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송어낚시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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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 <미국의 송어낚시>는 근자에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신랄하고, 발랄한 작품이었다. 미국사회의 부조리한 문제들과 환경오염에 대한 그의 냉철한 시각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자세를 곧추세우게 한다. 그의 문체는 시니컬하고, 간결하다. 그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었던 주제는 과히 무겁고 진중한 것이지만 브라우티건은 이 책을 가볍고, 통통 튀는 언어로 채워 넣었다. 이것이 그의 상상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고, 읽는 이로 하여금 이 책에 대한 호감을 일으키게 만드는 매력을 발산시킨다고 생각한다. 난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비단,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허황된 아메리칸 드림, 환경오염과, 인간성의 상실문제가 1960년대의 미국만의 문제겠는가. 오늘날, 이런 문제들은 조금씩 변형되고 심화되면서 우리 곁에서 뿌리를 더욱 깊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단지, 우리가 그런 문제들에 무뎌졌기 때문에 올바른 인식을 하기가 버거워졌을 뿐. 그런 점에서 작가란, 세상을 올바로 볼 수 있는 예리한 시각과 정서를 겸비한 사람으로서 사회의 선각자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다른 누구보다 이런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선각자라는 말의 권위적인 이미지를 그는 거부할 것 같다.


  이 소설을 옮기고, 해설을 한 김성곤 교수의 수고가 없었다면 끝까지 이 소설을 읽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문체나, 문학적 표현도 뛰어나긴 하지만 작가가 의도했던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나 풍자가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소설 속에 녹아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각주와 해설이 없었다면 이 소설에 대한 이해도는 많이 떨어졌을 것이다. 작가 자신이 직접 아내와 딸과 함께 송어낚시를 떠난 경험을 바탕으로 빚어내서 그런지 소설 속의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생생하고 진솔했다. 무엇보다 목가적인, 우리가 잃어버린 생태주의 적 삶의 소중함을 밑바닥에 깔고 현실의 부조리를 낱낱이 파헤치고 비웃으면서, 느껴지는 통렬함은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화자인 ‘나’는 끊임없이 좌절하면서도 끊임없이 탐색한다. 하나의 장을 시작할 때는 통렬한 비판을 가하고, 허무하다고 심정을 토로하는데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 그는 어느새 또 다른 송어낚시에 도전하고 있다. 상실, 허무, 좌절의 감정들은 이 소설의 음영을 넓게 드리우며 비극적인 현대인의 삶을 깊게 색칠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뼈저린 반성과 현실적인 자각의 장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런 상실과 좌절의 감정이 가장 잘 드러난 장은 <영원의 거리에서의 송어낚시>다. 바로 화자가 어린 시절 한 노파의 집에서 어린 아이치고는 꽤 많은 일들을 해주고, 조금의 보수를 받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노파의 집에서 일을 해주다가 어느 날 우연히 노파의 남동생이 써 놓은 일기장을 보게 된다. 뜻밖에도 그 일기장은 노파의 남동생 알론조 하겐의 송어낚시 일기였다. 알론조 하겐은 참 꾸준히도(마치 우리의 화자 ‘나’처럼) 송어낚시를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7년동안이나 낚시를 갔는데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그가 일기장에 써 놓은 것은 다 그가 놓쳐버린 송어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 부분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우면서도, 송어낚시를 멈출 수 없었던 인간의 끊임없는 목가적 삶에 대한 동경, 본질적인 것으로의 회귀의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송어낚시 일기 마지막에 알론조 하겐은 이렇게 적는다. “이러한 좌절과 당혹스러움에도 나는 믿는다. 놓친 송어의 총계를 생각해볼 때, 그것이 매우 흥미로운 실험이었음을. 그러나 내년에는 다른 어느 누군가가 또 송어낚시를 하러 가야만 할 것이다. 다른 어느 누군가가 그곳으로 가야만 할 것이다.”

이 부분을 읽기 전까지, 난 작가에 대한 질문 하나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왜 그는 비판만 하고 새로운 대안을 내 놓지 않는 거지? 작가라면, 좀 더 우리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나는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이 소설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깨달을 수 없었다. 그는 좌절하지만, 계속 어떤 고행처럼 이어지는 송어낚시 여행은 바로 우리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더라고, 언젠가는 잡힐 수 있는 단 한 마리의 송어를 위해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소설 속엔 극명하게 대립되는 두 존재가 양립한다. 어른 - 아이/ 송어와 하천이 상징하는유연함- 금속과 동상으로 상징되는 경직이 바로 그것이다. 양 날을 세우며 끊임없이 이 두 세계를 관찰하고, 비판하고, 동경하면서 한 장 한 장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내가 잊고 지낸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 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막연하긴 해도 우린 끊임없이 사회와 나, 사회 속에서의 나, 더 큰 테두리 안의 환경과 인간관계 속에서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나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를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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