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김승섭 지음 / 난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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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김승섭 /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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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에 따른 대립이 더욱 첨예해지기를 바랍니다. 다만 그 대립이 정치적 선동으로 인한 공허한 충돌이 아니라, 구체적인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현실에 뿌리박은 갈등이기를 바랍니다. 그런 갈등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그런 진통을 겪지 않고 생겨나는 대안은 현실에서 힘들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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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3월 26일의 천안함 사건과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나는 두 사건 모두 기사로 먼저 접했다. 특히 천안함 사건 같은 경우엔 워낙에 정치색과 양쪽의 대립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던지라... 그러니까, 금세 질려버린 사건이었다. 나는 당시 20대 초반이었고 그건 나와 너무 먼 이야기 같았으므로. 오히려 세월호 참사때는 막 첫돌이 지난 딸을 품에 안고 울었더랬다. 매년 그들을 추모하기도 하며. 한 사건은 이미 끝난 채로 내게 남았고 후자는 여전히 애도가 진행되는 이야기였지만 이 책을 통해 몇가지 간과한 것을 깨달은 것이 있다면 먼저 '생존자'의 존재 자체가 희미했다는 점, 그리고 천안함 사건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거다. 나는 사망자=피해자라는 공식을 당연하게 여겼고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래도 죽는 것보다 살아있는 게 낫지 않냐며 같잖은 계산을 하고 있었다. 새삼 내가 이렇게 무섭고 무지했구나, 싶어서 스스로가 낯설기도 했다.

두 사건의 생존자들을 만나 기록한 이 책 속에는 진짜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생존 장병들을 옥죄이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편견, 패잔병이라는 낙인,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지지의 부재, 국가유공자로 인정 받기 위해 스스로 싸우거나 포기해야 하는 것들. 11년이 지나도 그들에겐 여전히 진행 중이고 유효한 상처를 이 책이 아니었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온 국민에게 슬픔과 큰 충격을 안겼던 세월호 참사 생존자와 가족들은 상황이 좀 다를까. 그들도 역시 타인의 시선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감내해야 할 부분들이 많았다. 틀에 박힌 '불쌍한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쉽게 비난을 던진다. 피해자가 피해자다운게 무엇일까... 암묵적으로 규정된 그 틀을 스스로 깨닫기까지 나 역시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가. 그래서 이 책이 더 많이, 널리 읽혔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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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것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온전한 이야기예요." -아우로라 레빈스 모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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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건 외에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고(故) 변희수 하사와 노동자의 산업재해 실태, 한국 트렌스젠더 여성이 군복무중 겪었던 어려운 점, 소방공무원의 업무중 부상 및 공무상 요양 신청 통계 자료들은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가 되는 일을 곱씹게 된다. 이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나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같이 한국사회에서는 굵직한 일들이 있었으나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과거로 리셋되는 기시감이 든다. 그래서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길 수 있을까, 제목처럼 그럴 수 있을까, 그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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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국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피해자를 향한 연민을 넘어서야 하고, 슬픔과 분노를 소비하는 행위를 넘어서야 합니다.(중략)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 '애도'해야 하고, 참사의 사아처와 함께 계속해서 살아가기 위해 '기념'해야 합니다.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합니다.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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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출판사 서포터즈 >신난다< 자격으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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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피해자들은이겼다
#신난다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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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이아 을유세계문학전집 118
에우리피데스 지음, 김기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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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이아』
#에우리피데스 /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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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드라 : 트로이젠의 여인들이여, 펠롭스 땅 이곳에 가장 멀리 떨어진 앞뜰에 거주하는 이들이여, 밤새도록 기나긴 시간 동안 이미 나는 인간 삶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숙고했습니다. 사람들이 더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은 타고난 판단력 때문이 아닙니다. 많은 이가 올바른 판단력을 갖추고 있지요. 아니, 이렇게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 알고 그것을 인식하지만 실천하려고 애쓰지 않아요.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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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로 손꼽히는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가장 비극적인 시인"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 책은 그의 대표작 3편을 만나볼 수 있다.

▪️「알케스티스」
이올코스의 왕 펠 아드메토스는 아폴론의 의해 명이 다하여 죽음이 임박했을 때 대신 죽어줄 사람이 나타난다면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아내 알케스티스만이 남편을 대신해 죽겠다 나선다. 그녀가 죽고선 헤라클레스가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싸워 되살린다.

