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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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김태성 역(문학동네)] 16


가끔
중국이 '공산국가'임을 잊을 때가 많다.
세계 어느 자본주의 국가 보다 더 자본주의의 모습을 하고 있는 중국을 보며, 내가 공산주의를 모르는겐가? 싶기도 하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위화가 들려주는
중국의 이야기.....
소위 "문학"으로 예술하는 사람들이 차마 예술로도 승화시키지 못한 진짜 중국의 이야기를
위화는 변검의 마지막 가면마저 벗어버리 듯 낱낱이 풀어놓는다.
중국 역사에 문외한인 나로서는(물론 우리 역사, 세계 역사 역시 문외한이긴 마찬가지지만...^^;;;) 그들의 격동기를 이야기 한 이 책이 왜 중국 본토에서는 금서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30여년 전 까지의 우리 정부도 5.18을 "사태"로 명명하고 쉬쉬했고, 노랫말에 무덤이 나온다 하여 금지 시킨 걸 보면
그 역사가 감추고픈 잘못이란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위화도 그렇고, 박완서도 그렇고,
폭풍같은 역사의 한가운데를 지나친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겪은 역사의 한 부분을 잊지 않고
글로 생생히 그려내었다는 것....
어찌보면 감추고도 싶을 그들의 선택과 경험을
증언하듯, 고해성사하듯 담담하지만 또박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역시,
글의 힘이란......... 
 
 

 


`5월 35일`식 자유는 일종의 예술이다. 인터넷에서 자유를 추구하며 독립적인 사상을 표현할 때 정부의 심사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언어의 수사작용을 충분히 활용하여 암시와 비유, 풍자와 조소, 과장과 연상등을 극대화하여 발휘한다. -p.12-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일생에서 수많은 단어를 만나지만 어떤 단어들은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데 비해 어떤 단어는 평생을 함께 지내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게는 `인민`이 바로 이처럼 어려운 문제였다. `인민`은 내가 가장 먼저 인식하고 가장 먼저 쓴 단어였지만 살아가면서 연이어 망각하고 배신했던 단어다. -p.37-

모든 책들이 수천 개의 손을 거쳐서인지 내 손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심하게 낡은 상태였다. 앞부분의 10여쪽 정도가 찢겨 나간 책도 있었다. 나는 책 제목도 몰랐고 작가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다.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도 몰랐고 어떻게 끝나는지도 몰랐다.
이야기의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모르는 것은 정말로 고통스러웠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뜨겁게 달궈진 솥 위의 개미떼가 이리저리 구멍을 찾는 것처럼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이 이야기에 이어지는 결말을 알아내려 애썼다. 이야기의 결말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읽은 소설들도 똑같이 시작과 끝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나보다 몇 페이지 더 읽은 사람들이 내게 그 몇 페이지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긴 했지만 여전히 이야기의 결말은 알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당시의 책 읽기 상황이었다. 우리는 이처럼 끊임없는 책의 파손 속에서 독서를 해나가야 했다. -p.80~81-

결말이 없는 이야기들은 나를 훈련시켰다.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못했다. 마침내 나는 스스로 이야기의 결말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인터내셔널가>에는 "애당초 구세주는 없고 신선이나 황제에게 의지할 수도 없다. 인류의 행복을 창조하는 것은 완전히 자기 자신의 몫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노랫말처럼 매일 밤 전등을 끄고 잠자리에 들면 나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부지런히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이야기의 결말을 지어내고 이렇게 내가 지어낸 이야기에 감동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곤 했다.
처음부터 나의 상상력이 훈련되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시작도 끝도 없는 소설에 감사해야 했다. 비로 이 소설들이 처음으로 나의 창작 열정에 불을 붙여주었고, 내가 여러 해가 지나 작가가 될 수 있게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p.81~82-

이전에 쓴 글 말미에서 나는 나의 독서 이력을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나는 매번 위대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 작품을 따라 어디론가 갔따. 겁 많은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그 작품의 옷깃을 붙잡고 그 발걸음을 흉내 내면서 시간의 긴 강물 속을 천천히 걸어갔다. 아주 따스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여정이었다. 위대한 작품들은 나를 어느 정도 이끌어준 다음, 나로 하여금 혼자 걸어가게 했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그 작품들이 이미 영원히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104-

인생은 종종 이렇다. 때로는 단점에서 출발한 것이 갈수록 장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장점에서 출발한 것이 갈수록 단점이 되기도 한다. 마오쩌뚱의 말을 빌리자면 "좋은 일이 변해 나쁜 일이 되고, 나쁜 일이 변해 좋은 일이 된다"라고 할 수 있다. -p.136-

홀유라는 단어는 빠른 속도로 전국을 풍미하면서 산채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중국 사회의 윤리 및 도덕성 결핍과 가치관의 혼란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는 중국 사회가 최근 30년 동안 지속해온 단편적 발전의 후유증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홀유 현상이 사회의 각 분야에 광범위하게 퍼진 정도는 산채 현상을 크게 능가한다. 이처럼 홀유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진지하지 못한 사회, 또는 원칙이 중시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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