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창비세계문학 7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강은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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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특별할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평범한 생활 어디에나 죽음이 있다.
병으로든, 사고로든, 나이가 많든, 적든
우리는 수많은 죽음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 보이지 않는 죽음을 상대로
술래잡기 하듯 조바심 내며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같은 짓인지.....

150년 전, 톨스토이 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 없는 삶과,
죽음을 대하는 주변인들의 태도가
마치 시간의 중력을 거스르며 이어지는 듯 하여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카르페 디엠 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오늘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 처럼 열정을 다하리라...

▶️ 이반 일리치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그런 심각한 일이 그의 몸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걸 아는 사람은 오직 그 자신뿐이었고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세상사가 전과 다름없이 그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점이 무엇보다 이반 일리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집안 식구들, 특히 당시 사교계에서 한창 절정을 구가하고 있던 아내와 딸은 그의 고통을 알아주기는 커녕 왜 그렇게 음울하고 까다롭게 구는지 화내며 그를 탓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그런 눈치를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기는 했지만 그는 자신이 이미 그들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p.59-

▶️ 더욱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죽음이란 놈이 다른 어떤 일도 하지 못하도록 자꾸만 그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저 죽음만을 바라보도록, 피하지 않고 똑바로 죽음을 응시하도록, 모든 일을 손에서 내려놓고 그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만 했다. -p.74-

▶️ 석달째로 접어들면서 이반 일리치의 병세는 아주 조금씩 서서히 악화되었기 때문에 어떻다고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 언제 그가 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세상을 떠날 것인지, 그리고 언제 환자를 지켜보는 이 불편하고 갑갑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뿐이었다. 아내와 딸과 아들, 친지들과 하인들, 의사들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반 일리치 자신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p.77-

▶️ 거짓말, 죽기 직전까지도 멈추지 않을 이런 거짓말, 이 무섭고 장엄한 죽음의 의식을 인사차 들렀다든지, 커튼이 어떻다든지, 오찬 자리의 철갑상어 요리가 어떻다는 따위의 일상의 사소한 것들과 같은 수준으로 격하하는 이런 거짓말, 바로 이런 거짓말이 이반 일리치는 소름이 끼치도록 싫었다. 그는 사람들이 그런 거짓말을 늘어놓을 때마다 `이제 그만 거짓말은 집어치워. 내가 죽어간다는 건 당신들이나 나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 그러니까 제발 이제 최소한 거짓말을 하지 말란 말이야`라는 절규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이상하게도 그걸 내뱉지는 않았다. 그가 보기에 주변사람들은 모두 이 무섭고 끔찍한 죽음의 의식을 그저 있을 수 있는 기분 나쁜 일, 특히 조금 품위가 없는 (온 몸에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응접실에 들어온 것 같은) 일 정도로 격하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가 평생 지키려고 애써온 `품위`라는 것이었다. -p.82~83-

▶️ 거짓말 외에, 아니 그런 거짓말 때문에 사람들이 이반 일리치가 바라는 만큼 그를 위해 마음 아파하고 안타까워하지 않는다는 점이 무엇보다
괴로웠다. 오랜 기간 병마에 시달리던 중 어떤 때에는, 사실대로 고백하기 좀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이반 일리치는 누군가 자신을 아픈 어린아이 대하듯이 그렇게 가엾게 여기며 보살펴주기를 가장 간절히 소원했다. 어린애를 어루만지고 달래듯이 다정하게 쓰다듬어주고 입을 맞추고 자기를 위해 울어주기를 그는 바랐다. .....(중략) 이반 일리치는 소리내어 울고 싶었고 그런 자신을 누군가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같이 울어주기를 바랐다. ....(중략) 그 주변의, 그리고 그 자신의 이런 거짓말이 이반 일리치의 마지막 생의 순간들을 해치는 가장 무서운 독이었다. -p.84~85-

▶️ 그래, 결국 이렇게 됐지. 죽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런데 왜? 왜 이렇게 된 것이지? 그럴 리가 없다. 삶이 이렇게 무의미하고 역겨운 것일 수는 없는 것이다. 삶이 그렇게 무의미하고 역겨운 것이라면 왜 이렇게 죽어야 하고 죽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해야 한단 말이냐? 아니다, 뭔가 그게 아니다.
`어쩌면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찾아들었다.
`난 정해진 대로 그대로 다 했는데 어떻게 잘못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삶과 죽음이라는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질문을 털어내며 그런 일은 전혀 있을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이제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사는 것? 어떻게 사는 것을 원하는 것이냐? 법정에서 `재판이 시작되겠습니다`하고 외치는 법관으로서 삶이 네가 원하는 것이냐?`
`재판이 시작된다, 재판이 시작된다.`
그는 이를 악물며 되뇌었다.
`그래, 드디어 재판이 시작된다. 하지만 난 죄가 없어!`
그는 악에 받쳐 소리쳤다.
"도대체 왜?"
잠시 후 그는 울음을 멈추고 벽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왜, 무엇때문에 이 끔찍한 일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그는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자신이 제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찾아들었지만 그는 즉시 자신의 삶은 올바르고 정당했다고 강변하며 그 이상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털어내버렸다. -p.103~104-

▶️ `이 얼마나 간단하고 훌륭한 일인가!`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통증은? 통증은 어디로 갔지? 어이, 통증, 너 어디 있는거야?`
그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아, 여기 있었군. 그래, 뭐 어때, 거기 있으라고.`
`그런데 죽음은? 죽음은 어디 있지?`
그는 오랫동안 곁에서 떠나지 않던 죽음의 공포를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죽음은 어디에 있지? 죽음이 뭐야? 죽음이란 것은 없었기 때문에 이제 공포도 있을 수 없었다.
죽음 대신 빛이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갑자기 그는 소리쳤다.
"아, 이렇게 기쁠 수가!"
이 모든 것은 한순간의 일이었고 이 한순간의 의미는 이제 흔들리지 않았다.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그가 그러고도 두 시간이나 더 괴로워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의 가슴에서 뭔가 부글부글 거렸다.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그의 몸에 경련이 찾아왔다. 부글거리는 소리와 숨이 차서 쉭쉭거리는 소리는 점차 잦아들었다.
"임종하셨습니다!"
누군가 그를 굽어보며 말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마음속에 되뇌었다.
`끝난 건 죽음이야. 이제 더이상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그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다가 그대로 멈추고 온 몸을 쭉 뻗고 숨을 거두었다. -p.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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