었다고 한다.  

난 [쌍화점]을 보면서 많은 배드신이 지루하게만 느껴졌고, 인물들의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느꼈다. 이에 대해 감독은 "[쌍화점] 배드신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홍림이 육체에 탐닉해서 점차 변해가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라고 했다. 에로틱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았고, 그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보자는 차원에서 찍었단다. 또 하나의 이유로는 현대극이 아닌, 사극이라는 점을 들었다. 관객들이 에로틱하게 느끼는 데에는 심리적이고 상황적인 측면이 강한데,사극이라 한계가 있었다고 말이다. 그래도 내겐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다섯번째 주자는 임순례 감독. 그동안 좋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었는데, [우리들의 행복한 순간]으로 다행히 만회를 했다. 영화를 보면서 감정이 과하다거나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그에 대한 감독의 설명을 들으니 이해도 갔다. 특히 촬영 현장에서 많은 제약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 최선의 장면을 찍어야 했던 고충도 털어놨다. "이 영화의 편집이나 촬영을 제 스타일로 했다면, 호흡이 좀더 느려지고 앵글도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는데 확실히 그전 영화들보단 많이 양보도 하고 새로운 시도도 많이 한 것 같다.  

"마지막 최후의 영화 한편을 만드신다면 어떤 것이 담길까요?" 라는 질문에 "저는 제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굉장히 궁금합니다. 지금 이곳에 태어나서 한 생을 살아야 하는 이유 말입니다. 바로 그런 것에 대한 영화를 마지막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라고 답했다. 어떤 영화일지 상상이 잘 되진 않지만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가족의 탄생] 이라는 걸작을 만든 김태용 감독이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 민규동 감독과 공동 연출한 [여고괴담2]와 [가족의 탄생]이 전부이지만, 그럼에도 이 멋진 감독들 틈에 있다는게 어색하지 않다. 그만큼 [가족의 탄생]에서 보여준 이야기와 연출은 굉장했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말할 필요도 없고. 

이동진 기사가 "그깟 연애가 뭐라고 이렇게들 나쁘게 살아요?" 라는 대사가 인상적 이었다고 하니 김태용 감독은 너무 기뻐한다. 이 대사를 거론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이 대사가 장면의 핵심이고 이 영화자체의 핵심이라며 말이다. 김태용 감독의 분량은 짧았지만 유쾌하고 톡톡 튀어서 재미있었다. 김태용 감독의 작품이 더 많이 나오면 지금보다 풍성한 인터뷰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생겼다.  

내게 영화는 '재미없는 영화'와 '재미있는 영화'로 나뉜다. 극장의자에 앉아 2시간여를 꼼짝없이 봐야하니 이왕이면 재미있는 영화가 좋다. 남들이 혹평한 영화라도 내겐 걸작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단 한 장면 때문에 영화가 그 좋아지는 경우가 있다. 반면 생각만해도 소름끼칠만큼 최악인 영화가 있고 그런 영화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 바빴다. 하지만 이 인터뷰를 보니 영화 만드는게 보통 일이 아니구나, 그냥 아무 생각없이 지나친 한 컷트를 위해 감독은 머리를 싸매고 시나리오를 고치는구나를 다시 한번 느꼈다. 물론 앞으로도 난 재미없는 영화를 볼때마다 내가 지불한 시간과 돈을 아까워할 테지만,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노력만큼은 잊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만들지 말았어야 할 영화는 없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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