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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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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백한 얼굴로 뚫어져라 책을 내려다보는 주인공과 순간의 본능과 느낌에 충실한 한 마리의 동물인 조르바. 매사 결정을 내리기 전 저울에 눈금을 다는 주인공과 동물에게는 자유가 필요하니 자신은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기 위해 절대적으로 자유가 주어져야한다는 조르바.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물론 거인의 어깨 덕분이다. 그분의 영향이 아니었으면 나는 조르바를 끝까지 읽지 않았을 거다. 지적 허영이 많은 나는 언젠가 그분이 이 책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듣게 됐다. 그리고 <영혼의 자서전>이란 책에 대해 또 듣게 돼 카잔차키스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됐다.


  전에도 한 번 언급했지만 이 책은 내게 그렇게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현실에서 조르바와 같은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는 이를 봤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조르바를 만난 나는 그래서 시큰둥했다.


  그랬던 조르바였는데 저자는 내 안에 질문을 계속 던지게 만들었다. 성과 속을 탐닉해 본 작가 이력을 봤을 때 카잔차키스는 예사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의 수작이면 내가 놓친 어떠한 것이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이건 빗나간 이야기지만 때론 쓸모없는 게 중요할 수 있다. 내가 예전에 누누이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데 그때 강조한 게 딱하고 바로 알 수 있는 ‘감’과 ‘용기’에 관한 거다. 물론 나도 이건 어느 책을 보고 알게 된 거다. 카잔차키스는 이 책에 이 둘을 넣어 뒀다. 조르바로 대변되는 본능대로 사는 동물의 삶을 통해 그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붓다와 베르그송 그리고 니체에 깊이 몰입한 적이 있다. 이들은 모두 해체와 창조를 이야기한 인물들이다. 그는 붓다를 통해 삶 너머의 의미를 추구했다면, 베르그송과 니체를 통해서는 삶에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을 것을 통찰했다.


  조르바를 내가 제대로 읽었다면 이 글은 불필요했을 거다. 그는 머리를 굴리며 정답을 찾아가는 사람이기보다는 몸으로 부딪히며 배짱 좋게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직도 나는 창백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건 바로 ‘용기’가 부족해서일 거다. 그래서 여전히 저울에 사건을 올려 그 무게를 잰다. 그리고 ‘감’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직관적인 편이라 감이 좋지만 겁을 먹고 있어 그걸 쓰지 못한다.


  현대 인문학이 중요시 여기는 이 두 가지 점을 카잔차키스는 1946년에 소설로 발표했다. 삶에 일관된 사람은 시대를 넘어 보편적인 사유를 한다. 그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한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조르바를 만나며 내 안에 샘솟던 느낌도 자유였다. 그는 현실의 짐에 옭아 매인 독자들을 풀어 해체해 주었다. 이게 속세에서의 그의 역할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면 나의 모습으로 돌아와 보자. 내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생각할 때 가슴 떨리는 순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홀가분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역시 다시 정리해 보면 자유와 다르지 않다.


  마지막으로 팁 하나 남기면, 이 책은 삶이 편안하게 흘러갈 때 그러니까 살아가는 게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다르지 않을 때 읽으면 더욱 좋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상을 삶의 파도가 휩쓰는 걸 방어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럴 때 조르바를 만난다면, 예측하지 못했던 모험 속으로 우리를 이끌고 들어갈 거다. 이 불안정성, 그게 삶이라고 카잔차키스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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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존 브래드쇼 지음, 오제은 옮김 / 학지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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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편은 쓸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책 말미를 읽다가 인상적인 부분이 눈에 띄어 한 편 더 쓰기로 한다. 그리고 어제 쓴 1편이 좀 내용적으로 부족하기도 했다.


  저자의 이야기로 오늘 글도 시작된다. 어려서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알코올 중독이었던 게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 어려서는 알코올 중독 가정이란 걸 숨기기 위해 그는 온순하고, 성취지향적인 아이로 성장했다. 그런데 문제는 사춘기 들어 그도 술에 많이 의지하고,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과 거친 행동을 시작했다는 거다.


