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 - 방대하지만 단일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
조애나 버크 지음, 송은주 옮김, 정희진 해제 / 디플롯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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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방대하지만 단일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
조애나 버크 / #디플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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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성폭력의 로컬리티과 시대적 구체성을 탐구한다는 점이다. 성폭력은 사회적 산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얼마나 아는가? 문제는 각 사회마다 성적인 것의 의미, 폭력의 의미가 다르다는 점이다. 어떤 지역에서 성폭력은 공동체의 전통으로 여겨지거나, 여성이 겪는 폭력이 바람직한 성 역활로 미화된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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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소개되는 성폭력의 세계사"

전 세계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성적 학대 피해를 입는다. 그리고 피해자/생존자인 동시에 수치 또한 이들의 몫이다. 여기까지는 나 역시 인지하던 부분이고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결코 단일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성폭력을 남성이 여성을, 강자가 약자에게 성적 권리를 행사하거나 강간의 범주안에서만 생각했다. 그보다는 훨씬 방대하게 인종과 계급에서 성소수자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제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동성애 혐오가 성 정체성을 교정한다는 목적으로, 부부간 성 학대가 사적영역 밖으로 끌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전쟁에서, 군대에서, 법이 지켜주지 않는 곳에서 자경단 활동의 정의로움 반대에 이면까지무엇보다 남성이->여성을 강간하는 비율이 높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무시할 수는 없음을 알았다. 어느 나라에서는 '강간'을 의미하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신분 계급이 낮다면 당해도 어쩔 수 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과 사례들이 나올 때마다 당황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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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방대한 성폭력의 세계사라니, 낙담할 법도 했지만 낙관주의자인 작가는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살피고 "강간 없는 세계"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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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강간 없는 세상을 상상하고, 생각하고, 계획하고, 만들려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인 경제적ㆍ이데올로기적ㆍ정치적 구조 안에서 지역적 맥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역의 변화로 축적된 효과가 전 지국적 변화로 나타난다.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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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하게 느껴지지만 "권력이 있는 곳에 언제나 저항이" 있기 마련이고 더 급진적인 노력이 요구되겠지만 "젠더 폭력에 맞서는 캠페인은 다른 진보적은 대의들과 연합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도, 번성할 수도, 세계를 바꿀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더불어 "지배의 체계는 다층적이고 공동 구성되고","학대는 별개의 혹은 단일한 사건이" 아님을 많은 이들이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 학대 행위는 젠더화된 노동의 산물이며 그 노동은 정치적이다.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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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
특히 7장, <군대가 낳은 강간>편의 시작은 일본 황군이 현대 역사에서 가장 큰 성매매 사건을 체계적으로 계획 및 실행했던 '위안부'이다. 80퍼센트가 한국인이었고 생존자들의 기록과 설명이 나온다. "한국 여성의 몸은 군수품, 일본의 승리를 가져올 자원으로 취급"되었던 사실과 일본과 한국의 정치적 장기말이 된 것, 또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한국이 일본 제국 일부였을 당시 입은 피해 보상을 청구할 수 없었던 것까지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2015년 말 830만 달러의 배상금과 제한적인 사과를 보고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너무 적고, 너무 늦은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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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dplot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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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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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속의 영원 - 저항하고 꿈꾸고 연결하는 발명품, 책의 모험
이레네 바예호 지음, 이경민 옮김 / 반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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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속의 영원』
-저항하고 꿈꾸고 연결하는 발명품, 책의 모험
이레네 바예호 / #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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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책을 모으는 일은 세상을 소유하는 또 다른 상징적, 정신적, 평화적 형식이었다. 책 수집가의 열정은 여행자의 열정과 비슷하다. 모든 도서관은 여행이며, 모든 책은 유효기간이 없는 여권이다.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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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그리스 로마 신화에 매료되어 고전문헌학을 전공한 저자는 "상상의 근육"과 "실제 자료의 골격"에 맞춰 고대부터 현재까지 책의 모험을 집필했고, 나는 이토록 환상적인 모험을 즐기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정말 푹빠져 읽었는데 수천년동안 제 존재를 지키며 내 양손에 들리기까지의 여정과 책을 지켜왔던 이들의 노력이 와닿기라도 한 것처럼 신비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종이책의 전망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안다. 휴대면이나 공간성을 따져봐도 그렇고 무엇보다 독서 인구는 계속 감소하는 추세이고, 출간되는 책만큼 버려지는 양도 상당할 것이다. 성실하게 종이책을 사랑하는 마음과 살뜰하게 사 모으는 나로서는 모든 사실을 외면함과 동시에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다. 종이책이 정말 사라지면 어떡하지. 이 무게와 종이의 질감과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과 다시 이야기가 시작되는 마법을 잃는다면 어쩌지.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걱정이 쓸데 없는 일로 치부할 수 있게 된다. 그 옛날 구술시대에 "글로 쓰인 말은 죽은 기호이자 환영이며, 살아 있는 유일한 담론인 구술의 사생아"라고 말하던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말이 어떻게 전해졌는지 안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독자들은 글로 쓰인 말에 생명을 불어넣을 줄 안다"고 했다. 익명의 사람들은 고대부터 책을 이렇게 지켜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책이 열정의 연료였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세상의 모든 책을 모으고자 나일강의 경계를 넘어 전방위로 목숨을 건 대리인을 보내고 부와 문화를 과시할 수 있었던 "절대적이고 완벽한 도서관"을 세운다. 로마는 또 열심히 약탈과 모방을 일삼으며 나름의 문화를 일군다. 5000년 전에 발명된, 사실상 현재의 책의선조격인 점토판과 양피지, 습도에 취약한 파피루스가 필사와 사본을 거치며 보편화되기까지, 전쟁과 자연재해에 맞선 생존의 역사는 그야말로 눈물(?)없이 보기 힘들다.이 모든 것들이 책이 탄생하고 파괴되고 사랑받으면서 탄압되는 무구한 역사속에서 존재한다. 그리고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현재진행형이 아닐까?

