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8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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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 집주인을 찾아갔다가 막 돌아오는 길이다. 이제부터 사귀어가야 할 그 외로운 이웃 친구를."


 

이렇게 힘든 책인 줄 모르고 덥썩 선택했었다니...
두께도 두께지만
시종일관 무겁고, 잔인하리만치 차가운 이야기에 몰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브론테 자매의 둘째(사실은 넷째)인 에밀리 브론테...
서른에 죽은 그녀가 남김 유일한 소설
"폭풍의 언덕"...

습기를 가득 머금은 세찬 바람이 내 머리와 가슴을 마구 때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소설 속 이야기는 휘몰아쳤다 잠잠해졌다 다시 온 대지를 뒤집어 엎을만큼 몰아쳤다. 
세상에 다시 없을 악마같은 남자 히스클리프,
나약하지만 사랑을 지키려 한 남자 에드거,
두 남자의 사랑을 받았지만 결국은 외로웠던 여자 캐서린....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에게까지 대물림 되는 
얽히고 섥힌 사랑의 이야기.....

도무지 읽어도 읽어도 페이지가 줄지 않는...
읽어도 읽어도 공감 보다는 가슴 깊이 짜증이 밀려올라왔던.....
누가 히스클리프를 매력적인 악인이라 했던가...!
어릴 때 부터 받아온 학대와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를 선택한 데 대한 복수로, 자신을 키워준 집안과 여자가 시집 간 집안을 몰락시키는 데 목적을 둔 남자 히스클리프... 
그래,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히스클리프의 복수를 통쾌하다거나 응원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역시 학대의 주범이 되어 끊임없이 학대를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학대의 대상이 자신을 학대했던  당사자들에 국한 된 것이 아닌 그들의 2세, 게다가 자신의 아들에게까지 자행됐다는 것이 소름끼치도록 화가 나 참을 수가 없다. 
여주인공 캐서린은 또 어떤가...!
끊임없이 칭얼대며 사랑을 갈구하고,
결국엔 두 남자를 다 절망에 빠뜨린 대단한 여인...
도무지 나의 상상력으론 어떻게 캐서린을 사랑할 수 있고, 어떻게 히스클리프에게 빠질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히려 나약하기 그지없는 샌님처럼 묘사된 에드거가 그들보다는 훠~~~~~얼씬 멀쩡하고 멋지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뒤로 갈수록 더욱 더 휘몰아치는 이야기의 전개 때문이다. 
중간을 넘기기가 힘들지 일단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불쾌감을 감수할만큼 이야기는 폭풍처럼 흘러간다. 
이것은 마치....
욕하면서도 끊을 수 없는 막장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랄까? ^^;

어찌보면 나는 단순한 소설의 겉모습만을 보고 이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옮긴이가 말하기를 

"'폭풍의 언덕'은 단순히 그와 같은 자연 가운데서 펼쳐지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만은 아니다. 서술의 방식과 구성이 매우 특이하고 복잡한 것처럼 이 작품은 주제에 있어서도 결코 단순하질 않다. 그것은 히스클리프라는 기구한 운명과 냉혹한 집념의 사나이의 특이한 성격을 그리면서도, '워더링 하이츠'라는 야성의 세계와 '드러시크로스 저택'이라는 교양의 세계 사이의 대조와 결합과 몰락을 다룬 것이기도 하다."

또 어떤 블로거는 후기에 적어도 3번은 읽어야 진가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도 적어도 2번은 더 읽어야 에밀리 브론테가 숨겨놓은 진정한 "워더링 하이츠"를 발견할 수 있을까?


힘들게, 정말 힘겹게 읽어냈지만
몇 년이 지나 45쯤 되었을 때
다시한번 도전해보고픈 생각이 드는
고전이었다. 




"오 분 전까지만 해도 헤어튼이란 놈은 인간이 아니라 내 젊은 시절의 화신 같았어. 난 여러가지 의미에서 그에게 올바른 정신으로는 말을 걸 수가 없을 것만 같았어.
첫째로, 그 녀석은 놀라울 만큼 죽은 캐서린을 닮아서 녀석을 보면 무서울 정도로 그녀가 연상된단 말이야. 그런데 내 상상력을 가장 강하게 끌리라고 넬리가 생각할지 모르는 바로 그것은 사실 전혀 그렇지 않아. 내 눈에 그녀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뭐가 있겠어? 무엇 하나 그녀 생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이 있어야 말이지! 이 바닥을 내려다 보기만 해도 그녀의 모습이, 깔린 돌마다 떠오른단 말이야! 흘러가는 구름송이마다, 나무마다, 밤이면 온 하늘에, 낮이면 눈에 띄는 온갖 것들 속에, 나는 온통 그녀의 모습으로 둘러싸여 있단 말이야! 흔해빠진 남자와 여자의 얼굴들, 심지어 나 자신의 모습마저 그녀의 얼굴을 닮아서 나를 비웃거든. 온 세상이 그녀가 살아 있었다는 것과 내가 그녀를 잃었다는 무서운 기억의 진열장이라고!
제기랄, 헤어튼의 모습은 내 불멸의 사랑, 내 권리를 지키겠다는 무모한 노력, 나의 타락, 나의 자존심, 나의 행복, 그리고 내 고뇌의 망령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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