▪️「메데이아」
아버지인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를 배신하고 아르고 원정대 이아손에게 황금양털을 손에 넣도록 돕는다. 하지만 그녀 역시 남편에게 배신 당하는데.. 복수의 방법으로 두 아들을 제 손으로 죽인다. (표지는 외젠 들라크루아의 메데이아,1838)

▪️「힙폴뤼토스」
아르테미스 여신을 경배하고 아프로디테에겐 정 반대였던 힙폴뤼토스는 그에 대한 응징으로 사건에 휘말리는데... 계모 파이드라에게 모함을 받은 뒤 아버지 테세우스에게 쫓겨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희곡은 낯선 장르라 선뜻 접근하기 어려웠는데 그리스 신화라는 점에서 용기를 내볼 수 있었다.

위의 3편을 읽으면서 느낀 ▪️첫번째로는 코러스가 있지만 인물들의 대사가 중심축이기 때문에 굉장히 날 것으로 다가왔다. 서술형 묘사가 아닌 실제 목소리가 울리는 느낌, 스크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다소 불편한 관객석에 앉아 무대 전율을 전달받는 듯했다. ▪️두번째는 3편의 공통점이었는데 모두 가족안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 부부가, 그로인해 자식이, 또 부자가... 가장 가까이 당연시 되었던 관계에서 제일 먼저 상처와 갈등이, 증오가 솟는다. 이 자체만으로도 비극 중 비극이라 할 수 있겠다. ▪️세번째는 이 책을 읽기 전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다. 여성들의 위치, 여성을 바라보는 시대의 관점이다. 남편 대신 자신의 목숨을 내어준 알케스티스. 자신의 삶을 잇고자 아내의 죽음을 그저 슬퍼하며 지켜본다. 환생 역시 (남성)영웅의 의해 만들어진다는 점, 여성의 생과 사는 모두 남성의 손에 달린 아이러니란. 조국과 아버지를 배신한 메데이아는 또 어떤가. 처자식을 위해 재혼을 선택했다는 남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상황 자체도 우스워졌지만 "만약 당신 남편이 새로운 결혼을 존중해도 그런 이유로는 그에게 칼을 갈지 마세요. 이런 일에는 제우스가 당신의 변호인이 되실 겁니다. 당신 남편에 대해선 지나치게 괴로워하지도 지나치게 울지도 마세요."라거나 "품에서 아이들을 잃은 여자는 마님 혼자만은 아니랍니다. 필멸의 인간이라면 불행을 가볍게 견뎌 내야만 하지요"라며 아내로써, 엄마로써의 인내를 강조한다. 아르테미스를 찬가로 숭배하지만 아프로디테에겐 경멸에 가까운 입방정(?)을 떤 힙폴뤼토스. 하인의 조언도 고깝게 들으며 그의 오만함은 하늘을 찌른다. 경솔한 언어로 자멸하는 셈. 여기서 그가 내뱉는 말들, 아프로디테뿐 아니라 여성들을 지칭하는 말들, 이를 테면 "오 제우스여, 왜 당신은 위조된 여자들을 햇빛 안에 살게 하여 인간에게 재앙이 되게 하셨나요? 꼭 여자를 빌려 종족을 낳을 필요는 없었겠죠.(중략) 그러니 여자가 커다란 재앙인 것이 분명하구나. 낳아 주고 길러 준 아버지는 거기에다 지참금을 더해 딸을 떠나보내는데,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지. 혼인한 사내는 이 해로운 피조물을 집 안에 들이고는 가장 해로운 형상에 예쁜 장신구를 붙여 주며 기뻐하고 불쌍한 사내, 그녀를 의복으로 감싸 주려 생고생하네 집의 재산을 점점 탕진하면서 말이다." 등등. 읽다가 뒷못 잡을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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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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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이아
#알케스티스
#힙폴뤼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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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일가 - 교토 로쿠요샤, 3대를 이어 사랑받는 카페
가바야마 사토루 지음, 임윤정 옮김 / 앨리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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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일가』
-교토 로쿠요샤, 3대를 이어 사랑받는 카페
가바야마 사토루 취재,글 /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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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무는 일상에서 한숨 돌리는 시간, 말하자면 '생활에 구두점을 찍는 장소'를 제공하는 일에서 서서히 기쁨을 발견했다. "지하점은 개점 무렵부터 젊은이,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손님층이 그리 변하지 않았어요. 그런 장소를 지금 시대에도 계속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기쁩니다."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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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의 로쿠요샤 커피점, 1950년 문을 열어 70여년동안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저자인 기자이자 편집자 가바야마 사토루가 이곳과 사람들을 취재하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핫플레이스인만큼 나는 '커피'와 '커피 맛'에 관한 이야기를, 그러니까 소위 말하자면 '맛집 후기'정도로 생각했달까.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은 한참 전쟁 무렵을 배경으로 일본이 패전하고 두명의 남녀가 만나는 이야기, 지극히 개인사로 시작된다. 로쿠요샤 커피점의 태동같은 느낌, 이곳이 태어나기 위해 필연적인 나날들이 모여 생애를 이어가고 있는 곳의 이야기.

