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살고 싶다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를 아는 이가 한 명도 없는 곳에 가서 살고프다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만큼 내가 나로 사는 게 숨막히도록 싫었던 적이 있었다. 

벤도 그랬으리라. 
자기의 꿈과는 정 반대의 길로 흘러가는 그의 삶,
하지만 안정이 보장되었기에 쉽게 놓을 수는 없는....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
그 역시 꿈을 위해 
보장된 경제력을 버릴 만큼의 용기는 갖고있지 않았다. 

의도치 않은 살인으로 
그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고,
그를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새출발을 하고,
드디어 그가 꿈꾸던 일을 하게 되지만
그것이 온전한 행복일 수 없는 이유는
'나'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토록 증오했던 게리의 이름 뒤에서
결국엔 그의 꿈을 이룬 벤....
유명해지고픈 욕망과
조용히 숨어 살아야 한다는 현실 사이의 갈등...
왠지 그의 갈등이 이해가 되는 건
나 역시 평범과 비범 사이에서 늘 갈등하기 때문이리라. 

책 자체가 워낙 전개가 빠르고 재밌었지만,
특히 내게 와닿았던 내용은 바로 이것. 
벤이었을 때, 게리였을 때, 그리고 앤드류였을 때 모두 그는 사진을 찍었다. 
벤이었을 때 그의 사진은 인정받지 못했다. 
그저 겉멋 든 월가 변호사의 취미사진 정도랄까?
도망자 신세였던 게리였을 때 그의 사진은
모두에게 찬사를 받았다. 
오히려 그의 익명성과 비밀스러움이 
사진 좀 볼 줄 안다는 전문가들 사이에선
남다른 깊이로 평가되었다. 
앤드류가 된 후 찍은 그의 사진은
게리일 때 찍은 사진보다 발전되었지만, 
다시 전문가들의 눈엔 아마추어 사진일 뿐이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라는 단편이 떠오른다. 
(젊은 여류 화가의 그림을 보고 비평가들은
깊이가 없다고 평가를 한다. 깊이에 대한 고민을 하다 결국 죽음을 맞이한 여류화가....그제서야 비평가들은 죽은 여류화가의 그림을 놓고 깊이가 있는 명작이라고 평한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한
결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타인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고립되어 살면 자유로워질까?
아마 그 때엔 오히려 타인의 시선을 갈망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인간은 그 어느 순간에도 자유로울 수 없는,
얽매이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우야둥둥....

두께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 느리게 읽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빠르게 훅훅 넘어갔던 재밌는 소설이었다. 
조만간 그의 소설을 찾아 
다시한번 그의 입담 속으로 빠져보아야지. 


"비로소 하루가 시작됐다. 그러나 하루가 끝난 적도 없었다." -p.8-


"나는 항복하고, 포기하고, 움츠러들었다. 왜? 그게 쉬웠으니까. 안전하기도 했으니까." -p.26-


"`돈이 곧 자유야.` 그렇죠, 아버지. 하지만 그 자유를 얻으려면 일에 몰두해야 하죠." -p.35-


"<이제와서 가장 참기 힘든 게 뭔지 아나? 언젠가 죽는다는 걸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는 거야. 변화를 모색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서거나 다른 생을 꿈꿀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리란 걸 알면서도 나와는 전혀 관련없는 일인 양 살아왔다는 거야. 이제는 더 이상 환상조차 품을 수 없게 됐어. 인생이라는 도로에서 완전히 비껴난 것이지.>
내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잭은 그런 내 표정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잭이 말하려는 게 뭔지 알고 있었다. 최소한 연봉 50만 달러, 수많은 특권..... 그러나 그 모든 건 내가 뷰파인더 뒤의 인생을 포기하는 댓가로 얻은 것들이었다. 잭이 오래 전 맥두걸 가 화실에서 꿈꾸었던 인생, 이제는 백일몽이 되어버린 인생, 안정된 삶을 선택하는 대가로 포기한 인생.
잭은 그 안정된 삶이 바로 지옥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p.49-


"질문. `지붕을 깨끗이 치웠을 때, 얻는 것은?`
답. `텅 빈 지붕`. 다른 답. `자유`." -p271-


"이 사진들이 왜 좋은지 알아요? 댁이 예술가인 척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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