당장 1세기 후의 세대들이 책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전자 태블릿이 강세를 보일까? 그렇더라도 「갈대 속의 영원」 뒤로 기록될 책의 역사에 지금도 책을 손에 들고 있고 밤잠을 아껴가며 책을 펼칠 이들의 모습이 기억됐으면 좋겠다. 또 한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과 독자들이 오래 상생할 수 있도록 이야기꾼들의 말과 글도 가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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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서기는 13세기 성경에 재료의 결핍을 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 하늘이 양피지고 바다가 잉크라면 좋았을 것을." p101
└와! 나는 하늘도 바다도 다 가졌다! 신났다가 ↘

🔖소크라테스는 글로 인해 사람들이 스스로 숙고하는 노력을 하지 않을까 봐 염려했다. 그는 문자의 도움 탓에 지식을 텍스트에 위탁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하여 텍스트를 깊게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채 그것을 소유하는 데 만족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되면 우리의 지울 수 없는 고유한 지혜가 타인의 부속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날카로운 지적은 아직도 유효하다. p153
└이 대목에선 뜨끔🥲

🔖글쓰기는 우리 종족의 마지막 떨림, 오래된 심장의 가장 최근 박동이다.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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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속의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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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셸비 반 펠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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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넘나들며 가지각색의 사연과 사람을 품은 너그러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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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와 파도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 수상작 창비교육 성장소설 8
강석희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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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있었던 일이 없어지진 않아요.
아이들은 무경을 통해 싸움의 방향과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쓸데없이 흥분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목표를 위해 차분하게 말하고 행동했다. 외로웠으나 의연했고 두려웠으나 눈감진 않았다. 많은 것을 바꾸진 못했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건 아니었다.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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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간접적으로 접하는 학교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었고 어떤 사건이 발생한다. 지속적으로 은밀하게 또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너무 멀리 내동댕이쳐진 채로 알게 된다. 짤막한 기사 몇줄이나 대대적으로 뉴스에 보도되는 학교폭력도 그렇고 장르 특성상 사실 그 이상의 다른 것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 수상작인 「꼬리와 파도」에서는 좀더 섬세하고 밀도 높은 폭력의 양상을 만날 수 있었다. 단순히 몸과 말을 휘두는 폭력뿐만 아니라 데이트 폭력, 운동부 사제 관계 간의 폭력 등의 학교 폭력은 내 예상보다 치밀하고 훨씬 폭력적이었다. 소설속이 아니라 현실에 분명 있을 법한 이야기들임을 계속 자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다만 학교 폭력이 학교 폭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경과 친구들은 그에 맞서 파도를 일으킨다. 이 파도는 10대 아이들의 용기와 연대,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탄생한다. 더 큰 파도가 되어 더 큰 물결이 일으키면서.

자칫 무기력에 빠질수도 있겠으나 이 연대의 과정을 보면 열렬한 응원과 지지를 보내게 된다. 10대의 청소년들이 많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자연스레 커지는 것은 물론 어른들의 역할과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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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mediachangbi_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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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살이 되면 Dear 그림책
황인찬 지음, 서수연 그림 / 사계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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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살이 되면』
#황인찬 시 / 서수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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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시인은 그림책을 염두에 두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수연 작가님의 그림이
더해져 한 권의 시 그림책으로 완성 되었다.

그림책의 시작은 무려 백 살이 되기를 소망하는
소년이 등장한다.

🔖백 살이 되면 좋겠다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아도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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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부름에도, 아빠의 흔들림에도 깨지 않고
창밖에 내리는 빗소리에 귀기울이 바라는 소년.
마치 꿈속을 거니는 듯한 소리들을 들으면서
나무가 되기를,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무 밑에서
조용히 쉬고 계시면 좋겠다는 소년.
침대위에서는 무표정이었던 소년의 표정은
어느새 말갛게 피어나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이곳저곳을 평화롭게 누빈다.
덕분에 소년을 따라나선 이 동행은 보는 이마저
기분이 동동 뜨기 마련:)

그림책은 현실에서 어른의 몸으로 삶을 영위하는
내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전달하지만 사실은
내안에 어린아이에게도 가닿는다.
눈 뜨지 않길 바랐던 어느날 아침으로 데려가고
온갖 상상으로 내 세상을 그렸던 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이끈다.
그때 그곳은 어땠나.
그리고 지금은... 아득하니 아련한 것 같고.

🔖그 잠에서 깨어나면
여전히 한낮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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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휴식 같은 시 그림책"이라는 표현만큼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번잡한 마음과 분주한 일상에서 이 그림책은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휴식을
선물해주었다.
눈 뜨지 않고 백 살이 되는 상상을 하는 것조차
사치였던 일상이었건만 이렇게 또 쉬어간다.

🔖잘 쉬었어?
오늘은 기분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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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대답하고 싶어서 매일 펼쳐 볼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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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도서입니다.
@sakyejul
#백살이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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