현재 3대가 이어 운영중인데 그 운영방식이 나로서는 조금 독특하다고 느꼈다. 일층과 지하 점포가 따로 있는 것은 별로 신기할 것이 없었는데 서로 매우 독립적인 장소였다. 휴무일은 같되 다른 모든 것은 다르다. 분위기도, 메뉴도 심지어 원두도! 특히 지하점의 낮은 창업자의 삼남 오사무와 아내가 커피점으로, 밤에는 바bar로 변신해 창업자의 장남 다카시가 맡는다.

한 장소에서 대를 이어 사랑받을 수 있던 것은 단지 오랜 세월의 흔적이나 입소문때문이 아니었다. 점주의 노령화로 젊은 세대로 이어오면서 그들 역시 분투하며 고민한 흔적들이 역력했다. 물론 '고객 중심' 경영 철학도 변치 않고 지키고 있었고. 위기를 겪으면서도 로쿠요샤를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과 가족들의 열정도 한몫 더했다. 모든 이야기가 한데 모이니 로쿠요샤를 향한 이들의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갓 로스팅한 로쿠요샤만의 원두향을 닮은 일러스트가, 당장 방문할 수 없는 발걸음을 달래주듯 담긴 실사도 매력적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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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에 들어가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물론 커피도 그 이유 중 하나지만,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일기를 쓰거나, 기분 전환을 하는 등 저마다 카페를 찾는 목적이 천차만별인 점이야말로 매력이 아닐까.

'사려 깊은 찻집과 편안한 카페의 중간.'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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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북스 서포터즈 자격으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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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 50주년 기념 에디션
린다 노클린 지음, 이주은 옮김 / 아트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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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린다 노클린 / #아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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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이여, 잘못은 별들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호로몬, 월경주기, 또는 우리 내부의 빈 공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잘못된 것은 제도와 교육인데, 여기서 교육이란 사람이 의미 있는 상징과 기호체계, 그리고 신호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사람에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망라한다.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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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발표 50주년 기념 에디션, 응? 50주년? 이 글이 1971년에 쓰였다고? 그렇다, 심지어 30년 후(2006)의 글도 수록되어 있다. 페미니즘 미술사의 고전, 이 글들이 당시 기념비적인 파장을 일으켰다는데 지금 봐도 기시감 없는 글에서 저자의 통찰력에 감탄스럽기도 했지만 30년 후에 미미한 변화에도 긍정적으로 다음을 말하는 문장에 집중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이야말로 미술계에서 페미니즘과 여성의 위치가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우리는 과거의 업적뿐만 아니라 미래에 놓여 있을 위험과 어려움에 대해 알아야 한다.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그들의 작품이 보이고, 글로 읽히도록 우리의 모든 재능과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이것이 미래를 위한 우리의 과제이다. p115

