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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타임
오가와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내가 좋아하는 오가와 요코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어떤 것이든, 처음이란 소중하고, 특별한 것이기에 나는  이 책을 샀다.

읽고 난 느낌은, 참 좋다. 이런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보다 약간 간이 덜된, 날 것의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 날것의 느낌이 완성되지 못한 느낌이 아니라,

이 소설 자체가 가지는 느슨하고, 불분명하고, 그래서 더 아득해지는

맛이 제대로 난다는 느낌이다.

그래... 이게 바로 이 소설의 운명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남동생 고헤이처럼, 그렇게... 묵묵하게 자신의

몸과 운명을 받아들이는 삶처럼, 책도, 소설도, 그것을 쓰는 작가도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그냥 묵묵히 가는...

그런 삶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오가와 요코의 소설에는 유독 초여름, 여름이 많이 등장한다.

이 계절감을 그녀만큼 잘 살리는 소설가도 별로 없을 것이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미나의 행진, 슈거타임까지.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 빨리 여름이 왔음 싶고.

여름의 소중함을 느끼기에 충분해진다.

실제로, 여름을 겪는 일은 곤혹이기는 해도^^

 
슈거타임을 읽으며 특별하게 밑줄을 긋거나 하지 않았다.

한 두 군데 정도 있을까?

그냥 스르륵 넘겨지고, 가슴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지만

특별히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싶지도 않은,

참 묘한 매력을 가진 이야기다.

 
읽으면서, 나도 가오루처럼 나 자신을 위해 요리를 조용조용

만들고 싶었다. 또 가오루와 마유코의 우정도 보기 좋았고,

고헤이의 종교인으로서의 수련과정도 묵직하게 다가왔다.

 
다음에 또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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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와의 대화
구스타프 야누흐 지음, 편영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진지함. 깊은 두 눈. 마른 몸매. 곧은 등. 굳게 다문 입술.

그 남자를 생각하면 언제나 이런 모습이 연상된다.

 

카프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있다.

혹자는 카프카의 작품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나는 카프카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어쩌면 나는 그의 이미지를 통해서 조금,

그의 작품들을 통해서 조금, 조각난 헝겊들을 이어붙이는

퀼트처럼 카프카를 상상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작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는 것일까

그를 좋아한다는 것일까

 

아마도 두 가지가 혼합된 의미일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나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고 싶어한다.

그런 작가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카프카다.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 꽁꽁 숨어버린다.

그리고 그 작품 자체를 숨켜버리고 싶어한다.

그런 딜레마와 치열한 완벽으로의 이상이 그를 더욱

훌륭한 작가로 거듭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카프카와의 대화> 속에는 주요 인물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 명은 카프카, 그리고 그와의 대화를 기록하고 편집한 구스타프 야누흐다.

책을 읽어 나가는 동안, 나는 카프카보다 야누흐 쪽에 많이 서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야누흐처럼 나도 카프카의 여러가지 주제에 대한 심오하고 예리한 견해를

잘 못 알아들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들에는 전혀 군더더기가 없고 오로지 자기 자신의 눈으로

예리한 관찰력으로 세상을 보고자했던 그의 노력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독단과 주관의 불완전함에서 벗어나 한 개인이 가질 수 있었던 가장

깊고, 심오한, 그러면서도 객관적인 이야기였다.

이 책에 그어진 많은 밑줄이 그것을 대변한다.

 

 

욕을 하는 자는 영혼을 모욕하는 자예요. 그것은 은총에 대한 살해 기도죠.

... 왜냐하면 말을 한다는 것은 심사숙고하고 경계를 정한다는 뜻이기 때문이죠.

말은 생과 사를 결정하죠.

 

 

인상에서 인식에 이르는 길은 종종 아주 힘들고 아득히 멀죠.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은 단지 허약한 방랑자에 불과하죠.

 

 

시간은 지속이며, 몰락에 대한 저항이며, 미래의 가능성과 새로운 지속에 대한

희망과 연결되어 있어요. 또한 시간은 모든 현상에 의식적인 존재를 부여하는 변화죠.

 

 

이 책을 읽어나가노라면, 발길에 툭툭 채이는 돌처럼

줍기만 해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이 곳곳에 박혀있다.

하지만, 그 돌들은 카프카라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다듬고 빛낸 것들이 아니다.

카프카 자신 안에서 아직 다 캐내지 못한 원석같이 투박하지만 강인한 빛을 내뿜는 것들이다.