  개인적으로 위 부분을 읽다가 꽂히고 말았다. 나의 삶과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거친 행동’ 부분이 크게 눈에 띄었다. 그건 그렇고 저자 이야기로 더 들어가 보자.


  그는 청소년기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그 해결책을 찾다가 신학생이 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신학생이 되고도 그의 영혼은 만족할 줄 몰랐다. 그칠 줄 모르고 지식을 탐하게 되고, 후에는 니체에 빠지게 된다. 니체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그는 결국 짐을 지고 괴롭게 사는 낙타의 삶을 벗어나, 울부짖는 사자로 변용되었다. ‘나는 기존 세력의 반생명력에 반항했다. 처음에는 지적인 반항이었지만, 나의 알코올 중독이 행동으로 표출시키도록 도와주었다.’


  역시 위의 인용 부분을 읽다가 강한 전율을 느꼈다. 왜냐하면 나의 경험과도 너무나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도 청춘의 시기를 고된 짐을 지고 사는 낙타의 삶을 살았다. 그 후 ‘기존 세력’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나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 안의 놀라운 아이’가 소동을 일으켰다. 그 결과 나는 소외되고, 이해할 수 없는 녀석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그렇게 기존 세력이 거의 승리했다. ‘신화 속의 추방당한 아이처럼’ 그렇게 나는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내 안에 분노를 삭이며 떠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마음속에서 세상을 혁명하고자 하는 것밖에 없었다. 결국 그 끝에 길에서 나는 주변에 있는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역기능적인 가정,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와 상호의존 중독자인 어머니, 그리고 가난, 이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 모두가 내가 현재의 일을 하기 위해서 겪어야 했던 경험들이었다.’ 저자는 과거의 고통 속에서 지혜를 얻어낼 수 있을 만큼 현명했다. 어려서의 경험을 통해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이 책을 썼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도 저자와 다르지 않다. 청춘의 시기에 뭐가 뭔지 몰라 꽤 오랜 시간동안 혼란한 삶을 살았다. 그 끝에 발견하게 된 건, 나의 지난 삶에 대한 이해였다. 아이답게 성장하지 못하고, 외롭고 상처 많은 환경에서 성장한 나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돕기로 마음먹었다. 부족한 나를 성장시킬 수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성장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길은 이제 다 막힌 기분이다. 이 길에 뼈를 묻어야겠다는 결심을 요즘 하고 있다.


  이야기가 잠깐 딴 데로 샜는데 다시 돌아오면, 나는 ‘기존 세력’과 대척점에 서는 부분에 흥분했다. 나의 경우를 봐도 그렇고, 자신의 익숙한 패턴을 깨고 나오는 사람들은 기존 세력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길 우리 안에는 ‘놀라운 아이’가 존재한다는 거다. 이 책을 숙고하며 저자의 지시 사항을 잘 따라온 독자들, 그러니까 내면아이가 치유된 사람들은 이제 어린이답게 행동할 수 있다는 거다. 어린아이 같다는 건 ‘자발적이고, 이 순간을 살아가며, 집중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창조적이고, 놀고, 즐거워하며, 경이로움을 경험하고, 신뢰하고, 슬퍼하며, 사랑하고, 놀라고, 희망한다.’라는 뜻이다.


  준비가 된 사람들은 이제 자신 안의 생명력이 분출하듯이 쏟아진다. 그때부터는 세상의 가치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직관을 믿게 된다. 제임스 조이스가 이렇게 말했다. “환영하노라. 인생이여! 나는 경험의 실재와 백만 번째 해후하러 가노라. 나의 여정에서 창조되지 못한 의식들을 내 영혼의 대장간에 버리러 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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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존 브래드쇼 지음, 오제은 옮김 / 학지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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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그대로 책 이름이다. 이 책은 선생님과 상담을 하며 요즘 주고받은 내용에 영감을 받아 찾아서 읽게 됐다. 요즘의 난 내가 상처를 깊이 받기 전의 상태로 회복된 느낌이 든다. 그때가 2008년이니 벌써 횟수로 9년째다. 한 번 독하게 미쳐보자고 마음먹고 경험해 보기로 한 게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에게 통용되지 않겠다. 이제 통용되는 말로 살펴보자.