📖시대를 불문하고 어쩌면 지금이 항상 "중요한 순간"이지 않을까, 미미한 변화이긴하나 여전히 대중의 인식과 뿌리깊은 남성주의 관점이 만연하다. 거래가격 자체가 턱없이 낮게 시작한다는 점은 물론 동등한 위치에서 제대로 평가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러므로 저자가 던진 과제는 우리 윗세대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미래세대에도 관통하는 과제로 느껴졌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지적 하위구조에서 전체적인 오류가 무엇인지 검토->'문제'의 형성->'문제'의 타당성->미술사가 지닌 한계(p86)까지 오목조목 파헤치는동안 저자가 불러들인 이름들을 만나는것도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인데 이는 현시점을 짚어보는 현장의 느낌이었다. 다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것처럼 여성 미술가들의 이름은 낯섦이 먼저 번지는데 이들을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들어야할 귀가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그들을 더 많이 불러내야하는 몫도 우리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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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나 지금이나 남성의 더 큰 '관용'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항상 결혼과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듯 보인다. 이를테면, 성공의 대가로 고독을 얻거나, 직업을 포기한 대가로 성관계를 하고 동반자를 얻는 것이다. 노력해야 성취하는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예술 분야에서 성취하려면 투쟁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진리다.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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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북스서포터즈 자격으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artbooks.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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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위대한여성미술가는없었는가
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
#세계여성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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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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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았던 날들』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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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죽음에 대해 말할 줄 모른다. 아마도 그것이 죽음에 대해서 내릴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정의일 것이다. 죽음은 말을 벗어나는데, 죽음이 정확히 발화의 끝에 도장을 찍기 때문이다. 그것은 떠난 자의 발화의 끝일 뿐 아니라, 그의 뒤에 살아남아 충격 속에서 늘 언어를 오용할 수밖에 없는 자들의 발화의 끝이기도 하다. 애도 속에서 말은 의미작용을 멈추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것이 더이상 없음을 전하는 데에만 종종 쓰일뿐이다.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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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세 번째 여자 랍비이자 철학자이고 작가인 오르뵐뢰르의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한 11편의 이야기. 저자가 하는 랍비의 일이란 의례를 집행하고 사람들과 함께 그들을 가르치는 것, 「성서」의 텍스트들을 번역해서 그것들을 읽을 수 있게 해주고, 한 전통의 목소리들을 각 세대에 들려주는 것이라지만 제대로 말하자면 '이야기꾼'이다. 그리고 오르뵐뢰르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이야기는 시간 사이와 세대 사이에, 존재했던 사람들과 존재할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우리의 거룩한 이야기는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 사이에 통로를 연다. 이야기꾼의 역할은 그 입구에 서 있으면서 그곳이 열려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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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11편은 누군가의 죽음에서 이어진 이야기들을 촘촘히 엮어나간다. 그 방식이 평소 죽음에 관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그러니까 살아 남은 자들이 갖게될 지독한 슬픔이나 상실로 인해 마음이 동요되어 눈물을 안 흘릴수가 없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내게 제일 크게 다가왔다. 물론 그 감정들이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만 '죽음'의 고유한 개별성을 넘어 다른 관점으로 죽음을 응시할 수 있는 가르침이 담겨있다고 느꼈다. 저자가 들려주는 유대 전통 문화(중에서도 장례의식)와 히브리어의 어원은 생경한만큼 신비로운 요소가 많았고 탈무드나 성서 속의 이야기들은 솔직히 재밌으며(!) 대담함이 엿보이는 부분이 많았다. 등장인물들의 종교적 가치관이라던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확실히 삶 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달까. 그리고 때론 이런 방식이 애도를 건네는 자에게도, 받는 이에게도 필요로 하는 언어일 수 있다는 것, 적어도 죽음을 겪거나 미래의 죽음 앞에서 허우적거리지는 않겠끔 해주지 않을까, 하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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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주 생각한다. 우리의 장례식 날에 우리의 삶이 비극의 형식과는 다르게 이야기될 수 있고, 우리가 다른 어휘와 다른 상황의 언어로 회상될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의 삶 역시 스릴러, 로맨스 시리즈, 신화, 심지어 대중적인 코미디 영화처럼 간주될 수 있기를, 내가 사랑하는사람들 역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장례식에서 우리가 우리의 죽음으로 요약되지 않고, 그래서 우리가 살아생전에 얼마나 살아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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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책이 죽음을 말하면서 죽음을 배제하고 건조시킨 이야기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이 책은 죽음의 끝이 아닌 죽음과 삶이 함께 하는 이야기이며 내가 낳은 내 삶의 이야기가 "반드시 살아남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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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삶과 출생의 이야기다. 더욱이 히브리어로 '이야기'라는 단어 '톨레도트toledot'는 '출생'이라고 일컬어진다. 당신의 삶은 무엇보다 당신이 낳은 것으로 이야기된다. p142

🔖죽음을 배운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다. 단 두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모세처럼 돌아서 미래를 본다는 조건하에서 가능하다. 미래는 우리 앞이 아니라 우리 뒤에, 우리가 막 오른 산의 흙 위에 새겨진 우리 발자국에 있다. 그 흔적 속에서, 우리를 뒤따를 사람들과 우리 뒤에 살아남을 사람들이 우리가 아직 거기에서 볼 수 없는 것을 읽을 것이다. p222

🔖우리가 튼튼하게 세운 모든 것이 결국 마모되거나 사라질 때, 약하고 일시적이며 빈틈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세상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지나간 존재의 입김은 증발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숨을 불어넣고, 우리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데려간다.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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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하우스 서포터즈 자격으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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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살았던날들
#랍비 #유대교 #장례식 #삶 #죽음 #히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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