이런 문장들과, 생각들과의 만남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보너스로 산책을 좋아하고 친한 친구들과 깊이있는 우정을 나누고,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하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는 카프카와도 만날 수 있다.

그는 그가 하는 일 - 노동자재해보험공사 근무- 에 대해서 많이 갈등하고, 힘들어했다.

하지만 끝까지 책임있는 태도로, 그리고 생활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것으로

그 일을 묵묵히 해냈다. 작가와 생활인으로서의 거리감은 그를 힘들게도 했지만,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며 작품활동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 책을 다 읽고 생각한다. 나는 카프카에 대해서 무엇을 더 알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선뜻 대답할 수가 없다.

그에 대해 안 것을 이야기하기보다, 그를 조금더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카프카에게 한걸음 가까이 다가선 것이라고 주억거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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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의 밤
라이너 쿤체 지음, 전영애.박세인 옮김 / 열음사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막막하기만 한 시집 리뷰를 쓰는 이유는 입소문을 내지 않으면 온몸이 근질거릴 정도로 좋은 시집과의 만남에 대한 감사의 마음 때문이다.  

  한 손에 딱 잡히는 분량의 이 시집은 외형적으로 완벽한 모습의 시집이다. 고급스런 양장과 녹색의 커버가 '보리수'라는 제목의 자연친화성을 몸소 표현해주고 있다. 얇은 종이 띠지에는 독일 서정시의 거목, 라이너 쿤체가 "한국을 노래하다"라고 선전한다. 사실, 몇 해전에 출판된 쿤체의 <시>라는 시집을 읽어본 독자라면 아마 이 시집을 다시 집어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좋다. 서정시라고는 하지만, 깊이있는 절제가 눈에 띈다. 우리가 그동안 서정시라고 잘못 생각했던 '감정의 과잉'은 어쩌면 우리의 편견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시집은 말 그대로 시인이 깎을 만큼 깎고, 줄일만큼 줄인 시어의 절약이 빛난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완벽을 추구하는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좋은 시, 서정 시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원론적으로 시는 언어의 압축을 통해 궁극적인 삶의 깨달음을 전해주는 이미지적 메시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원론에 가장 적합한 시를 쓰는 사람이 바로 라이너 쿤체이다.

 전작 시보다 한껏 언어를 절약한 그의 시들은 한껏 성숙한 느낌이다.
시의 한 페이지에 글씨보다 여백이 많아졌다. 여유롭고, 한가롭다. 하지만, 그 시에 담긴 참 의미를 하나하나 되새기려면 한가하게, 게으름을 부릴 시간이 없다. 곱씹고 또 곱씹어봐도 그 여백을 다 채우지 못할 이미지의 깊이와 섬세한 숨결을 느낀다.

  언어에 대한 깊은 사랑, 죽음에 대한 성찰과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고독한 모습, 가난한 유년 시절의 기억을 되새기는 노년의 삶 등이 진득하게 묻어있다. 이 시집 속에서 시인의 세상에 대한 관점은 지극히 보편적이고, 객관적이지만 무미건조하거나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시선의 깊이가 과잉의 정서 대신 이미지의 산뜻함과 담백한 관조의 맛을 살린 시들을 잉태하게 했는지 모르겠다.

 
  이 시집의 가장 큰 매력은, 독자가 얼마나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느냐에 따라서 느껴지는 감동의 차이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 시집을 하루만에 다 읽을 수도 있지만, 재독을 하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이 시집은 두고두고, 묵상하듯이 성경의 한 구절을 읽어나가듯이 그렇게 읽어야 참 맛을 알 수 있도록 쓰여졌다. 어쩌면 시집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그런 일이 아닐까.

  각종 실용서적과 처세술, 정보와 지식을 담은 책들을 읽기에도 바쁜 현대인들에게 "시"라는 문학의 본령은 우리에게 잠시 쉬어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쉬어가는 시간은 경쟁에서 밀려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 쉬어감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우리 자신과 조우한다. 그렇게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 자신을 담그고, 삶에 대한 긍정과 여유로 자신을 조율할 수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시 읽기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이 시집과의 만남은 하나의 독서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자신을 복돋워주고, 삶의 의미를 찾게해주는 성찰의 시간이 되리라 믿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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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트라이앵글의 연주같은 그 무엇...