  그러니까 그게 어머니가 집에서 외롭게 지내는 아들이 사는 집에 함께 살자고 올라오셨다. 안 그래도 집이 좁은데 함께 살기에는 좀 그랬다. 이에 아들은 강한 분노를 느꼈다. 한 번도 살아오면서 어머니에게 이러한 분노를 느낀 적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들은 이 시기가 외롭게 지내던 생활을 청산하고 사회로 나가려고 용기를 낸 시점이라 마음 상태가 복잡했는데, 삶이 더 꼬이게 됐다. 그러면서 그에게는 정신적 퇴행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예전에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 대충 위 내용으로 정리된다. 아무튼, 이제 시간이 다 되었는지 나의 상태가 많이 호전된 느낌이다. 내 정신 상태가 위에서 말한 2008년 사건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온 것 같다. 그러니까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사람에게 정신적으로 큰 스트레스가 가해져 외상 경험을 입게 되면 그게 회복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정도로 더디다. 외상 경험이 클수록 아마 더 그럴 거다. 대충 여기까지 쓰고 이 글에서는 위 책에 대해서 말하기로 정했으니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책은 글쓴이가 중요하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책을 쓸 자격이 있었다. 저자 자신이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마음속에 지니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의 삶을 보면 고통으로 점철돼 있었다. 어려서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에다 그가 어렸을 때 집을 나가 버렸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의 ‘작은 남편’ 역할을 해야 했다. 또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성취지향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고, 사회에서는 ‘스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어린이는 어린이로서 호기심 많고, 자기 고집도 부리며 그렇게 자라야 하는데 그는 말 잘 듣고, 착한 아이로 성장하게 된다. 언 듯 보기에는 후자로 자라면 더 좋아 보이지만, 실제 속사정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책에서 중요시 여기는 개념이 역기능 가정이다. 이 가정에서는 부모가 부모로서 역할을 못한다. 그들의 내면이 어린이 상태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들을 성인아이라 부른다. 그들이 역할을 못하기에 자녀들이 부모 역할을 대신 맡게 된다. 여기서 역기능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비극이 시작된다. 저자도 이런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천진난만한 아이 시절을 보내지 못하고 일찍 어른이 되어버렸다. 정상적인 발달단계를 밟지 못한 대가는 크다. 그는 청소년기부터 알코올 중독 상태에 빠져버렸고, 자신과 가정환경이 비슷한 학생들과 어울려 일탈 행동을 했고, 무엇이든 만족할 줄을 모르게 됐다. 역기능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이런 정신적 문제를 누구나 지닐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을 보자. 그들은 갓난아기 때 태어났다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기쁨을 받는다. 유아기에는 마음이 건강한 어머니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보호를 받는다. 유치원에 들어갈 때에는 어린 시절에 발달 과정이 좋아,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래들과 즐겁게 놀 수 있다. 이후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도 연장선상으로 교우 관계를 잘 맺고,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성장했기에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는다. 청소년과 성인 초기에 들어서도 독립적으로 자기 삶을 추구할 수 있고, 남들과 달리 공허감을 덜 느낀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역기능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세상을 두려워하고,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공허감에 많이 빠진다. 이 책을 읽으며 좋은 기운을 많이 받고, 내면아이가 치유되는 느낌도 가지게 됐다. 나와 같은 마음 상태에 놓인 사람들이라면 한 번 읽어봐도 좋을 책 같다. 오랜만에 마음치유를 다룬 책 중에 속 시원하고, 간절하게 읽은 책이다. 책에서 안내하는 대로 직접 연필을 들고 편지도 쓰고, 마음속에 갇힌 과거를 탐색하다보면 어제보다 마음이 한 뼘 더 자라있는 걸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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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적 사례이해
Nancy McWilliams 지음, 권석만 외 옮김 / 학지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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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정신분석적 심리치료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유는 대학원에서 정신분석 과목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전공서로 채택된 책이 너무 좋다. 저자도 훌륭하고 내용도 아주 알차다. 그래서 오늘은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의 일부인 ‘정신분석적 치료자들이 지향하는 치료 목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치료 목표에는 정신 병리적 증상의 제거나 완화, 자기이해나 통찰의 증진, 감정의 자각 및 조절 능력의 향상, 자아강도 및 자기통합성의 향상, 사랑하고 일하며 타인에게 적절하게 의존할 수 있는 능력의 확장, 즐겁고 평온한 경험의 증진 그리고 육체적 건강을 증진하고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강화한다.


