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
정선임 외 지음 / 해냄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제공을 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나와 이방' 이라는 주제로 네 명의 작가들이 뭉쳤다.

각각 낯선 도시에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첫 장을 펼치자마자 나온 사그리다파밀리아 성당 얘기에 엄청나게 반가웠다. <해저로월>

스페인에 갔다온 적이 있어서 그런지 이미지가 그려지며 추억이 떠올랐다.

스페인에서 정착하지 못한 이방인으로 살다가 한국으로 들어오기로 결심하고, 부모님의 부탁을 받아 고모의 유해를 찾으러 포르투갈의 한 게스트하우스로 향하는 수정.

포르투갈에서의 고모의 흔적을 찾고, 자신이 썼던 에세이 속의 상상했던 고모와는 다른 삶이었다는걸 알게 된다.

그날도 그랬다. 그런데 어딘가 달랐다. 작은 방을 둘러보았다. 아무것 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조각처럼 불편했던, 책장에서 비어져 나온 책 같아서 불안했던, 여기가 아닌 것 같아서 외로웠던, 평생을 떨쳐내지 못할 것 같았던 그 기분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해저로월

표제작인 '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다.

표현할 ‘적당한 말’이 없다는 그 자체가 이 글이 주는 깊은 울림이 아닐까 싶다.

처음 제목만 봤을 때는 로맨스 느낌이었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작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문장이 등장한다.

같은 작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인종도 국가도 다른 이들은 처음에는 무난하게 지내는 듯했으나, 다양한 가치관 차이로 인해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감정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문장이 섬세했고, 공감이 잘 되었다.

작품은 '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라는 문장을 낭독하며 끝난다.

번역되어도 전해지지 않는 그 ‘적당한 말’은 언어가 가진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때는 언어가 모든 것을 정리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한때는 언어가 모든 것을 정리해 줄 수 있다고 믿은 적 이 있었다. 말을 믿었고, 들은 것을 확신했다. 

읽은 것들로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쓰면서 감정을 다잡았다. 

말이 만들어주는 상호작용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체험할 수 있는 경계는 그렇게 견고해졌고 그것은 꽤 오랫동안 내 세 계를 지탱해 줬다. 

아니, 지탱해 준다고 상상했다.

이제 나는 그 확신에서 한 걸음 벗어나 있다.

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

그 외에도 <망고스틴 호스텔>, <낙영> 등 다채로운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각 작품은 낯선 타국의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해, 마치 눈앞에 그림이 펼쳐지는 듯하다.

타국과 낯선 이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각기 다른 매력으로 표현한 이 책은 두껍지 않고 얇은 편임에도, 네 편의 수록작이 강렬한 인상을 남겨 순식간에 읽히고 만다.

우리가 기대하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만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낯섦과 다름을 여실히 체감하는 순간이 더 많다는 점도 현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수록작들은 이상하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포르투갈에서의 고모의 흔적을 찾고, 자신이 썼던 에세이 속의 상상했던 고모와는 다른 삶이었다는걸 알게 된다.

그날도 그랬다. 그런데 어딘가 달랐다. 작은 방을 둘러보았다. 아무것 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조각처럼 불편했던, 책장에서 비어져 나온 책 같아서 불안했던, 여기가 아닌 것 같아서 외로웠던, 평생을 떨쳐내지 못할 것 같았던 그 기분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해저로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