책을 읽고 난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감동'이다.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찡하게 가슴을 울리는 책을 만난 것 같다. 박사, 나, 루트. 이 세명의 어울림은 초등학교 시절 음악 시간에 공중에 치켜들고 치던 트라이앵글같다. 그 트라이앵글을 공중에 떠 있게 하는 얇지만, 견고한 실은 바로 작가이고, 그 트라이앵글을 치는 작은 금속 막대기는 바로 나같다. 소설을 읽는다. 은은하고 징하게 울려오는 감동으로 소박하지만, 기특한 연주회를 여는 느낌이다. 

그 연주의 느낌이 '감동'이라는 단어로 남아있는 것이다. 나에게 감동이란 울타리 뛰어넘기, 혹은 확장하기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느낌을 단 1mm라도 확장시켜 주거나 변화시켰다면, 감동을 느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 같은데 이 책이 주는 감동 중 하나는 '수학'에 대한 생각의 재정립에서 온다. 수학은 고리타분하고, 학생 시절 나를 좌절하게 했던 학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원리와 법칙 속에서 삶에 대한 은유로 빛나는, 살아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도중 문득문득 수학책을 펴 놓고, 단순한 계산 문제라도 풀어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났다.

박사는 수학 속에서 살았다. 그는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했고, 매일매일 감동하는 삶을 살았다. 누군가에겐 고리타분한 것으로, 무관심의 대상으로 간주되는 것이 누군가에겐 꿈이되고, 삶의 이유가 된다면... 이 세상에 어떤 것도 무시받거나,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고 소설은 말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학문,예술, 사람 하나하나를 존중하고 싶은 마음, 나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해서 다른 이에게도 불필요한 것은 아니며 개개인의 가치를 최대한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을 박사와 루트의 엄마, 루트를 통해 배웠다. 박사는 수학을 사랑하고, 루트의 엄마는 파출부라는 직업을 사랑한다. 그리고, 루트는 자신이 사랑할 가치와 꿈들을 배워가는 중이다. 그들에게 삶은 소소한 일상으로 채워져 있는데, 먼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소중히,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아름답고, 좋은 것이다.

 

타인을 부르는 쿨한 방식

이 책의 화자이자, 파출부인 '나'는 '박사'를 '박사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처음엔 나이가 든 노인이자 박사인 그를 박사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자 이것은 호칭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나'와 '박사'와의 심리상태를 보이지 않는 실로 천천히 꿰매어 가듯이 천천히 둘의 관계가 돈독하게 이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과 화자인 '나'의 심리 묘사로 자연스럽게... 이것이 진정한 의미로써의 소설의 미덕이 아닐까 생각했다.

박사는 단 80분 밖에 지속되지 않는 기억 속에서 살고 있는데다 늙어버린 슬픈 존재지만, 그는 나약하지 않다. 순수와 진실에 대한 그의 집념은 어린 아이들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수학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로 승화된다. 노인인 만큼 삶의 지혜가 온 몸에 깃들어 있는 그의 매력으로 나 역시 순수해진 느낌이다. 이미지가 난무하고, 혼갖 외부적인 충격이 가해지는 폭력적인 시대에 박사와 같이 고즈넉한 존재가 살고 있다는 것은 기적이다. 텔레비전도 없고, 라디오도 고장 났으며 외출은 거의 하지 않는 그를 불행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도 때론, 밖의 세상에 휘둘리기보다는 자신이 진정으로 헌신할 수 있는 순수한 이념을 찾아 매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에 앞서, 박사처럼 순수한 열정을 품을 수 있는 그 무엇을 찾기 위한 기준은 무엇인가? 박사는 친절하게도 해답을 준다. 그것은 바로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순수하고 좋은 것이다. 박사는 '수식'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눈을 가졌다. 그 '눈'은 점점  루트 엄마와 루트에게로 전이된다. 그들은 '수학'과 '야구'라는 접점으로 모아지고, 그들의 마음 또한 하나로 뭉쳐진다. 그 과정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것이기에... 입이 벌어지도록 이 소설이 마음에 든다.