  먼저 정체성에 대해 알아보자. 금세기 초반의 프로이트 시대만 해도 사람들이 정체성 문제로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의 내담자들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식적인 인식조차도 결여된 채로 치료 장면을 찾곤’ 한다.


  다음으로 자존감이다. 내담자의 자존감을 적당히 안정적이고 일반적인 수준까지 향상시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의 핵심 신념을 바꾸는 데 매우 저항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자신의 내재된 마음을 바꿀 경우, 우리는 외부의 영향에 취약한 상태가 된다. 그리고 내담자의 자존감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그것은 치료자가 기꺼이 자신도 결함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내 보일 때다.


  또한 ‘훌륭한 심리치료의 주된 불특정적 산물은 자아강도와 자기통합성의 향상’이다. 그리고 프로이트가 칼 융에서 보낸 어느 편지에서 ‘사람들이 심리치료자를 찾는 이유가 보다 잘 사랑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심리치료가 제대로 진행될 때, 내담자는 자기 자신의 복잡한 내면세계 및 실제 자기뿐만 아니라 타인의 복잡성과 단점들까지도 수용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성공적인 심리치료는 그 유명한 일하고 사랑하는 능력을 키워주고,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는 능력도 높여준다. ‘치료에서 일어나는 애도과정, 즉 ‘집요한 특권의식’에서 벗어나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성숙하게 수용하게 되는 변화과정’은 내담자의 성장과정을 잘 보여준다.


  다른 점으로는 ‘‘현실원리’, 즉 만족지연 및 사회화를 강조함으로써, 보다 큰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자존감을 포기하고 보다 풍부하고 오래 지속되는 즐거움을 위해 즉각적인 만족을 지연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치료 후반부에 내담자는 기분의 고양과 즐거움은 예전에 이미 경험했던 바이지만, 치료 동안 조용하게 펼쳐진 전반적인 마음의 평화는 상상조차 해 보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몇 주 전에 치료가 잘 될 때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은 치료가 잘 되었을 때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펼쳤다. 이번 칼럼은 내 생각은 극히 적은 편이고, 책 속 저자의 생각을 많이 인용했다. 그 자체로 치료 효과로써 훌륭한 내용이고, 완성도도 높다고 생각된다. 이 책의 제목은 <정신분석적 사례이해>이고, 상담가가 막 되어 내담자를 맞이하게 되는 초보 치료자에게 아주 유효한 지침을 제공하는 내용이다.


  위 책도 훌륭하지만, 같은 저자의 <정신분석적 심리치료>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프로이트 이론이 현대에 비판받고 있지만,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화 된 정신분석 이론을 잘 정리해 독자에게 전해 준다. 정신분석과 심리치료에 관심이 많은 분에게는, 얻을 것이 많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이 저자의 책이 좋은 이유는, 이론에 대한 흡수력이 좋고 표현하는 것에 강점을 지녀 또한 자신이 스스로 그러한 점을 직시하고 있어, 매우 체계적이고 알찬 글쓰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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