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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시대의 종말
비비언 고닉 지음, 홍한별 옮김 / 엘리 / 2026년 7월
평점 :
고닉이 여기저기 실었던 원고뭉치를 들이밀며 책 한 권 될까 하니 편집자 데브 체스먼이 다 버려 이것만 살려, 제목은 '연애소설의 종말', 표제작은 새로 써, 한 게 97년 이 책 초판이다.
본인 인생, 결혼, 연애가 기준점인 분이라, 아내와 엄마로 사는 주인공에겐 두려움과 적의를 높이고, 결혼의 환멸을 다루면 감탄하고, 여자에게 위로를 구하면 유약한 놈이다. 홀로 굳세게 인생을 개척하는 현명한 미국여성에겐 본인 인생이 정답임을 확신한다. 이젠 낭만적 사랑의 위력은 안 통해, 요즘 연애소설은 다 가짜야, 19-20세기 위대한 소설만 읽고 또 읽어야지. 그게 내 끝나지 않을 일이지. 고닉 식으로 거칠게 자르고 붙이면 이런 내용이다.
책으로 묶을 순 있지만 제목에는 밀린다. 감정이 실린 높은 목소리가 매체만 바꿔 반복된 원고라 이 얇은 책이 살짝 피로하다. 그간 읽은 고닉 책의 피로 누적일 수도. 이때 고닉은 아직 팔팔했다. 말년의 화양연화는 오기 전이라 강퍅하기도 하다. 이에 비해 근년 출간된 『끝나지 않은 일』은 상대적으로 차분한 톤이다.
담당 편집자가 자리를 옮겨 지면을 주고 묶어낸 십여 년 뒤 The Men in My Life 가 번역되면 이 책과 짝이 되려나. 주인공이 나쁜 놈이면 작가도 나쁜 놈이라 몰아붙이겠지만 그래도 고닉은 글 잘 쓰는 나쁜 놈은 오케이, 싫어하지 않을 거다.
고작 몇백 년짜리 낭만적 사랑이 사라진대도 남녀는 서로 다정함과 위안과 연결을 갈구할 테고 소설은 그 마음을 붙잡아 담아낼 거다. 60대까지 연애는 놔본 적 없다는 고닉 말처럼 “사랑이 우리를 다정하고 현명하고 너그럽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아무렴, 애초에 로맨스가 이런 것들과 무슨 상관인가. 하지만 다정하고 현명하고 너그러운 여자와 남자가 되어야 그 사랑이 계속될 거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