 

당신이 때때로 외롭고 우울할 때

때때로 사는 것이 힘들고, 우울하게 느껴질 때마다. 또 나란 존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운 마음이 생길 때마다. 이 책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큰 소리로 읽어보자. 난 이미 몇 번 그렇게 해 보았는데 신기하게도 입가에 고양이같은 미소가 번지며 아랫배에 힘이 생긴다. 자그마한 문자들이 내 안에 조용히 흘러들어와 '아름다움'의 관계들을 펼쳐보이기 때문이리라. 이젠, 나도 완전수 28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220과 284처럼 나도 우애수 같은 연인이나 친구를 만나고 싶다. 무엇보다 박사처럼 사람 냄새 뚝뚝 나는 스승을 만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의 벤치 한 구석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이 소설을 읽는 여름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지금 내 가슴은 터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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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어빈 얄롬 지음, 임옥희 옮김 / 리더스북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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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는 언제일까? 제목은 매우 서정적인데 막상 책을 읽어보면 서정적인 것하고는 거리가 먼 주인공 니체와 보다 인간적인 의사 브로이어가 나온다. 이 소설은 니체와 브로이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제목에서도 보듯이 주인공은 니체이다. 하지만, 니체라는 한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알고 싶어 하고, 그 사람의 고통을 치유하고자 노력하는 브로이어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아마 이 이야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브로이어는 처음엔 니체의 주치의로써 그의 심신의 고통을 의사로써 치료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만, 나중에는 니체와 영혼을 나누는 우정을 키워나가는 인물로 니체의 고통과 자신의 고통 둘 다를 치료해 나가는 막중한 일을 해내는 인물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고통의 치유과정은 브로이어 혼자만의 산물이 아니라 오직 한 인간의 고통을 들여다보고 감싸 안으려 했던 인간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니체와 브로이어의 진정한 합작품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브로이어 박사는 루 살로메란 여성으로부터 니체라는 흥미로운 환자 한명을 소개받게 된다. 사실, 브로이어는 니체보다 루 살로메란 여성의 매력에 이끌려 니체를 돌보겠다는 선택을 반강제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브로이어는 자신이 치료했던 베르타라는 여성에게 심한 욕정을 느끼고 그녀와 헤어진 지금도 그녀의 망상에 사로잡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상황이다. 니체 역시, 살로메와의 사랑이 비극적으로 끝나 사랑과 타인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며 고통에 빠진다. 게다가 갑작스레 닥쳐오는 편두통은 그를 사경 속에 헤매게 만든다.

이 소설의 구성은 주로 이 두 남자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고도의 심리전을 벌이는 두 사람간의 관계는 팽팽한 씨줄과 날줄처럼 서로 얽혀들어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브로이어가 평범하고 익숙한 우리들의 자화상으로 친숙한 반면에 니체는 초인의 면모를 드러낸다. 그는 철학자로서의 철저한 프로의식과 심하다 싶을 정도의 결벽과 고도의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이다. 그런 두 사람의 차이와 어떻게 보면 실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꿈꾸는 한 나약한 인간으로서의 공통점이 소설 속에 가감 없이 스며들었다.

처음에 브로이어는 끊임없이 니체의 꽁무니를 쫓아다닌다. 니체로 하여금 루 살로메와의 불화와 실연의 아픔을 성토하게 만들고 싶은 가학적인, 그러나 솔직한 욕망이 그를 사로잡는다. 사실 그런 감정은 브로이어만의 것은 아니다. 소설을 읽는 독자도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니체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기 안에 고통과 괴로움을 숨기고, 의연한 제스처를 취한다. 그러자, 브로이어는 전략을 바꿔 자신의 고통을 먼저 이야기하고 자신을 정신적으로 치료해 달라고 요청하며, 자신은 니체의 육체적 고통 - 편두통으로 인한- 을 치료하는 것은 어떠냐며 제안을 한다. 니체가 이 제안을 수락하면서 본격적으로 둘의 관계가 앞으로 나아간다. 브로이어는 솔직하게 베르타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니체는 그 이야기를 듣고, 여러 가지 철학적 조언을 해 준다. 그런 심도 깊은 대화가 이어질수록, 니체는 사람에 대해서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간다. 어쩌면 브로이어의 고통을 통해 자신의 실연과 욕망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웠다고나 할까? 마지막으로 니체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아픔을 브로이어에게 말한다. 이때 우리는 한 인간이 자신의 고통을 자연스럽게 끌어안는 감동적인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어빈 얄롬이란 저명한 정신과 의사가 쓴 팩션인 이 소설은, 백 퍼센트 허구인 다른 소설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우선, 니체라는 인물이 주는 믿음과 호기심은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 브로이어 역시 실존 인물로 생전에 프로이트와 매우 깊은 교분을 나눈 스승이었다고 하니 더욱 호기심이 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실존 인물과 진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진 팩션이란 장르에 충실한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인간 내면의 상처와 아픔, 그것을 치유해 나가는 동안에 생겨나는 인간애와 우정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지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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