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제작인 '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다.
표현할 ‘적당한 말’이 없다는 그 자체가 이 글이 주는 깊은 울림이 아닐까 싶다.
처음 제목만 봤을 때는 로맨스 느낌이었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작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문장이 등장한다.
같은 작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인종도 국가도 다른 이들은 처음에는 무난하게 지내는 듯했으나, 다양한 가치관 차이로 인해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감정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문장이 섬세했고, 공감이 잘 되었다.
작품은 '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라는 문장을 낭독하며 끝난다.
번역되어도 전해지지 않는 그 ‘적당한 말’은 언어가 가진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때는 언어가 모든 것을 정리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한때는 언어가 모든 것을 정리해 줄 수 있다고 믿은 적 이 있었다. 말을 믿었고, 들은 것을 확신했다.
읽은 것들로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쓰면서 감정을 다잡았다.
말이 만들어주는 상호작용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체험할 수 있는 경계는 그렇게 견고해졌고 그것은 꽤 오랫동안 내 세 계를 지탱해 줬다.
아니, 지탱해 준다고 상상했다.
이제 나는 그 확신에서 한 걸음 벗어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